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대칭의 이 세계, 아름답다

김유진 기자

뷰티풀 퀘스천

프랭크 윌첵 지음·박병철 옮김

흐름출판 | 552쪽 | 2만5000원

작품 대상인 사물에 공간적 변형을 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예술인 애너모픽 아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나타냈다(아래 그림). 프랭크 윌첵은 애너모픽 아트가 ‘시공간의 왜곡변형에 대한 불변성’을 뜻하는 일반 상대성이론의 대칭 개념과 유사하다고 본다. 태극 문양의 음과 양을 표현한 중국 전통 서예가 쉬파 헤의 그림(오른쪽 위 그림)에서는 우주의 기원에 관련된 양자적 과정, 그리고 이를 이해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읽어낸다. 오른쪽 아래 그림은 영국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가 그린 ‘뉴턴’(1795~1805).  흐름출판 제공

작품 대상인 사물에 공간적 변형을 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예술인 애너모픽 아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나타냈다(아래 그림). 프랭크 윌첵은 애너모픽 아트가 ‘시공간의 왜곡변형에 대한 불변성’을 뜻하는 일반 상대성이론의 대칭 개념과 유사하다고 본다. 태극 문양의 음과 양을 표현한 중국 전통 서예가 쉬파 헤의 그림(오른쪽 위 그림)에서는 우주의 기원에 관련된 양자적 과정, 그리고 이를 이해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읽어낸다. 오른쪽 아래 그림은 영국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가 그린 ‘뉴턴’(1795~1805). 흐름출판 제공

‘이 세계는 하나의 예술작품인가’라는 물음은 사실 답이 정해져 있는 셈이다. ‘예 또는 아니요’로 두 개의 선택지를 제시하기는 하지만,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쪽에서 먼저 예술을 거론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뷰티풀 퀘스천>은 위의 질문을 던지며 시작하는데, 접근 방법이 이채롭다. 예술과는 얼마간 떨어져 있는 듯한 과학 이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프랭크 윌첵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는 피타고라스부터 뉴턴,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과학 영웅’들을 소환하며 세계가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저자는 자연도 “예술가처럼 고유의 스타일을 갖고 있다”며 “자연의 예술을 음미하려면 자연만이 갖고 있는 스타일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자연의 스타일에 공감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서 일정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과 같다. 갈릴레이는 대한민국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되는 ‘수포자’에게 절망을 한 아름 안길 만한 말을 남겼다. “(자연)철학은 우리 눈앞에 펼쳐진 위대한 책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그 책이란 다름 아닌 우주, 그 자체이다. 그러나 거기 사용된 언어와 기호부터 배우지 않으면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이 책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적혀 있으며, 사용된 기호는 삼각형이나 원 등 기하학적 도형들이다.”

다행히도 이 책은 수학과는 도무지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 없는 이들에게도 자연의 아름다움에 다가서기 위한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할 것 같다. 물론 책에는 더러 수식이 등장한다. 특히 현대 양자역학에 관한 설명은 어쩔 수 없이 난해하다. 그래도 저자는 최대한 친절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는 컴퓨터 속 데이터를 모조리 날릴 뻔했다가 백업 디스크 덕분에 복구한 다음 피타고라스를 떠올리는 사람이다. “어떤 형태의 정보건 0과 1이라는 숫자 열에 저장해놓으면 언제 어디서나 재현 가능하다”면서 ‘모든 것에 수가 있다’고 한 피타고라스의 혜안에 감복한다.

저자가 보기에 자연의 스타일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대칭’과 ‘경제성’이다. 대칭은 “조화와 균형, 절묘한 비율”로 표현되지만, 단지 좌우나 상하의 대칭을 뜻하지는 않는다. 공을 돌려도 모양이 같은 것처럼, 물리학에서는 ‘변환을 가해도 변하지 않는 속성’, 즉 ‘변화 없는 변화’가 대칭을 의미한다. 경제성은 “최소한의 방법으로 다양한 효과를 낳는다”는 뜻인데, 모든 법칙을 숫자로 단순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대칭과 경제성이라는 두 개의 대원칙이 위대한 과학 이론들에 어떻게 깃들어있는지를 보여준다.

