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17년째 아들 수발 부부 "20년 만에 간 노래방, 10분 만에 나와"

신성식.이에스더.정종훈 2018. 6. 19. 02: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정돌봄 환자 100만 시대 <상>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가족들
뇌졸중 아내 24시간 돌보는 70대
"햇빛을 못 봐 골다공증까지 생겨"
간병하다 병·장애 생기는 악순환
스트레스 극에 달하면 '간병살인'
"보호자도 잠시 쉬게 돌봄 서비스를"
김영각(71)씨가 담관암·뇌졸중을 앓는 부인(70)을 부축해 집 앞 복도에서 함께 걷고 있다. [김상선 기자]
“혼자 뒀다 넘어지면 큰일 나니까 24시간 같이 있어야죠. 3년 동안 어디 한 번 나가보지 못했어요. 그냥 딱 창살 없는 감옥….”
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영각(71)씨는 담관암·뇌졸중을 앓는 부인 정명숙(70)씨를 홀로 돌봐온 지난 3년을 이렇게 표현했다. 부인 정씨는 2015년 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던 도중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혼자 화장실을 가거나 식사를 할 수 없어 종일 곁에서 부축하고 수발을 들어야 한다.

그나마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아 월~토요일엔 하루 3시간씩 요양보호사가 집에 온다. 주로 요리·청소 등 집안일을 도와준다. 그 외 나머지 시간의 간병은 김씨의 몫이다. 하루 14가지 약을 시간 맞춰 챙겨 먹이고, 밥을 챙겨 먹이고, 목욕을 손수 해준다. 정작 본인 끼니를 거르기 일쑤라 체중이 5㎏ 넘게 줄었다. 햇빛을 못 봐 비타민D 결핍증, 골다공증에 시달리고 하지정맥류가 생겼다.

“어떨 때 제일 힘 드시냐.”(기자)
“그냥 매일 힘들어요. 쳇바퀴 생활, 감옥에 갇힌 것 같은 기분에 괴롭습니다. 잠자는 시간이 제일 행복해요.”(김씨)
그는 “병하고 싸우느라 고생하는 아내 모습이 불쌍해서 못 보겠다”며 연민의 정을 토로했다.
집에서 환자를 돌보는 가족은 끝이 보이지 않는 돌봄 노동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이들은 한결같이 일상을 “감옥 같다”고 말한다. 삶의 낙이 사라지고, 세상과 단절된 것 같은 깊은 고립감-.

고신대 복음병원 조연실 간호사가 지난해 ‘성인간호학회지’에 발표한 ‘재가 와상 환자를 돌보는 노인배우자의 경험’ 논문에도 이러한 고통이 담겨 있다.

“아무 한 것도 없고 7년 동안 내가 뭘로 이런 세월을 넘갔는가(넘겼는지) 싶은기라. 영감 쌔빠지게(힘들게) 뒷수발하고 나면 내 끝이 뭐가 있는기라(있을까).”
17년째 뒤센근이영양증 투병 중인 김모(26)씨는 집 안에서 24시간 인공호흡기를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 [김상선 기자]
뇌경색에 걸린 남편(69)을 7년 간병해온 A씨(64)의 넋두리가 사투리째로 실려 있다. A씨는 “절절한 친구들도 내가 안 나가니까, 자기네들이 불러도 안 나가거든. 이젠 부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척수손상 남편(80)을 4년째 돌봐온 B씨(67)는 “제일 힘든 게 밖에 못 나가는 건데, 한 달에 몇 번이라도 누가 좀 와줬으면”이라고 말했다.
오랜 돌봄 노동은 평범한 일상을 앗아간다. 인천 연수구에 사는 김태형·박영숙(53·가명)씨 부부는 17년째 희귀난치성 질환인 뒤센근이영양증 아들 김모(26)씨를 돌본다. 체내에 단백질이 쌓이지 못하고 소변으로 빠져나가면서 근육이 약화되는 병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발병했고, 지금은 손가락 끝만 미세하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다. 인공호흡기가 없으면 스스로 숨쉴 수 없다. 이따금 코에 연결한 호흡기 관이 빠지면 비상사태다. 24시간 눈을 뗄 수 없다. 수시로 가래를 뽑아내고, 대소변을 받아야 한다. 밤낮이 없어 제대로 잘 수 없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아버지 김씨는 “창살 없는 감옥에 산다”고 말했다. “혼자 두고 집을 비울 수가 없어요. 호흡기가 잘못되거나 가래가 차서 (기도가) 막히거나 하면 한순간에 보낼 수 있으니까….”

어머니 박씨는 “남들은 해외여행 얘기를 하지만 우리는 그런 거 안 바란다. 연수구 밖이라도 나가 보면 소원이 없겠다”며 연신 눈물을 닦았다. 그는 “어느 날은 20년 전 가본 노래방이 너무 가보고 싶어 참고 참다가 애 아빠와 근처 노래방에 30분 예약해서 간 적이 있다. 그런데 아들이 부르는 것만 같아서 10분 만에 뛰어왔다. 그게 유일한 일탈”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나마 월~금요일 하루 6시간씩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방문하는 게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시간 연장을 신청해도 예산이 없다며 거절당하기도 한다.

오랜 간병 생활에 박영숙씨는 3차 신경통을 얻었고 한쪽 다리에 장애가 생겼다. 입원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김씨는 “아내가 입원하면 애 때문에 제가 직장에 나갈 수가 없다. 활동지원 시간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거부당했다. 제발 12시간으로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새벽에 5~6번 깨서 간병하다 보면 정신이 몽롱하다. 간혹 이게 죽음으로 가는 길이 아닌지 착각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가정 돌봄 가족ㆍ환자 말말말
가정 환자는 당장 병원에서 치료할 게 없어서 입원할 필요가 없다. 요양병원에 보내고 싶어도 받아주지 않는다. 루게릭병 남편을 18년째 간병하는 최금옥(48·전북 익산시)씨는 “일을 하려고 요양병원에 보낼 생각도 했지만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환자를 받아주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최씨는 “내 삶이 거의 없다. 화병이 나서 몇 년간 병원에 다니고 고생했다”며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은 끈을 놓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사랑 때문이다. 이들은 “절대 버릴 수는 없다”고 말한다. 마포구 김영각씨는 “평생 고생만 시켰는데 내가 당연히 돌봐야지. 요양병원은 마지막 수단이라 생각해요.”

“17년이라는 긴 시간 어떻게 버텼느냐”는 질문에 김모씨의 아버지 김태형씨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자식이니까….”
김영각(71)씨가 담관암·뇌졸중을 앓는 부인(70)이 집 안에서 재활 운동을 하는 걸 돕고 있다. [김상선 기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진다. 간병 살인·자살이다. 지난 4월 충북 청주에서 70대 노모를 돌보던 40대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한 뒤 자살했다. 아들은 20년 넘게 중증 청각장애를 앓던 홀어머니를 극진히 돌봤다. 1년 전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남의 손에 맡기기 어려워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폐륜범이 됐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간병 받아야 할 환자를 요양원·요양병원으로 보내면 국가가 돌봐주고, 집으로 데려오면 가족에게 책임을 떠안기는 구조를 만들어 놓으니 가족이 집에서 돌보고 싶어도 그러기가 힘들다”며 “장기요양·장애인 활동 지원 시간을 늘리고 환자를 일시적으로 맡아 주는 단기보호서비스가 있어야 가족이 숨을 쉴 수 있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에스더·정종훈 기자 sssh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