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후 보편요금제도 탄력, 곧 국회 법안 제출읽음

송진식 기자
참여연대, 경실련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2018년 1월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보편요금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 참여연대 제공

참여연대, 경실련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2018년 1월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보편요금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 참여연대 제공

6·13 지방선거 이후 정치권에만 정계개편이 예정돼 있는 게 아니다. 통신업계에도 보편요금제 도입 문제가 ‘후폭풍’으로 불어닥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해 6월 대통령의 선거공약인 통신비 인하의 주요 방안으로 ‘보편요금제’를 제시한 바 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보편요금제 도입은 실현되지 못했다.

통신비 인하방안 중 저소득층과 노인층에 대한 요금 인하는 올 들어 시행됐지만 이것만 가지고 대통령의 공약이 실현됐다고 보기 어렵다. 국정기획위가 당시 밝힌 ‘전체 최대 4조6000억원의 인하효과’ 중 보편요금제가 차지하는 인하효과가 절반에 가까운 2조2000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보편요금제는 통신비 인하 논쟁에서 최대 관건이었던 ‘휴대전화 기본요금 폐지’를 포기하는 대신 정부가 꺼내든 카드라는 점에서도 도입 여부가 중요하다.

정부와 여당은 6·13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 압승을 발판 삼아 보편요금제 도입을 위한 입법화에 본격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간 통신업계가 보편요금제 문제와 관련, ‘불확실성’ 요소로 꼽았던 5세대(G) 이동통신 주파수 경매도 6월 중 마무리된다. 이통사들의 계산기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당초 통신업계는 지방선거가 보편요금제 문제에 있어선 이통사에 이득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 증권사는 전망보고서를 통해 “지방선거 공약에서 통신비 인하 문제가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만큼 선거가 종료되면 이슈가 한풀 꺾여 이통사들에게 호재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여당 압승이라는 ‘변수’
지방선거에서 각 정당이 제시했던 통신비 인하 공약도 통신업계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지방선거 공약집에서 아예 보편요금제 문제를 언급도 하지 않았다. 야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통신망을 이용해 사업을 하는 기업들이 통신비 일부를 부담케 하는 ‘제로레이팅’ 도입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제로레이팅은 통신업계가 통신비 인하 문제의 대안으로 수년째 주장해온 제도다.

역대 지방선거가 ‘여당의 무덤’으로 나타났던 점도 지방선거 이후 상황을 낙관하게 만든 요소였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특히 야당이 선거에서 약진할 경우 정부와 여당이 미는 보편요금제보다는 오히려 제로레이팅이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기대도 내심 품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통신업계의 기대는 여당이 선거를 싹쓸이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참패로 야권 정계개편이 불가피해지면서 제로레이팅 공약 역시 허공으로 날아갔다. 오히려 여당이 공약으로 자신있게 꺼내들지도 못했던 보편요금제는 재차 추진력을 얻게 생겼다.

지방선거 직전까지만 해도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던 보편요금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1년 동안 표류해온 게 사실이다. 논란이 컸던 사안인 만큼 정부는 지난해 11월 민·관 논의기구인 가계통신비정책협의회를 띄워 정책화를 시도했다. 기대와 달리 협의회는 보편요금제 문제에 대해 내부적으로 격론만 벌이다가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한 채 석 달 만에 활동을 종료했다. 협의회가 막히자 정부는 5월 11일 대통령 직속기구인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통해 보편요금제 출시 등을 의무화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남북 이슈와 지방선거로 정국이 요동치는 상황 속에서 법안은 아직 국회에 제출되지 못했다. 법안을 제출한다 해도 야당이 반대할 경우 통과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은 11석을 얻어 전체 의석이 130석으로 늘었다. 정치권에서는 여당이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과 연대에 나설 경우 이른바 ‘범여권’이 되는 의석을 국회 과반이 넘는 150석 이상으로 보고 있다. 굳이 자유한국당이나 바른미래당 도움 없이도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것이다. 설사 여당이 범여권을 규합해 법안 단독처리에 나서지 않는다 해도 국민 90%가 “통신비가 비싸다”고 지적하는 마당에 선거에서 참패한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보편요금제를 무작정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통신업계에서 나온다.

