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민심 "한국당, 너흰 오답이야!"

2018. 6. 1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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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자유한국당 대패한 6·13 지방선거…
“2년 뒤 총선이 집권 여당 진짜 시험대”

김성태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6월15일 국회에서 6·13 지방선거 패배와 관련해 반성문을 발표하며 무릎을 꿇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선거는 정당과 정치세력에게 시험과 같다. 유권자는 끊임없이 문제를 내고 정치인은 이를 풀어야 한다. 제출된 답안을 보고 유권자는 투표로 채점한다. 6월13일은 유권자가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등 보수를 대표하겠다는 세력이 내놓은 답안에 빨간색으로 X를 친 날이다. 2016년 총선, 촛불, 탄핵, 2017년 대선까지 이전과 다른 문제들을 계속 내왔지만 같은 방식으로만 문제를 풀어온 보수 정당에 유권자는 지방선거를 통해 ‘오답’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지역주의·세대대결·색깔론 등 기존 참고서만 들고 시험장에 들어온 보수 정당은 자신들의 텃밭이라고 여겼던 대구·경북(TK)에서도 회초리를 맞았다. 결국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는 대표직을 내려놨고, 보수 정치인들은 “당을 해체하라”는 날 선 비판을 들으며 깜깜한 터널 앞에 서 있는 상황이다.

지방선거에서 17개 광역자치단체장 가운데 2곳을 지킨 자유한국당을 향해 ‘TK지역당’으로 쪼그라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파란색으로 가득한 광역자치단체장 개표 결과를 담은 지도에서 빨간색이 도드라지는 대구와 경북을 보면 쉽게 나올 수 있는 평가다. 하지만 개표 지도를 기초자치단체장, 광역·기초 의회 중심으로 다시 그리면 지도의 색깔이 달라진다. 변화의 속도만 더딜 뿐 대구와 경북도 촛불과 탄핵을 거치며 이뤄지는 우리 사회의 정치 지형 변화와 발을 맞추고 있다. 즉, 대구 역시 보수를 심판했다.

자유한국당, 너는 X야

대구는 시장과 8개 구청장 가운데 7곳(1곳 무소속)을 자유한국당이 휩쓸었지만 시의회와 구의회는 ‘무조건 한국당’이란 구도가 무너졌다. 시의회는 민주당 의원이 4명 당선됐다. 민주당을 비롯해 진보 성향을 가진 정당의 시의원이 뽑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초의회에서는 민주당이 50명(기초비례의원 5명 포함)의 당선자를 배출해 62명의 자유한국당과 어깨를 견주게 됐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기초의회에서 13명을 당선시켰다. 정당지지율을 가늠해볼 광역의원비례대표 선거 결과를 봐도, 민주당은 35.8%를 득표해 46.1%의 자유한국당과의 격차를 좁혔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광역비례 선거에서 69.9%로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였고,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이 23.8%를 득표했다.

지도의 색깔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했지만 밑바닥의 바람은 자유한국당의 기초의회 독점을 깨기도 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구는 지방선거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당이 1당을 차지했다. 대구 수성구의회 당선자 20명 가운데 10명이 민주당, 9명이 자유한국당, 1명이 정의당이다. 선거 전까지 수성구의원들의 정당 분포는 자유한국당 12명, 민주당 4명, 무소속 3명, 정의당 1명이었다.

대구도 기초의회에선 독점 깨져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에서 선출된 더불어민주당 당선인들. 왼쪽부터 장세용 구미시장·오거돈 부산시장·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인. 연합뉴스 /연합뉴스 /연합뉴스

‘박정희의 고향’ 구미시에도 변화의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민주당 장세용 후보가 7만4917표(40.79%)를 얻어, 7만1055표(38.69%)를 받은 자유한국당 이양호 후보를 꺾었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 중 유일한 대구·경북 기초단체장이다. 20년 만에 이 지역에서 민주당 계열 기초단체장 당선인이라는 기록도 썼다. 구미시의회 역시 2014년 6명 모두 새누리당에서 이번에 민주당 3명, 자유한국당 3명 균형을 이뤘다. 기초의회도 새누리당 14명, 민주당 1명, 무소속 5명에서 자유한국당 11명, 민주당 7명, 바른미래당 1명, 무소속 1명으로 다양해졌다.

