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40년도 더 된 군산 유흥업소 건물, 방화범은 입구에 불 질렀다

군산/이다비 기자 입력 2018. 6. 18. 18:43 수정 2018. 6. 18. 20:3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33명 사상자 발생한 군산 유흥주점 방화사건 현장
술값 시비 끝에 용의자 휘발유에 불 질러
군산, 잇따른 화재 참사로 주민 불안

3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군산 유흥주점 방화사건’ 화재현장은 이튿날인 18일 날이 밝으면서 참상을 드러냈다. 유흥업소 주변은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고, ‘7080 크럽’이라 적힌 간판이 검게 그을렸다. “윙”하고 드론이 까맣게 변해버린 건물 위를 날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띄운 것이었다. 현장에는 노란색 출입금지 테이프가 쳐졌다. 테이프 안쪽에서 8명의 화재감식요원들이 분주히 잔해물을 살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재가 날렸다. “어제 구해준 그 사람 죽은 건 아니죠?” 주민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밖으로 나왔다. 불을 지른 혐의로 붙잡힌 방화범 이모(55)씨를 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술값 시비 끝에 유흥업소 입구에 불을 놓은 혐의를 받고 있다.

“어제 서로 먼저 빠져 나오려고 몸이 엉켜 넘어지고…(피해자들) 얼굴도 새카맣고 전쟁통이 따로 없었어요. 다를 (유독)가스를 마셔서 밖으로 나오자마자 픽픽 쓰러져. 그나마 (유흥업소가) 1층이어서 바로 탈출들을 했지. 만약 가게가 지하에 있었다면 큰일날 뻔 했어요. ” 최초 목격자 임기영(68)씨 얘기다.

지난 17일 오후 9시 50분쯤 군산시 장미동 한 유흥업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안에 있던 손님들이 유독 가스를 마시고 길거리에 쓰러져 있다./주민 제공

◇군산 유흥업소 방화사건 재구성
지난 17일 오후 9시53분쯤 전북 군산시 장미동 유흥업소에서 “펑”하는 폭발음이 났다. 맞은편 곱창집 주인 진미숙(55)씨가 깜짝 놀라 뛰쳐나왔다. 불길이 하늘까지 치솟고, 유흥업소에서 사람들이 콜록거리면서 나오는 모습이 처음 보였다. 표현할 수 없이 지독한 냄새가 났다. 기진맥진한 탈출자들이 땅바닥 위로 하나 둘 쓰러졌다. “여기 불 났어요. 뭐가 어떻게 불 났는지는 묻지 말고, 사람 죽어가니까 빨리 와주세요!” 진씨의 119 신고내용이다. 이 불로 당시 건물에 있던 33명이 죽거나 다쳤다.

방화였다. ‘7080크럽’ 단골손님 이모(55)씨가 용의자로 지목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범행 전 유흥업소 사장과 외상값 문제로 언성을 높였다고 한다.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20만원이 청구됐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17일 오후 2시쯤, 이씨는 다시 가게에 찾아와 말다툼을 벌였다고 한다. 그는 “불을 질러버리겠다”는 말과 함께 가게를 떠났다.

이씨는 집으로 가지 않고 560m 떨어진 군산항(港)으로 갔다. 그는 정박된 배에서 휘발유 20리터(ℓ)를 꺼낸 뒤, 석유통을 들고 다시 유흥업소에 갔다. 경찰은 이 시점은 오후 8시쯤으로 파악하고 있다. 주변을 서성이던 이씨는 이날 오후 9시50분쯤 가게 입구에 기름을 부었다. 라이터를 켜자 불은 삽시간에 번졌다. 이씨 몸에도 옮겨 붙었다.

가게 내부 소파·테이블 등이 타면서 유독가스도 뿜어져 나왔다. 발화점인 정문으로는 탈출할 수가 없었다. 내부에 갇힌 피해자들은 옆쪽에 난 비상구로 달렸다. 비상구 바깥에서 주민들이 기진맥진한 피해자들을 부축했다. 이 사고로 당시 가게 내부에 있던 개야도 주민 장모(47)씨, 김모(52)씨, 김모(59)씨 등 3명이 숨졌다. 30여명은 크고 작은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자신이 지른 불로 배, 등, 손, 다리 등 전신에 화상을 입은 이씨는 가게로부터 500m 떨어진 선배 A씨 집에 숨었다. 이씨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A씨는 경찰에 이씨를 신고했고, 이튿날 새벽 1시30분쯤 형사들이 들이닥쳤다. 이씨는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저항하지 않았다. “외상 값이 10만원인데 주점 주인이 20만원을 요구해 화가 나서 그랬다”며 범행을 시인했다고 한다.

경찰과 주변에 따르면 방화 용의자 이씨는 고깃배 선원으로, 거친 성격으로 술버릇이 나빴다. 박은태(60) 개야도 이장 얘기다. “멀쩡하다가도 술만 취하면 시비 걸고 물건 부수고 그래서 파출소 들락거렸어요. 이제껏 결혼은 못한 걸로 압니다. 5년 전 몸이 아팠는데 그 뒤로 좀 이상해졌어요.”

18일 소방당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합동감식에 나서고 있다./군산=김유섭 기자

◇군산, 잇따른 화재 참사로 주민 불안
군산에서는 과거 성매매업소 화재로 큰 인명피해가 났었다. 2000년 군산 대명동 ‘쉬파리 골목’ 유흥업소 화재로 종업원 5명이 숨졌고, 2년 뒤에는 개복동 유흥주점 화재로 15명이 사망했다. 안전·환기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복잡한 건물 내부구조로 인해 인명피해가 더 컸다.
성매매 특별법은 군산의 이 두 참사가 기폭제로 2004년 3월 제정됐다.

3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군산 유흥업소 건물도 40년 이상 노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환기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산시청 측은 “너무 오래된 건물이라 현재 설계도가 남아 있지 않다”면서 “현재 현장감식반 등이 내부 구조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산에 참사가 계속 있었잖아요?. 나도 뉴스 보고 예전 (화재 참사)생각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군산에 오래된 건물이 많아서 사고가 더 커지는 것 같아요. 나부터 내부가 복잡한 가게에 들어가면 덜컥 겁이 납니다.” 주민 김모(53)씨의 말이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