정부도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전영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이용제도과장은 “개정안은 현재 법제처 심의를 기다리는 중”이라며 “국무회의 의결 등이 마무리되는 대로 6월 말쯤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주파수 경매 더 이상 핑계 안돼
이통사들이 보편요금제 도입에 반발하면서 내놓던 이유 중 한 가지가 5G 주파수 경매였다. 주파수 경매가 얼마에 어찌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보편요금제와 같이 시장을 뒤흔들 요금제를 검토하기 어렵다는 논리였다. 주파수 경매가 이통사 입장에서는 큰 비용을 지출하는 연례행사인 건 맞다. 6월 15일 시작된 5G 주파수 경매만 해도 주력 주파수인 3.5㎓ 대역 280㎒폭의 최저경매가격이 2조6544억원(이용기간 10년)이다. 경매 결과에 따라 기업 재무상황에 주는 영향도 클 수밖에 없다. 이통사들이 주파수 경매를 불확실성 요소로 꼽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주파수 경매도 6월이면 모두 마무리된다. 이통사들이 더 이상 불확실성을 운운하며 보편요금제를 외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정부가 제시한 최저경매가격을 놓고 통신업계 일각에서 “비싸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통사들이 높은 경매가를 이유로 보편요금제 도입을 반대하고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설득력이 없다”고 일축한다.

2016년에 진행된 4세대(G) 이동통신 주파수 경매의 경우 최종 낙찰된 주파수 용량은 총 100㎒폭이었다. 이번 5G 주파수 경매에 매물로 나온 용량의 3분의 1 수준이었지만 최종 낙찰가는 2조1106억원이었다. 이 때문에 과거 세 차례 주파수 경매 결과와 비교할 경우 5G 주파수의 최저경매가가 오히려 너무 싸다는 지적이 정보기술(IT)업계에서 나오기도 했다.

정부 내에서도 주파수 값을 더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만만찮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파수 경매를 통해 확보된 비용은 정부가 운용하는 방송통신발전기금, 정보통신진흥기금의 주요 재원이 된다. 과기정통부의 2018년 방송통신발전기금 예산안 8029억원 중 3542억원이 바로 주파수 경매로 확보한 돈이다. 이 때문에 정부 내부에서는 세수확보 차원에서라도 3.5㎓ 대역 주파수를 적어도 두 차례 이상 나눠서 경매하는 방안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예컨대 이번처럼 280㎒폭을 한꺼번에 내놓을 게 아니라 5G 설비 구축 초기에 절반을 공급한 뒤 한창 5G 이통시장이 활성화돼 이통사들이 추가 주파수 공급에 목말라 할 때 나머지 절반을 경매에 부친다면 낙찰가격을 훨씬 더 높게 받을 수 있다는 논리다.

주파수 경매방법을 놓고 격론이 벌어진 가운데 과기정통부가 “5G망 구축은 이통사뿐만 아니라 국내 모바일, 사물인터넷(IOT) 생태계 조성에 꼭 필요하다. 정부도 일정 부분 리스크를 부담해 주파수를 처음부터 폭넓게 제시해야 한다”고 설득한 끝에 가까스로 280㎒폭을 한꺼번에 공급하는 방안으로 확정됐다는 후문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영국 등은 매출 대비 주파수 사용료 지출이 10%가 넘어가는 데 비해 국내의 경우 지출비율이 5% 수준도 안된다”며 “낙찰가가 6조원을 넘어간다 해도 주파수 경매비용 문제를 보편요금제 도입 문제와 연관시키는 건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KT 홍보모델이 ‘데이터온’ 요금제 가입자 10만명 달성 돌파 홍보 팻말을 들고 있다. / KT제공

