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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없는리뷰] 맥주가 어울리는 85점짜리 안주 ‘독전’

2018-06-15 17:25:08

[김영재 기자] 5월22일 ‘독전’이 개봉했다. 물론, 결말 ‘스포’는 없다.

★★★☆☆(3.1/5)

영화 ‘독전(감독 이해영)’은 제작사 용필름이 만든 신(新) 번안작입니다. 그간 용필름은 다국적 원작에 기반한 ‘표적’ ‘뷰티 인사이드’ ‘럭키’ ‘아가씨’ ‘침묵’을 제작해왔죠.

‘침묵’처럼 ‘독전’도 홍콩 영화가 원작입니다. 배우 최민식은 ‘침묵’을 두고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영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을에 어울리는 영화는, 잘 번안된 수작임에도 소구 관객층이 불분명한 약점에 폭 고꾸라졌습니다. 흥행에 실패했죠. 하지만 ‘독전’은 달라요. 소주보단 맥주가 어울리는 영화고, 타깃 관객층도 분명합니다.

주인공 원호(조진웅)는 마약 수사반 팀장입니다. 원호가 쫓는 이는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심지어 성별도 모르는 이선생입니다. 유령 마약 조직의 우두머리 이선생을 잡기 위해 원호는 “미친놈” 소리를 들어가며 2년째 헛발질만 해오고 있습니다. 그런 주인공 앞에 이선생의 수하 영락(류준열)이 나타나요. 영락은 원호에게 누군지 아무도 모르는 이선생을 당신은 잡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원호는 말합니다. “나는 잡는다.”

원호에게 이선생은 미치도록 잡고 싶은 신념입니다. 영락의 협조 아래 원호는 해가 뜨고 질 때마다 그 신념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섭니다.


‘독전’은 이해영 감독의 존재가 물음표를 안기는 작품이었습니다.

그간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 등을 연출한 경력을 폄하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약 100억이 넘는 제작비는 작품에 ‘대작’ 딱지를 붙일 수 있는 큰 액수죠. 더불어 총, 마약, 욕설, 가슴이 등장하는 이 비싼 ‘마약 누아르’에서 액션은 극의 백미가 돼야 했습니다.

하지만 ‘독전’은 익히 예상한 액션을 전합니다. 액션 신이 참 별로예요. 하이라이트 액션 신의 경우 도입은 멋지나 본 공연은 맛이 떨어집니다. 눈엣가시 같은 약점이에요.

그럼에도 ‘독전’은 봐야 할 영화입니다.

우선 소위 ‘비주얼버스터’라는 신조어로 소개되어온 작품답게 미장센이 좋습니다. 물론 ‘있는 척’ 하는 영화란 혹평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작부터 관객의 눈과 가슴을 차갑게 식히는 눈 덮인 노르웨이는 다른 한국 영화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촬영이고 풍광이죠.

인상적 구절이 적힌 책장(冊張)마다 종이의 한 귀퉁이를 접듯 인상적 장면마다 별표를 매기자면, ‘독전’은 약 22개의 다시 보고 싶은 신을 가진 작품입니다. 그중엔 배우의 감정 변화를 얼굴의 솜털마저 잡아내겠다는 의지로 카메라를 가까이에 댄 클로즈 업도 있고 멀리서 관조하듯 바라본 부감도 있어요. 그리고 어느 쪽이든 ‘있는 척’에 충실한 화면은 ‘독전’을 극장에서 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으로 격상시킵니다.

‘독전’의 영제는 ‘빌리버(Believer)’입니다. 제목처럼 영화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데, 그 방식이 꽤나 노골적이어서 영제를 모르는 관객도 대사로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쉽다’는 ‘친절하다’와 이어집니다. 하지만 믿음을 소개하는 친절함에는 그 어떤 묵직함도 없죠. 겉으로 보기엔 단단해 보이나 한 입 물면 서걱서걱 씹히는 해장국 선지처럼 이 묵직한 듯 보이는 검은빛 질문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총천연색 비주얼과 따로 놉니다.

