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각각 휘발유 값.."국제 유가 아닌 옆 주유소가 결정"

조지원 기자 입력 2018. 6. 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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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로 리터당 최고 600원 차이…옆 주유소와는 ‘1원 경쟁’

지난 14일 서울 성북구 강산주유소(왼쪽)과 서울 중구 장충주유소의 가격 안내판 /조지원 기자

국제 유가 상승 영향으로 국내 휘발유 판매 가격이 오르면서 서울에 리터(ℓ)당 2200원이 넘는 주유소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리터당 1600원을 넘지 않는 가격대를 고수하는 곳도 있어 주유소별 휘발유 가격 차이가 갈수록 눈에 띄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2시쯤 찾은 서울 성북구 보문동 강산주유소(GS칼텍스) 직원들은 주유하기 위해 몰려드는 차량 때문에 쉴 틈 없이 움직였다. 이 곳은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577원으로 성북구에서 가장 저렴하다. 이날 서울 평균 가격 1695.74원보다 리터당 118.74원이 쌌다. 이미 승용차 3대가 주유하고 있던 강산주유소에는 구급차, 오토바이 등 각종 차량이 몰려들었다.

강산주유소로부터 불과 3㎞ 떨어져 있는 서울 중구 장충동 장충주유소(SK에너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검은색 중형차 한 대가 세차장으로 들어갔을 뿐 주유하고 있는 차량은 한 대도 없었다. 장충주유소는 리터당 2243원으로 서울에서 가장 비싼 주유소 중 하나로 꼽힌다.

장충주유소와 강산주유소는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두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666원이나 차이가 났다. 휘발유 20리터를 주유했을 경우 강산주유소에서는 3만1540원이면 되지만, 장충주유소에서는 4만4860원을 내야한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두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 차이가 크게 나는 이유는 서로 경쟁하는 주유소가 다르기 때문이다. 성북구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평균 휘발유 가격이 9번째로 낮은 지역인 반면 중구는 가장 비싼 지역이다. 특히 중구는 도심 지역이라 땅값이 비쌀 뿐 아니라 인근 관공서의 법인카드 결제 고객이 많아 휘발유 가격이 비싸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충주유소 관계자는 “중구 지역 내 다른 주유소들의 가격에 맞추다보니 휘발유 값이 다른 곳보다 비싼 편”이라며 “주유 차량이 많지 않아도 높은 마진으로 장사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시내 주유소들은 휘발유 값이 저렴한 곳이든 비싼 곳이든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옆 주유소 가격’이라고 입을 모았다. 휘발유 가격이 싼 지역은 마진을 적게 하되 많이 파는 박리다매 방식을 쓰고, 비싼 지역은 덜 팔더라도 많이 남기는 ‘고마진’ 방식으로 장사를 하는 식이다. 국제 유가나 정유사 공급가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옆집 주유소 상황이 가격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라는 것이다.

도봉구 최저가 H주유소 관계자는 “가격 결정 요인 별 것 없다. 주변 주유소와의 경쟁 때문에 싸게 책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 ‘요즘 대세’ 셀프주유소…중‧종로‧용산‧마포엔 ‘0곳’

주유소업계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버티기 위해 휘발유 가격을 낮추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펼쳐지고 있다. 특히 인건비를 아낄 수 있는 셀프 주유소가 갈수록 인기를 얻고 있다. 전국 셀프 주유소 수는 2013년 4월 1215곳에서 지난 4월 2900여곳으로 5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14일 전국 기준으로 셀프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586.33원으로 일반 주유소(1618.21원)보다 31.88원 쌌다.

/조선DB

하지만 서울 내 휘발유 값 상위 5개 자치구 중 중구, 용산구, 종로구, 마포구 등 4개구에서는 셀프 주유소가 한 곳도 없었다. 강남구는 셀프 주유소 12곳이 있지만, 전체 주유소(42곳)에서 차지하는 비율(28.5%)이 다른 자치구에 비해 낮은 편이다.

반면 휘발유 값이 싼 강북구, 중랑구, 도봉구, 은평구 등엔 셀프 주유소가 다른 지역보다 많았다. 특히 강북구는 11곳 중 8곳(72%)이, 중랑구는 18곳 중 9곳(50%)이 셀프 주유소다. 도봉구와 은평구도 각각 셀프 주유소 비율이 55.5%, 50%로 높은 편에 속했다.

셀프 주유소가 특정 지역에 몰려 있는 이유도 인근 주유소 간 가격 경쟁 때문이다. 일반 주유소가 비용을 투자해 셀프 주유소로 바꾸는 이유는 인건비를 아껴서 휘발유 값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한 것인데, 한 곳이 전환하면서 가격을 낮추면 주변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유소협회 관계자는 “경쟁이 굉장히 치열하기 때문에 주유소 한 곳이 셀프로 전환하면 인근 주유소도 바로 전환하는 추세”라며 “그렇기 때문에 각 지역의 경쟁 상황에 따라서 셀프 주유소가 아예 없거나 비중이 높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 “1원이라도 싸게”…주유소 밀집 지역은 출혈 경쟁

출혈 경쟁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광진구 중곡동 일대는 주유소 간 치열한 경쟁 때문에 휘발유 값이 떨어진 대표적인 지역이다. 500m가 안 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주유소 4곳이 몰려 있다 보니 서로 인건비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저가 경쟁을 펼치고 있다. 유지가 힘들어 폐업을 고려하는 곳도 나온다.

광진구 A주유소 사장은 “주유소 4곳이 한 군데 모여 있다 보니 가격이 1원만 더 비싸도 소비자가 찾지 않는다”며 “한 업체가 주도적으로 치킨게임(죽기살기식 경쟁)을 하면 나머지 업체들이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북서울고속주유소는 리터당 1537원으로 서울에서 휘발유 가격이 가장 싼 주유소다. 최근 사업주가 바뀌면서 고정 고객 확보 차원에서 출혈을 각오하고 최저가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 때문에 오피넷에서 최저가를 확인하고 찾아오는 소비자 발길이 끊이지 않지만, 이익을 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정부는 고유가 시대라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주유소 판매 가격을 낮추기 위해 경쟁을 촉진하고 있다”며 “하지만 일부 주유소는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휴폐업이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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