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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뤼미에르의 영화 뒤집기] `미세스 하이드` 이자벨 위페르가 선택한 ‘지킬&하이드’

입력 : 
2018-06-14 10:25:32
수정 : 
2018-06-14 11: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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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벨 위페르, 그녀는 프랑스 영화의 상징 같은 존재다. 40여 년간 약 1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면서 가장 프랑스적인 영화 캐릭터, 즉 사람의 외양보다는 내면,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디테일, 허를 찌르는 블랙 코미디, 실험적 장르의 특성을 극대화하는 작업에 참여했었다.

사진설명
이자벨 위페르는 부모를 살해하는 파격적인 역을 선보인 <비올레트 노지에르>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나치 치하에서 억척스런 삶을 산 기구한 여인의 일생을 보여준 <여자 이야기>로 베니스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정숙하고 우아한 가면을 벗어 던지고 강렬한 욕망을 분출한 <피아니스트>로는 다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물론 이런 성찬이 그녀의 연기를 평가하는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화려한 조건보다 ‘누구와 작업하는가’가 영화 선택의 기준이라는 그녀에게서는 장인의 열정과 정성을 발견할 수 있고 그 결과물 또한 만만치 않은 메시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공의 소유자 이자벨 위페르가 선택한 영화에 대한 기대치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관객의 허를 찌르는 부분이 있다. 혹시 제목을 보고 재미, 스릴러나 미스터리를 기대했다면 말이다. 영화는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서 제목과 소재를 가져왔다는 노골적인 선언답게 순전히 인간의 선과 악, 양면을 명쾌하게 보여주는 ‘이자벨 위페르의 개인기’에 의존했다. 이 점이 이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의 기준이 될 것 같다. 마리 지킬(이자벨 위페르)은 고등학교 기술반 물리 선생님이다. 그녀는 학교에서 거의 투명인간이다. 동료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지킬의 존재는 무시하기, 놀리기, 괴롭히기의 대상일 뿐이다. 그녀는 이런 상황이 마땅치는 않지만 익숙해져 있다. 특히 다리가 불편한 학생 말릭은 유난하다. 말릭은 몸의 불편함 때문에 반 친구들과 멀어질까 봐 지킬 선생님에 대한 괴롭힘의 강도를 일부러 높인다. 하지만 말릭 역시 학교에서 지킬 선생님과 같이 주변인일 뿐이다.

어느 날, 지킬은 자신의 연구실에서 전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전혀 뜻밖의 능력이 생긴 것을 알게 된다. 한밤중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그녀의 몸은 투명한 불이 되어 대상을 불태워 버리기도 하면서 스스로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채 ‘위험한 존재’ 즉 ‘미세스 하이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소극적이고 의욕 없던 지킬은 학교에서도 점차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선생님으로 변해 갔다. 아이들에게 실험실을 개방해 일종의 번개 충격 실험인 ‘패러데이 새장’을 알려주고 특히 공부에 전혀 관심 없던 말릭은 ‘생각하기’ 방식의 학습법을 통해 지식 탐구 학생으로 변모했다. 점차 지킬 선생님에 대한 학생, 학교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어느덧 지킬은 학교에서 가장 존재감 있는 선생님이 되었다. 하지만 지킬은 스스로도 감당이 되지 않는 ‘하이드의 힘’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녀는 이제 볼품없고 무시당했던 옛날의 지킬로 되돌아 가겠다고 결심한다.

영화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라는 큰 틀에서 인간에 잠재된 본능을 관찰한다. 그 기본 학습 재료는 19세기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역작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다. 이 소설은 인류가 종교, 철학, 문학 등에서 가장 깊은 관심사인 인간의 본성, 즉 선과 악의 양면성에 대한 기본 틀을 정리, 제공한 작품이다. 그가 <보물섬>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라는 대조적인 소설 모두를 완성해 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내면에 각기 다른 두 개의 재능을 지닌 자아가 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아무튼, 영화는 판타지 느낌도 있고 이야기의 개연성 아귀가 정밀하게 들어맞지도 않지만 이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인간의 양면성이라는 이야기가 중심을 잃지 않았고 그 중심에 이자벨 위페르가 있기 때문이다. 지킬과 하이드의 뚜렷한 캐릭터 변화를 섬세함으로 표현하는 위페르의 연기는 거의 교과서급이다. [글 블랙뤼미에르(필름스토커) 사진 영화 <미세스 하이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33호 (18.06.19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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