수와 음의 법칙을 발견한 피타고라스 이야기로 시작한 저자는 철학자 플라톤에 주목한다. 플라톤은 다섯 개의 대칭도형에 기초한 ‘원자론’을 정립했다. 불의 원자가 정사면체를 닮은 것처럼 물은 정이십면체, 흙은 정육면체, 공기는 정팔면체, 우주 전체는 정이십면체 형태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터무니없는 이론이지만, 대칭을 통해 자연을 추적한다는 발상은 2000여년 과학사를 이끌어 온 핵심 동력이었다. 저자가 “진리의 정수가 담긴 아름다운 비유”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플라톤의 유명한 ‘동굴의 인간’ 비유도 과학적 세계관의 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플라톤은 눈에 보이는 외형을 벗기고 실체를 파악해 ‘이데아’(이상향)에 도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굴 속에서 그림자만을 보는 인간의 제한된 감각을 뛰어넘어 실제를 보기 위해선 수학과 물리학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이 사물에 내재된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으로 과학적 사유의 기초를 쌓았다면, 뉴턴은 ‘분석과 종합’을 통해 근대 과학으로 가는 문을 열어젖혔다. 뉴턴은 관측과 측정, 기하학과 방정식을 통해 세계를 서술했고 수학의 언어로 자연과 우주의 본질을 설명했다. ‘최초의 물리학자’ 맥스웰은 한발 더 나아간다. 자연에 존재하는 수학적 아름다움에서 출발해 자연의 법칙을 추론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맥스웰은 빛, 전기, 자기에 관한 이론을 하나로 통합했고, 빛이 곧 전자기파라는 사실을 방정식으로 증명했다. 맥스웰 방정식은 후대 과학자들에게 방정식에 대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했고, “입력보다 출력이 많은 콘텐츠”로 활용되고 있다.

[책과 삶]대칭의 이 세계, 아름답다

책은 과학계의 남성중심적 분위기 탓에 업적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독일 여성 수학자 에미 뇌터에 대해서도 한 장을 할애한다. 뇌터는 최초로 수학적 대칭과 물리 법칙 사이의 긴밀한 관계, 즉 ‘물리 법칙이 대칭적이면 그에 대응하는 보존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뇌터의 정리는 에너지보존법칙과 일반상대성이론을 도출하는 수학적 근거를 마련했다. 저자는 뇌터의 정리 덕분에 “아름다운 방정식은 틀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고 평가한다.

대칭은 20세기 양자역학을 비롯해 최첨단을 달리는 현대 물리학 이론에도 기본 전제로 깔려 있다.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국소대칭원리는 중력·전자기력·약한 핵력·강한 핵력 등 네 개의 힘을 이용해 우주의 모든 입자를 설명하고자 하는 표준모형(코어이론)에 공통으로 적용된다. 저자는 시공간에 다른 속도를 더해도 물리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는 국소대칭의 개념 속에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이 열성적으로 추구했던 ‘조화’와 ‘개념적 순수함’”이 존재한다고 밝힌다.

“이론의 최종 결정판”으로까지 불리는 코어이론을 비롯해 쿼크, 글루온, 액시온 등 비전공자에게는 ‘낯선’ 이름들이 나오는 책의 후반부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윌첵은 최소입자인 쿼크가 높은 에너지에서 자유입자처럼 행동한다는 ‘양자색역학의 점근적 자유성’을 발견한 공로로 200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난제에 대한 해답을 얻은 그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시를 되뇌인다는 대목은 슬며시 미소짓게 만든다. “새로운 행성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 나는 하늘을 관찰하는 관측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또는 독수리의 눈으로 태평양을 응시하는 강건한 코르테스가 된 것 같았다.”(존 키츠)

코어이론은 아직 암흑물질에 대해서까지는 규명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하지만 윌첵과 같이 세계의 아름다움을 믿고 과학 법칙을 도출하는 데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에 의해 이론은 앞으로도 전진할 것이다. 48세에 숨진 맥스웰은 20대에 쓴 일기에서 “행복한 사람이란 오늘 하는 일이 자신의 인생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영원의 작업을 구현하는 사람”이라고 썼다고 한다.

그런데 세계가 예술작품이라고 한다면, 우리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지구에 사는 70억명의 하나이며, 지구는 태양계 행성의 하나이며, 태양은 은하수를 이루는 1000억개 별 가운데 하나이다. ‘별먼지’보다도 못한 우리는 물질로 이뤄져 있지만, 동시에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존재다. 당연한 사실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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