KT 홍보모델이 ‘데이터온’ 요금제 가입자 10만명 달성 돌파 홍보 팻말을 들고 있다. / KT제공

정부 “이통사 자구책 나와도 법안 추진”
보편요금제 도입의 마지막 변수로 거론되는 게 이통사들이 보편요금제의 대안으로 선보이는 일종의 자구책들이다. 5월 30일 KT는 월 2만4000원(25% 요금할인 기준)대에 음성통화 무제한, 데이터 1기가바이트(GB)를 제공하는 ‘데이터온’ 요금제를 선보였다. 이 요금제는 출시되자마자 시장에서 “사실상의 보편요금제”라는 평가를 받았다.

과기정통부가 올 5월 정부의 규제개혁심사위에서 보편요금제의 ‘예시안’으로 들었던 요금기준은 월 2만원(납부금액 기준)에 음성통화 200분, 데이터 1GB였다. 이 예시안과 KT의 데이터온 요금제를 비교해보면 데이터 기본 제공량은 동일하되 데이터온 요금제가 무제한 음성통화를 제공하는 대신 월 납부금액이 예시안보다 4000원가량 비싸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이통사들이 선보인 4G 요금제 중에서는 정부의 보편요금제 예시안과 가장 근접한 게 사실이다.

통신업계는 요금제를 이통사끼리 모방하는 게 일상화됐다. KT가 2015년 5월 요금제를 전면 개편해 ‘데이터 중심요금제’를 처음 선보였을 당시에도 보름도 채 안돼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거의 동일한 조건의 데이터 요금제를 선보인 바 있다. KT가 보편요금제와 얼핏 유사한 데이터온 요금제를 내놓은 이상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도 이에 대응하는 요금제를 내놓을 것이라는 건 쉽게 예상이 가능하다. 이를 근거로 통신업계에서는 이통사들이 스스로 보편요금제에 준하는 요금제를 출시한다면 정부가 굳이 법률로 보편요금제를 강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의 생각은 어떨까. 요금을 인하하기 위한 이통사의 노력은 평가받을 만하지만 데이터온 요금제 출시와 보편요금제 도입은 별개 문제라는 게 과기정통부의 입장이다. 이통사들이 데이터온 요금제를 베끼든 더 나은 요금제를 내놓든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대한 입법 추진은 그대로 간다는 뜻이다. 전성배 과기정통부 통신정책국장은 “단순히 2만원대에 데이터를 1GB 주는 요금제가 필요했다면 정부도 굳이 법으로 보편요금제를 추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국장은 “갈수록 통신가입자의 데이터 사용량이 늘어나는 추세여서 2년 뒤에는 1GB 용량도 보편요금제 기준엔 적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소득주도 성장을 추구하는 정부 기조에 부합하려면 가계통신비 인하에 꾸준한 효과를 내기 위해서라도 법으로 보편요금제의 기준 등을 정해 운용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정부가 마련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는 보편요금제 출시의무 외에도 보편요금제의 기본 제공 데이터량과 요금수준을 2년에 한 번씩 시민단체와 정부, 기업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과기정통부 장관이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보편요금제를 도입할 경우 이통3사의 매출이 연간 7812억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보편요금제 도입 등 이통사의 요금 인하 노력을 2021년 예정된 주파수 재할당 등에 반영할 의지가 있다고 밝히는 중이다. 보편요금제 도입으로 실제 매출이나 이익 감소가 있다면 일정 부분을 재할당 대가에서 차감해주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를 위해 올해 초 관련 고시도 개정해둔 상태다. 다만 이 같은 ‘당근’이 이통3사를 얼마나 설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보편요금제 도입을 강제하는 것도 문제지만 2년마다 보편요금제 기준을 정부가 바꿀 수 있도록 한 것이 이통사 입장에서는 더 치명적”이라며 “이통사들도 최대한 국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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