경북도지사는 이철우 자유한국당 후보가 당선됐지만 4년 전 선거와 비교하면 자유한국당 후보의 득표율이 줄었다. 2014년 김관용 새누리당 후보는 77.73%를 득표했지만 이철우 당선인은 52.1%를 얻었다. 반면 오중기 민주당 후보는 2014년 14.93%에서 2018년 34.3%로 두 배 넘는 표를 얻었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TK는 역대 대통령을 배출한 곳이라 지역에 대한 애착심과 자부심을 무시할 수 없어 왜 늦게 변하냐고 질문을 던지면 안 된다. 이번 선거 결과를 지방의회까지 찬찬히 들여다보면 대구·경북 유권자들이 자유한국당을 심판, 탄핵한 것이다”라며 “민주당 등 다른 정당 후보의 경쟁력이 좀더 높았다면 선거 결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의회와 구의회에 진출한 ‘비한국당 의원’들의 활동은 앞으로 대구·경북의 균열을 더욱 가속화할 수 있다. 이관후 서강대 글로컬한국정치사상연구소 연구원은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다른 정당의 시의원, 구의원들이 일을 할 것이다. 그분들이 제 역할을 한다면 대구 유권자들도 아무나 찍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심판의 강도만 다를 뿐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TK를 비롯해 PK(부산·울산·경남), 서울 강남 등 보수 세력이 강세를 보이던 지역의 정치 판도를 흔들었다. 80%까지 육박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힘’이 여당 승리의 일차적 배경으로 꼽히지만, 탄핵과 지난 대선을 통해 바뀐 유권자 지형이 선거 결과에 고스란히 투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기존 지역주의와 중·장년층의 투표 성향에 균열이 생겼고 한반도 평화 국면에 색깔론 역시 힘을 잃어 민주당 지지층이 확장되고 보수 정당을 이탈하는 ‘스윙 보수’ 역시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연령 효과’ 안 나타나는 50대

일단 2040세대와 5060세대의 대결 구도는 더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게 이번 선거로 확인됐다. 2016년 총선 이전까지 ‘2040=진보 성향, 5060=보수 성향’이라는 구도는 ‘신화’로 유지돼왔다. 하지만 지난해 대선 지상파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문 대통령은 20~50대에서 지지율 1위를 차지했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진행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50대의 민주당 정당과 후보 지지율은 대부분 자유한국당을 앞섰다.

지상파방송 출구조사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2%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를 보면, 50대는 이번 투표에 대해서 “정부·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65.1%로 “정부·여당을 견제해야 한다”는 의견(28.0%)을 크게 앞섰다. 60대도 “힘을 실어줘야 한다”가 47.3%로 “견제해야 한다”는 의견(42.5%)보다 많았다. 정치학자들은 ‘연령 효과’(나이 들수록 보수화되는 경향)가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86세대’(1960년대 이후 출생)가 진입한 50대에서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가설도 제시한다. 기존 보수 정당 지지층이 60~70대로 좁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번 선거에선 세대 대결 구도가 무너지면서 지역주의 붕괴도 두드러졌다. 1995년 지방선거가 도입된 이래 한 번도 민주당 계열 정당 당선인이 나오지 않던 부산·울산·경남 광역단체장 3곳은 이번 선거에서 모두 민주당 후보(오거돈 부산시장·송철호 울산시장·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당선됐다. 2010년 범야권 단일 후보로 당선된 김두관 경남지사(민주당 의원)는 당시 무소속이었다. 정치권에선 과거 민주당 성향이 강했던 PK가 1990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3당 합당 이전으로 정치 지형이 돌아가 지역주의가 무너졌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은 보수가 의지해온 ‘색깔론’의 기반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남북 정상회담보다 북-미 정상회담이 보수층을 무장 해제시켰다. 미국이 적극 나서며 ‘북한에 나라를 팔아먹으려 한다’는 보수 세력의 오래된 프레임이 깨졌다”고 설명했다.

