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시작인데 빙과업계 '울상'..아이스크림 '미끼상품' 전락

신건웅 기자 2018. 6. 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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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내슈퍼서도 50% 할인..빙과업계 "팔아도 안 남아"
'가격 정찰제' 다시 시도..'업계 공감대' 이번엔 다를 것
서울 시내의 한 편의점에서 판매 중인 아이스크림. /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 경기 안양 주택가의 한 동네 슈퍼. 입구에 '아이스크림 50% 세일'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슈퍼를 찾은 한 손님은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담배와 과자까지 사서 계산을 마쳤다. 아이스크림이 '반값 미끼상품'이 된 셈이다.

# 10여분 정도 떨어진 곳에는 '아이스크림 전문 할인점'이 문을 열었다. 아이스크림 전문 할인점은 '월드콘'과 '부라보콘'을 1개 700원, 3개 2000원에 판매했다. 초등학생들이 우르르 찾아 아이스크림을 계산했다.

아이스크림이 잘 팔리는 여름이 다가왔지만 빙과업체들은 울상이다. 아이스크림이 반값 미끼 상품으로 전락해 아무리 많이 팔아도 남는 게 없다.

가격을 올려야 하지만 소매점 반발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 그나마 '가격 정찰제'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동네슈퍼의 미끼 상품으로 전락한 아이스크림

18일 업계에 따르면 70~80년대 국내 식품업계 블루칩으로 통하던 아이스크림이 반값 제품으로 전락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다.

국내에 대형마트가 등장하면서 경쟁이 어려워진 동네슈퍼들이 아이스크림을 미끼상품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대부분 냉동고가 슈퍼 바깥에 있어 눈에 잘 띈다는 점이 반영됐다. 세일 간판을 걸어 놓으면 지나가는 고객 발길을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초반에는 동네슈퍼에서 마진을 줄여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주력 상품인 '아이스크림 바'의 경우 권장소비자가격이 800원이면 통상 제조사들은 300원 내외의 공급가를 책정해 중간 도매상에 공급한다. 대리점은 여기에 다시 20% 정도의 마진을 붙여 소매점에 넘기는 방식이다.

최종가격은 소매점주가 결정하는데 그동안은 20~50%까지 마진을 붙였다. 그러던 것을 미끼상품으로 내세우면서 마진율을 줄여 팔기 시작했다.

마진율이 낮아지자 동내 슈퍼를 비롯한 소매점은 빙과업체에 추가 할인을 요구했다. 빙과업체들은 할인 혜택을 제공하지 않으면 경쟁사 제품의 판매가 늘어날 수밖에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공급가를 낮췄다.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은 롯데제과·롯데푸드·빙그레·해태제과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문제는 공급가가 회복하지 못하면서 빙과업체의 마진율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는 점이다. 현재 빙과류는 영업이익률이 1~2%에 불과하고 일부 제품은 팔수록 적자가 쌓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빙과업체 관계자는 "결국 유통점주의 마진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빙과업체의 이익만 줄어든 셈"이라며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보니 권장소비자가는 유명무실해지고 소비자들의 가격 불신만 커졌다"고 토로했다.

아이크림 할인점 가격표 © News1

◇전문 아이스크림 할인점 등장까지…빙과업체 '멘붕'

최근에는 이같은 아이스크림 유통 구조의 틈새를 노려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우수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이곳에서는 마트보다도 더 싼 가격에 아이스크림만 전문적으로 판매한다.

좁은 공간에서 냉동고만 놓고 아이스크림 한 품목만 팔기 때문에 공간 효율성은 높고 인건비·임차료 등 부대비용을 아낄 수 있다.

특히 대량구매와 대량판매로 가격 경쟁력을 높였다. 전문점들은 가격을 낮추기 위해 빙과업체와 직거래를 하고 또 빙과 4사로부터 제품을 공급받기 때문에 상품 종류도 다양하다.

아이스크림을 공급하는 빙과업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대량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당장 매출에는 유리하지만 자칫 이런 할인 판매로 인해 애써 정착시키려던 권장소비자가격에 대한 불신을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에는 궁여지책으로 자체 권장소비자가격을 시행했지만 유통점주들의 반대와 아이스크림 전문 할인점이 늘면서 이마저도 흐지부지됐다.

빙과업체 관계자는 "제조사의 공급가 자체는 전문 할인점이나 일반 점포 큰 차이가 없지만 유통구조 때문에 판매가격에서 차이가 나타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어쨌거나 최종 판매 가격을 결정할 권한은 유통채널에 있기 때문에 제조사에서 판매가격을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의 한 편의점에서 판매 중인 아이스크림. /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빙과업계 마지막 희망? '가격정찰제'

빙과업계는 현재 상황에 대해 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판매량은 떨어지고 공급가는 올리지 못하고 있어서다.

실제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유제품 빙과 시장의 규모는 1조6837억원으로 2016년 1조9619억원보다 14.2% 줄었다. 2015년만 해도 시장 규모가 2조원을 넘어선 것을 고려하면 2년 만에 1조 중반대로 떨어졌다. 올해 1분기 매출도 2893억원에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 감소했다.

커피 전문점이 늘어나면서 아이스커피·빙수 등 아이스크림을 대체할 상품이 급격히 증가했고 아이스크림을 찾는 어린이들의 숫자가 줄어든 것이 직격탄이 됐다.

그나마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올해 초부터 실시한 가격 정찰제다. 가격 정찰제는 유통점포마다 천차만별인 아이스크림 판매 가격을 일원화한 것이다. 빙과업체가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고 과도한 가격경쟁을 해소해 시장 안정화를 이루기 위해 도입했다.

롯데제과 셀렉션·티코(4500원), 해태제과 베스트원·체리마루·호두마루(4500원), 빙그레 투게더(5500원), 롯데푸드 구구(5000원) 등 카톤(Carton) 제품이 주요 대상이다.

기존 할인율을 고수하려는 유통점주와의 갈등이 있지만 이번엔 다르다는 것이 빙과업계의 주장이다. 시장 상황이 추가로 나빠지면 영업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업계에서는 해당 제품들의 가격 정찰제가 어느 정도 시장에 안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비정상적 유통구조로 영업이익률이 낮아지면서 공격적인 신제품 개발이나 광고, 마케팅 등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며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장 정상화는 빙과업계의 오랜 과제"라며 "업계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ke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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