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배의 그림으로 보는 인류학]빈센트 반 고흐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의 풍경'

미술사학자 2018. 6. 19. 07: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 유럽의 작은 나라 네덜란드는 ‘붉은 머리의 미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우리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의 머리에 화가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선입견이 생길 만큼 그 생애가 강렬했습니다. 그가 남긴 <해바라기>나 <별이 빛나는 밤> 같은 그림들과 함께, 비극적인 생애, 인정받지 못했던 열정 등이 섞여 많은 사람이 빈센트 반 고흐에게 미안해하면서 사랑하게 되었고, 고결한 순교자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유명하고 사랑받는 고흐의 작품은 의외로 네덜란드의 두 장소, 두 개의 미술관에 대부분 모여 있습니다. 화가의 작품이 가깝게 모여 있고 그것을 감상한다는 것은, 뒤늦게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엄청난 속도로 발전한 고흐 같은 사람의 이야기라면 어떤 설명보다도 고흐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의 풍경’ (1890년, 90.6×72㎝)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 오로지 그의 작품만을 위한 ‘빈센트 반 고흐 국립 미술관’이 있고, 오테를로라는 도시에 크롤러 뮐러 미술관이라는 곳에 다시 95개에 달하는 고흐의 그림이 있습니다. 유족들의 힘이 만들어낸 암스테르담 고흐미술관과 그의 그림에 매료되어 열심히 모았던 미술 애호가 헬렌 뮐러가 소장한 크롤러 미술관의 반 고흐 컬렉션은 네덜란드가 그의 고향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오늘은 그 크롤러 뮐러 미술관이 소장한 빈센트 반 고흐 생의 마지막 부분에 그린 사이프러스 나무 그림을 소개해 드립니다.

프랑스 남부의 아를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생활하다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갖혀 있었던 고흐는 이 그림을 아를에서 가까운 요양원이 있는 생 레미라는 곳에서 그렸습니다. 프로방스라고 부르는 남부 지방의 생활은 정신병원에서 나와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거처를 옮기면서 끝이 나지만, 당시 빈센트에게 이 기간은 그의 예술을 결정적으로 완성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국립공원 안에 자리잡은 크롤러 미술관의 벽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이 사이프러스 그림은 10여 년간 그가 최선을 다해서 이루어 낸 자연과 우리 삶에 대한 찬가 였습니다.

“1890년 봄, 생 레미 요양원에서 생활하던 마지막 기간에 빈센트가 그린 것은 올리브 나무 시리즈 뿐만은 아니었다. 이 사이프러스 시리즈도 중요한 그림들인데, 프로방스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요즘 사이프러스 나무에 굉장히 집중하고 있어. 해바라기를 여러 번 작업했던 것처럼 이제 사이프러스도 그렇게 그리고 싶어. 사이프러스 나무는 비율만큼이나 모습도 아름다워서 마치 이집트인들의 오벨리스크 같아. 그리고 녹색 나뭇잎은 다른 나무들과 구분될 정도로 훌륭하지. (검다고 할 정도로 ) 짙은 색깔은 햇볕이 비치는 풍경 속에서 흥미 있는 대비를 만들어내. 하지만 이것을 그리는 것은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란다. 이 검은 초록색은 푸른 하늘과 대비해서 봐야 돼. 파란색 속에서 오히려 더 잘 드러나지. 어디에서나 그렇지만, 이곳의 자연을 그리려면 바로 그 속에 오래 머물러야 할 거야’라고 그의 작업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이 그림은 고흐가 프로방스의 자연을 그대로 그린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사이프러스 그림 <별이 빛나는 밤>에서도 가상의 마을을 만들어 내 그려낸 것처럼 여기서도 자신의 기억의 흔적을 모두 모아서 하늘과 별과 달과 나무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죠. 이 풍경은 그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고 그가 사랑했던 아를의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

1890년 6월 17일에 그는 고갱에게 편지를 씁니다.

“사이프러스 작업을 또 하나 더 했어. 배경이 되는 밤하늘에는 빛이 거의 없어. 이제 겨우 빛을 내기 시작한 초승달과 별이 있을 뿐. 오래된 집의 작은 창문으로는 오렌지색 빛이 새어 나오고 사이프러스 나무는 가운데 똑바로 그리고 검게 서 있지. 굉장히 낭만적이면서 프로방스적인 풍경이지.”

고흐에게 사이프러스 나무는 자연이고, 그가 경험한 시골 생활의 추억이고, 또 한편으로는 죽음과 삶을 연결해주는, 말하자면 하늘의 별로 표현되는 신앙이나 죽음의 평온함과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의 고된 아름다움을 매게해 주는 존재입니다.

그가 그린 밤하늘의 공기는 강렬한 붓자국 속에서 조용히,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그 아래 사람들의 삶 역시 그러합니다.

새벽 시간 짧고 순간적이어서 지나칠 수도 있는 대기의 느낌은 그의 손으로 그려져 우리에게 사이프러스 나무처럼 그와 우리를 연결해 주는 듯합니다.

이 앞에 서 있을 때마다 압도되는 아름다움을 가진 고흐의 작품, 사이프러스가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미술사학자>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