<한겨레21>이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목했던 대구(제1215호)와 경북의 선거 결과 역시 이러한 변화가 고스란히 반영됐다. 대구·경북 모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20~50대를 중심으로 ‘탈자유한국당’이라는 표심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자연스레 지역주의와 색깔론 역시 예전만 못했다. 대구 수성구의원 출신으로 이번 선거에 대구 시의원에 출마해 당선된 민주당의 강민구 의원은 “4년 전에는 ‘종북 좌빨, 전라도 출신 아니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는데, 이번엔 싹 사라졌다”며 “경로당에 가도 예전에는 우리 할머님들이 고스톱 치면서 건성으로 들었는데, 이번 선거에선 고스톱 치는 걸 멈추고 들으셨다. 밑바닥은 4년 전과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보수 궤멸 자초한 홍준표

결국 ‘보수 궤멸’은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이 이러한 변화를 읽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선거를 앞두고 만난 대구 시민들 사이에서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의 ‘막말’을 향해 “공당 대표로서 부끄럽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지난 6월1일 대구 현장 르포 당시 만난 택시기사 김아무개(64)씨는 “인정할 건 인정해주고 비판할 건 비판해야 하는데 ‘얼라’(어린애)도 아니고 공당 대표 수준이 저래밖에 안 되나 싶다. 남북 정상회담도 쇼라고 하는데, 정떨어진다”고 했다. 이는 선거기간 동안 홍준표 전 대표의 지원 유세를 후보들이 기피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분석전문위원은 “탄핵 뒤 자기반성이나 혁신이 없다보니 공당의 정당성 자체를 회복하지 못했다. 정당성이 없다보니 여당과 아예 경쟁 자체가 안 됐다”며 “이번 선거 결과는 탄핵 때 발생한 보수 지지층의 균열이 계속 작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남북관계나 안보 문제를 낡은 진보·보수의 잣대로 접근한 것 역시 유권자가 등을 돌린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보수 정당이 강점으로 내세운 경제문제 역시 이번 선거에서는 대안을 제시하기는커녕 쟁점화하지 못한 것도 유권자의 외면을 받은 이유라는 분석도 따른다.

지방선거는 동네정치를 바꾸지만, 2년 뒤 총선에도 영향을 끼친다. 일사불란하게 지역구 표를 끌어모아야 하는 총선에서 지방권력을 차지하는 것은 정당의 기초체력을 튼튼하게 하는 것과 같다. 이에 이번 선거가 유권자 지형이 재편성되거나 정당 체제가 변하는 ‘정초선거’ ‘중대선거’라고 조심스레 전망하는 시각도 있다. 보수의 몰락이 장기화하고 민주당 장기 집권 체제가 이어질 것이라는 시각이다.

물론 역동적인 우리 정치를 고려하면 이는 섣부른 전망이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데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게 진리다. 장우영 교수는 “대구·경북에서 다음 총선을 앞두고 한국당에 마지막 기회를 주면서 경고를 보냈다. 민주당 역시 TK 민심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인물을 키워내는 등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 몰락은 섣부른 전망

이관후 연구원은 여당을 향해 “이번 선거는 여당을 평가한 선거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과 이를 발목 잡으려던 홍준표 대표의 변수가 좌우한 선거다”라며 “2년 뒤 총선까지 여당이 정책 역량이나 정치적 책임감을 가졌는지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권자는 2년 뒤 다른 문제를 낼 것이고 여야 모두 정답을 내놓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폐허가 된 자유한국당은 6월18일 현재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 공방만 수면 위로 드러날 뿐 당의 재건과 혁신 방향에 대한 책임 있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비상의원총회를 연 6월15일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며 국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는 ‘보여주기’식 이벤트만 했을 뿐이다. 바른미래당 역시 선거 패배 이후 딸 졸업식 참석차 미국으로 떠난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의 행보를 두고 “책임회피냐, 아니냐”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언제쯤 왜 자신들이 낙제점을 받았는지 깨달을 수 있을까.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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