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개표방송을 빛낸 '촬영 노가다'의 비밀은?

2018. 6. 19.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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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궁금증
'센터 선발전' '롤러장' 등으로 패러디
얼굴 등장 후보만 100명 넘어
촬영팀, 미리 동영상·스틸컷 등 촬영
두달간 전국 서너 바퀴 돌아
"긴 개표방송에 정보와 재미 제공"

[한겨레]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경쟁하는 모습을 ‘프로듀스 101’의 ‘센터선발전’으로 패러디했다. 에스비에스 제공

6·13 지방선거 때 선보인 <에스비에스>(SBS) 개표방송이 화제다. 요즘 대중문화전반에 번진 비(B)급 감성을 담은 파격적인 그래픽을 선보였다. 서울시장 후보들이 “센터는 나”라며 ‘나야 나’에 맞춰 춤을 추고, 한때 초접전을 벌였던 김경수·김태호 경남도지사 후보는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엎치락뒤치락 쉴새없이 질주했다. <에스비에스>는 지난 대선 때도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패러디해 주목받았는데, 이번에는 더 다양해졌다.

그래픽이 화려할수록 후보들도 바빠진다. 그래픽에 맞는 ‘맞춤 표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얼굴이 등장한 후보만 대략 100명이 넘는다. 저 많은 후보들의 표정을 어떻게 촬영했을까?

수도권에 출마한 일부 후보들은 서울 목동 <에스비에스> 사옥 스튜디오에 와서 촬영했지만, 대부분은 촬영팀이 후보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이동식 크로마키(녹색 스크린)를 갖고 다니며 4월18일(박경국 자유한국당 충북도지사 후보)을 시작으로 5월31일(김명수 바른미래당 인천 남동갑 국회의원 후보)까지 전국을 서너번 돌았다. 선거기획팀 영상을 담당한 제일 차장은 “일정 조율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광역단체장 예비후보로 등록했던 76명 중 5명은 등록을 하지 않아 촬영만 하고도 사용하지 못했다.

경남도지사에 출마한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와 김태호 자유한국당 후보의 경쟁을 클럽에서 ‘막춤’ 추는 모습으로 나타냈다.

동영상과 스틸컷 두가지로 나눠 관심 지역과 유력 후보들은 1시간 정도, 대부분은 30분 정도 촬영했다. ‘센터선발전’과 ‘빨간맛’ ‘달과 함께’는 후보들이 직접 동작까지 선보였고, 나머지 그래픽은 얼굴만 촬영해 합성했다. 일부 후보는 사진기로 위↔아래, 왼쪽↔오른쪽을 180도 돌며 촬영해놓고 필요한 각도를 따서 붙이는데 서울시장 후보(박원순·김문수·안철수)와 경기도지사 후보(이재명·남경필)는 동영상으로도 360도 촬영했다. 이렇게 촬영한 얼굴에 붙은 몸은 누구의 것일까? 김우식 에스비에스 선거기획팀장은 “롤러스케이트 장면만 동호회 회원 2명을 섭외해 촬영한 것이고, 나머지 몸은 선거기획팀 기자 3명이 ‘몸’으로 때웠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촬영 장소는 선거사무소나 토론회장이었지만 식당(후보의 아내가 운영), 발레교습소(넓은 촬영장이 필요해서), 철학관(후보가 직접 운영) 등 독특한 곳도 있었다.

동작 대부분은 제작진이 사전에 논의해서 정해줬다. 친근한 정치인을 원하는 시대인만큼, 후보들은 대부분 잘 참여했다. 정장수 김해시장 후보는 가장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고 한다. 제 차장은 “입술모양 방석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치우고 웃는 동작을 제안했는데 정 후보가 직접 방석에 뽀뽀하면 되겠다는 의견을 내서 그렇게 촬영했다”고 말했다. 김경수 후보는 처음인데도 어색하지 않게 잘했다는데, 아내가 옆에서 열심히 코치를 해줬단다. 이 외에도 여러 후보가 아내와 함께 했다.

김경수 후보 등 여러 후보들의 ‘열연’에는 아내의 도움이 있었다.

하지만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점잖은’ 몇몇 후보는 “민망하다”며 어색해 해 결국 무릎은 굽히지 않고 하늘 향해 손만 찌르는 선에서 절충했다. 어떤 후보는 촬영에 응하지 않아 토론회에 참여한 모습만 찍고 예전 자료를 활용했다. 제 차장은 “이번 촬영에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경우였지만, 후보의 의견을 존중해야 해 강요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가장 힘들었던 동작은 워너원 박지훈이 유행시킨 ‘저~장!’이다. “이게 뭔지 모르는 후보가 대다수였고, 손을 위 아래로 바꿔가며 두번을 해야 해 대부분 잘 맞지 않았다.”(제 차장) “‘센터선발전’에서 춤을 추는 동작은 기자들이 앞에서 직접 시범까지 보였다.”(김 팀장)

‘야인시대’를 패러디한 ‘서울시대’에서 두 후보는 직접 모자를 쓰기도 했다.

개표방송 그래픽에서 멈춰있는 후보들이 달리기 시작한 건 2012년 대선부터다. 달리기 시작하면서 후보들이 움직이는 동작이 필요해졌고, 갈수록 포맷이 다양해졌다. 이번 선거에는 그래픽만 총 12명이 투입됐다. 지난해 12월초 기획단이 출범했고, 아이디어 회의는 올해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김우식 팀장은 “긴 개표방송이 지루하지 않게 정보와 함께 의미와 재미를 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에스비에스> 개표방송의 마스코트와도 같은 흰 곰, ‘투표로’가 이번에도 등장해 지역의 아픔을 보듬는 내용의 그래픽으로 눈길을 끌었다. 박원순·안철수 서울시장 후보가 등장한 ‘서울시대’에서는 국밥을 먹는 장면에서 엠비(MB)가 앉아 있고,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을 소개하는 ‘달과 함께’에선 이니 굿즈 등을 소품으로 활용하는 등 함축적 의미를 담은 ‘깨알 장치’들이 누리꾼들에게 ‘찾아보기’의 재미도 줬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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