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을게, 다 기억할게.." 세월호 의인 김관홍 잠수사 2주기 추모제

김형규 기자 2018. 6. 1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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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주차장에 노란 리본 스티커를 부착한 차량이 하나둘 들어섰다. 옷깃에 노란 리본 배지를 달고 팔목엔 노란 팔찌를 찬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초여름 하늘은 자욱한 안개로 흐렸다.

17일 오전 11시 경기도 고양시 벽제중앙추모공원에서 ‘세월호 의인’ 고(故) 김관홍 잠수사의 2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관 2층에 마련된 행사장에 가족과 지인, 세월호 유가족과 민간잠수사 동료 등 100여명의 추모객이 모였다.

17일 벽제중앙추모공원 추모관에서 열린 고 김관홍 잠수사의 2주기 추모제에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김형규 기자

김관홍 잠수사는 4년 전 세월호 참사 직후 자원봉사자로 현장에 달려가 292구의 시신을 수습한 25명의 민간잠수사 중 한 명이다. 당시 민간잠수사들은 심해 잠수 능력이 없는 해경을 대신해 선내 수색을 전담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잠수사들이 더이상 잠수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 지금도 우울증과 불면증, 자살 충동 등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잠수사들이 많다. 김관홍 잠수사는 생활고와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참사 두 해째인 2016년 6월 17일 심장 쇼크로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추모객들에게 인삿말을 전하는 고 김관홍 잠수사의 아내 김혜연씨. 김형규 기자

이날 추모제는 고인을 기리는 묵념으로 시작했다. “잊지 않을게. 다 기억할게. 아무도 외롭지 않게…” 가만히 눈 감고 선 참석자들 사이로 조용히 노랫말이 흘렀다.

김 잠수사의 친구인 이병도씨(45)가 고인의 약력을 낭독했다. 이씨는 지난 13일 치러진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 은평 지역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당선됐다. 이씨는 “관홍이 가고 나서 영전에 놓인 수첩에 ‘네 친구답게 살게’라고 적었다. 세상을 바꾸는 건 결국 시민의 관심과 참여인데, 그 참여의 한 방법으로 선거를 택한 것”이라고 했다.

이씨가 김 잠수사와 연을 맺은 건 2016년 총선에서 은평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나선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의 선거운동 자원봉사자로 함께 활동하면서부터다. 은평구 토박이였던 김 잠수사는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에 앞장설 사람을 국회에 보내겠다며 동갑내기 친구인 박주민의 선거운동을 열성적으로 도왔다.

벽제중앙추모공원에 모셔진 고 김관홍 잠수사. 가족들과 함께 한 생전의 밝은 모습이 담긴 사진들. 김형규 기자

박주민이 당선된 뒤엔 함께 ‘세월호 피해 지원 특별법’ 개정안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법안엔 세월호 참사 피해자를 민간잠수사와 자원봉사자, 소방공무원 등으로 확대하고 피해자가 완치될 때까지 육체와 심리 치료를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 잠수사는 이 법이 발의되기 불과 사흘 전 세상을 떠났고, 그의 유지를 담아 법안엔 ‘김관홍 잠수사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김관홍법은 발의된 지 2년여가 지난 올해 2월에야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법제사법심사위원회에서 자유한국당의 반대에 막혀 아직 본회의에 넘어가지 못한 상태다. 이날 추모사를 하러 나선 박주민 의원은 “지금쯤 관홍이가 옆에 있었으면 아마 잔소리를 많이 했을 것 같다. 그 잔소리가 아쉽고 그립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올해 하반기엔 김관홍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관홍이와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의정활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고인의 영전에 절하는 동료 민간잠수사들. 김형규 기자

김 잠수사와 생전에 남다른 연을 맺었던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세월호 진상규명에 앞장서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겠다”고 입을 모았다.

박래군 4·16연대 공동대표는 “세월호 진상규명과 민간잠수사 명예회복, 그리고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이라는 꿈까지… 관홍이가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떠난 그 일들은 이제 살아남은 우리 모두의 과제가 됐다”면서 “그가 만들고 싶었던 세상을 우리가 같이 만들자”고 호소했다.

고 김관홍 잠수사 2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한 추모객이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김형규 기자

황병주 잠수사는 “관홍이가 살아있었다면 아마 지금쯤 잠수를 하는 대신 세월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전히 유족들과 같이 풍찬노숙 하며 싸우고 있었을 것”이라며 “이젠 우리 민간잠수사 동료들이 너를 대신해 세월호 진실을 찾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을 대신 하겠다”고 말했다.

장훈 4·16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장은 “그 캄캄한 바닷속에서 미로 같은 선실을 헤치고 우리 아이들을 품에 안고 한명씩 한명씩 데리고 나온 영웅, 그 영웅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 가슴에 한이 된다”면서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께 부탁드린다. 이젠 단 한 명도 더 못 보낸다. 더이상 우리 곁을 떠나지 말고 함께 남아 싸워달라”고 말했다.

고 김관홍 잠수사의 2주기 추모제가 열린 벽제중앙추모공원 추모관. 김형규 기자
추모제가 열린 벽제중앙추모공원 주위에 고 김관홍 잠수사를 기리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김형규 기자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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