참 징그럽게 열심히 살았는데.. 씁쓸한 '잔고 0'
[오마이뉴스 글:신소영, 편집:홍현진]
어쩌다 비혼, 돌아온 비혼, 자발적 비혼 등 비혼들이 많아진 요즘, 그동안 ‘비혼’이라는 이유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조금 더 또렷하고 친절하게 비혼의 목소리를 내고자 용기를 낸 40대 비혼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재작년 말, 방송 작가로 일하고 있던 나는 갑자기 짤리고 실업자가 되었다. 그 뒤로 두 달 정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지치기도 했고, 일자리를 알아볼 의욕도 없었기 때문에 무기력하게 쉬었다.
내 한 몸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처지니 마냥 쉴 수만은 없었다. 세 달째부터는 간간이 들어오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반백수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다 보니 그나마 모아 놓은 돈은 6개월 만에 바닥을 드러냈다. 벌어 놓은 돈으로 우아하게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그때 구세주처럼 제법 돈 되는 일이 들어왔다. 한 정부 기관의 정책을 집필하는 일이었다. 거래처와 합의한 대로 일정이 진행된다면 큰 무리 없이 생활할 수 있겠다 싶었다. 난 칼같이 원고를 넘겼다. 그런데 원고를 써서 보낸 지 두 달이 지난 뒤에도 원고료가 입금되지 않았고, 아무 연락조차 없었다.
'을'로 산다는 것
▲ 잔고가 있는 동안은 괜찮았다. 하지만 곶감 빼먹듯 조금씩 돈이 줄어들면서 점점 '0'을 향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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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원고에 올인하느라 다른 일을 전혀 못해서 돈이 나올 다른 구석도 없었다. 왜 늦어지고 있는지, 언제쯤 입금될 계획인지 알려주기만 해도 좋을 텐데 예측이 안 되니 더 답답했다. 버티다가 목 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담당자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돈 이야기는 웬만하면 하기 싫은 일이다. 일한 것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돈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은 늘 어렵고 공연히 구차하다. 그래서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한 뒤에도 이틀 정도 망설이다가 자존심을 접고 담당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원고료 입금일이 많이 지났는데 안 들어와서 연락드립니다. 바쁘시겠지만 확인 부탁드려요."
이 짧은 문자를 보내기까지 얼마나 많이 썼다 지우고, 전송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했는지 모른다. 조금 뒤에 담당자로부터 답신이 도착했다.
"행정적으로는 결제가 났는데 경리부에서 지급해야 할 것이 많다 보니 늦어지는 것 같아요. 재촉을 하긴 했는데 언제 지급되는지 정확한 날짜를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죄송합니다."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싶었지만 중간 담당자가 무슨 죄가 있으랴 싶었다. "어째 원고 쓰는 것보다 원고료 받는 게 더 어렵네요. ㅎㅎ" 하며 말을 맺었다.
실질적인 소득은 없었으나 상황에 대한 이야기라도 들으니 조금 마음이 풀어졌다. 당장 입금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정보는 확인되었으니, 어쨌든 내가 할 일은 명확해졌다. 현금서비스를 받아서 일단 급한 불부터 껐다.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원고료는 또 한 달이 지난 뒤에야 입금되었다. 어렵게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고 뿌듯함을 느낄 사이도 없이, 돈은 불과 열흘 만에 바닥을 보였다. 원고료가 나오자마자 전광석처럼 갚아야 할 돈이 빠져나갔던 것이다.
그 원고를 쓰느라 거의 두 달을 두문불출한 결과가 '마음졸임'과 '빚 잔치'로 끝나 버린 셈이었다. 그 여파로 난 그 이후로도 몇 달간 잔고 '0'의 상태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제 때에만 원고료가 지급되었어도 난 빚을 질 일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일도 없었다. '갑'의 스케줄에 맞춰서 지급되는 돈은, '을'이 노동의 대가로 번 돈을 당당하게 쓰고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해 버린다. 이런 시스템은 사람을 빚지게 만들고 빈곤의 악순환을 야기시킨다.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고, 그저 그냥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더 기가 막혔다. 비혼인 나도 이렇게 힘든데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 이런 처지에 있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고 벅찰 것인가.
오늘도 열심히 페달을 밟아보지만
▲ 나는 오늘도 통장의 잔고가 '0'이 되지 않도록 페달을 열심히 밟고 있다 |
ⓒ unsplash |
상황이 곤궁해질수록 억울함이 커졌다. 잡지사에 다니는 10여 년 동안은 한 달에 보름 이상 야근, 마흔 넘어 방송국에서 일할 때는 새벽 첫 전철을 타고 출근해 별 보며 퇴근했다. 프리랜서로 돈 되는 일은 마다하지 않았고, 그다지 사치를 부리지 않았는데도 이 숨 가쁘기만 한 삶이.
'참 징그럽게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난 왜 지금 돈이 없을까?'
답을 얻지 못한 채로 나는 오늘도 통장의 잔고가 '0'이 되지 않도록 페달을 열심히 밟고 있다. 체력이 뚝뚝 떨어지는 게 무섭도록 실감나는 요즘, 한편으론 더 일해야 하는 경제적 상황과 마흔 중반을 넘어선 나이가 걱정되기도 한다. 사실 가장 무서운 건,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내 노동이 배신 당하지 않는 시스템은 불가능한 것일까. 그렇다면 이제 나이가 들어 전만큼 열심히 페달을 밟을 수 없는 나는, 이 사회에서 누락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씁쓸한 고민이 깊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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