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에 누군가 있다 / 찰스 퍼니휴 지음 / 박경선 옮김 / 에이도스 펴냄 /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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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시계태엽을 저 멀리 고대 사회로 거슬러 가보자. 철학자 플라톤은 조현병 증상을 긍정했던 인물이다(물론 그는 이 병의 존재를 몰랐을 것이다). 그는 '테아이테토스'에서 생각을 정의하길, "무엇을 고찰하든 혼이 자신과 나누는 대화"라고 했다. 그러고는 이처럼 덧붙인다. "내 생각을 말하는 것뿐일세. 내가 보기에 혼이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혼이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하고 긍정하고 부정함으로써 자신과 대화하는 것일세."
스승 소크라테스는 말할 것도 없다. 자기만의 목소리를 들었던 가장 유명한 고대인 중 하나가 바로 그다. 그런 그를 일컬어 제자 플라톤은 "스승이 어린 시절부터 줄곧 들었던 그 목소리는 늘 부정적이고 비판적이었다"고 회고했고, 또 다른 제자 크세노폰은 반대로 "친절하고 건설적이었다"고 묘사했다.
철학자들만 그랬던 건 아니다. 1429년 핍박받는 민중의 딸 잔 다르크는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그랬기에 영국과의 백년전쟁으로 위기에 처한 자국을 극적으로 구해낸다. 예수 또한 그랬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인류의 죄를 대속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아버지 신의 계시가 앞서 있었다. 요즘 같아선 병으로 치부됐을 증상을 이들은 성스러운 무언가로 승화시킨 것이다. '내적 발화', 즉 마음의 소리는 문학인들에게도 중요한 것이었다. 찰스 디킨스는 1841년 친구 존 포스터에게 보낸 편지에 이처럼 쓴다. "이 고통과 통증의 한가운데서 내 책을 마주하고 앉을 때면, 어떤 선한 힘이 그 모든 것을 내게 보여주며 내 관심을 유도해. 내가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정말 안 해-'바라보는 거야.'"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 또한 그렇게 탄생한 책이다. 한 번은 그가 런던의 타비스톡 광장을 걷고 있을 때였다. "느닷없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쑥" 어머니의 목소리가 울프의 내면을 기습했다. 딸은 그렇게 꼼짝없이 "어머니에게 붙들린 상태로" 그 음성을 활자로 옮긴다. 그러고 나자 "더 이상 어머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결국 책이 하려던 말은 이런 것이다. 우리 머릿속을 침범하곤 하는 느닷없는 목소리들은 꼭 병적인 것만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우리 자아의 내밀한 메시지를 전하는 귀한 전령일 수 있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는 거꾸로 이렇게 물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의 문제는 무엇인가"가 아닌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라고.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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