그리고 ‘따로 국밥’은 진실을 마주한 원호의 한마디로 관객을 혼란케 합니다. 행복을 논하는 원호의 대사는 분명 원호와 락의 믿음과 신뢰에서 비롯돼야만 했어요. 믿거나 안 믿는 오리무중 가운데 믿음직한 대상은 비주얼만큼 화려한 연기 열전입니다.


언론시사회에서 이해영 감독은 “배우들이 캐릭터로 돌진한 그 매혹의 순간이 오랫동안 회자되는 영화로 남으면 좋겠다”라고 했죠. 분명 ‘독전’의 약점을 메꾸는 건 이해영 감독이 의도한 쉼 없는 저돌성, ‘척’ 하는 미장센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예요.

‘독전’은 배우 고(故) 김주혁의 마지막 유작입니다. ‘공조’ 차기성보다 진일보한 그의 진하림 연기는 ‘공조’ ‘석조저택 살인사건’을 잇는 김주혁 악역 연기의 완성판이에요. 물론 소위 ‘인생 연기’는 아닙니다. 진화와 자기 복제 가운데 알쏭한 연기였죠. 비슷한 성향의 캐릭터가 한 작품 안에 다수 등장한 탓에 역할의 신선도는 떨어졌고요.

그럼에도 하나는 변함이 없어요. ‘독전’서 강렬한 연기로 상반기 최고 신스틸러로 자리매김한 진서연은, 김주혁이 이번 영화를 촬영하며 이제 좀 연기가 재밌어진다고 했다며 떠난 이를 회상했죠. ‘독전’이 어떤 영화든 김주혁은 ‘독전’서 최선을 연기했습니다.

반면 마약 조직원 영락을 연기한 류준열에겐 아쉬움이 남습니다. 지난해부터 그는 전면에 나서기보다 주연을 보조하는 역을 맡아왔습니다. 비중은 높았지만, 그만의 ‘연기’를 선보이기는 힘든 역을 이어왔죠. 다행히 ‘독전’의 영락은 시대에 피폭된 ‘택시운전사’ 재식, 사생 팬 ‘침묵’ 동명, 고향의 청춘 ‘리틀 포레스트’ 재하보단 표현할 거리가 많은 역입니다.

그럼에도 류준열의 영락은 류준열만의 영락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물론 영락의 감정 변화는 소름을 돋게 했어요. 드디어 표현할 거리를 관객에게 보여줬죠. 그러나 그것은 배우 류준열이 갖고 있는 무채색 얼굴에 이해영 감독이 원색을 덧칠한 것일 뿐, 배우의 공은 아닙니다. 어떤 색이든 흠뻑 머금을 수 있는 외모의 공이고, 이야기의 힘이에요. 자세히 살펴보면 류준열의 영화엔 누구를 연기하는 류준열이 있어요. 류준열이 만든 새 인물은 없죠. 류준열만 보여요. 강약을 동시에 갖춘 특징입니다. 류준열은 구름 위를 걷는 배우입니다. 붕 떠 있어요. 충무로 차세대 주자는 구름 위에 있을 때 제 색을 찾아야 합니다.

‘독전’은 관객의 호불호가 점수 매기는 데 어려움을 안기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메시지보다 오락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독전’은 오랜만에 등장한 시원스러운 품새의 영화입니다.

조진웅은 언론시사회서 못다 한 한마디로 ‘독전’을 “시원한 오락 범죄극”이라고 표현했어요. “아주 스트레이트한 영화”라며 시원하게 보고 갔으면 좋겠다고 했죠.

둘 모두 용필름이 만든 영화임에도 ‘독전’은 ‘침묵’의 반대 면입니다. 최민식의 ‘침묵’이 소주를 부른다면 조진웅과 류준열의 ‘독전’은 맥주를 불러요. 호불호 갈리는 입소문만 봐도 좋은 안주는 아니에요. 그렇지만 술맛을 떨어뜨릴 안주 역시 아닙니다. 모든 영화가 100점일 필요는 없어요. 때로는 85점짜리 안주가 술맛을 더 돋워줄 때도 있습니다.

(사진제공: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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