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그 후]갈 길 먼 장애인 참정권.."우리는 유령인가?"

김봉수 2018. 6. 1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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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지방선거 전국 투표소 236곳, 2~3층에 엘리베이터도 없어 접근 힘들어..관련 법 개정안 국회에서 1년째 계류
사진=아시아경제 DB.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투표소가 3층인데, 엘리베이터도 없어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투표하지 말라는 얘기죠."

지난 7일 서울시청사 앞에서 열린 빈곤사회연대의 6ㆍ13 지방선거 정책 제안 기자회견에서 한 장애인단체 관계자가 호소한 내용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을 거부하는 투표소들이 수두룩해 참정권을 제한받는다는 얘기다.

실제 당일 오후 1시10분쯤 서울 사직동 주민센터에 차려진 사전투표소를 찾아 가봤다. 좁은 복도ㆍ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2층에 차려져 있었지만,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비장애인들마저 좁은 복도ㆍ계단에서 10여분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였다. 장애인을 위한 배려는 조금도 눈에 띄지 않았다.

다음날 찾아간 인천 부평의 한 동주민센터 투표장도 마찬가지였다. 지하1층에 투표소가 위치해 있어 이동보조기구를 사용하는 지체장애인들은 누군가의 도움없이 투표장에 입장하기가 힘들었다.

금요일과 토요일인 7~8일 사용된 사전투표소의 경우 주로 평일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동주민센터 등을 이용한 까닭에 더 심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사전투표소 3512곳 중 82.5%인 2897곳의 경우 1층에 있거나(1620곳), 엘리베이터가 설치(1277곳)돼 있었지만, 나머지 17.5%(615곳)은 그렇지 못했다. 동주민센터 1층은 공무원들이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지하나 2~3층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휴일로 지정돼 동주민센터 등 관공서·각종 시설물의 1층을 쓸 수 있는 13일 본투표는 어떨까? 전국 1만4134곳의 투표소 중 1만3898곳은 1층(1만2243곳)이거나 엘리베이터(1655곳)가 설치돼 있어 그나마 장애인들이 이용하기가 편리하다. 그러나 여전히 236곳(1.7%)의 투표소, 즉 전국 시ㆍ군ㆍ구 별로 1곳씩은 2~3층임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게 현실이다. 정부는 이같은 236곳 투표소에는 1층에 장애인들을 위한 임시 투표소를 만들어 놓았다.

이처럼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투표소의 현실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기본적으론 투표소 선정 및 관리를 맡은 지방자치단체들의 무신경, 제도 운영과 개선을 담당한 행정안전부·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의 잘못이 크다. 정치권의 무관심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5월 대선 때에도 문제가 제기돼 국회에 관련 법안이 제출돼 있지만 보류 중이다. 즉 지난 대선 당시 전국에 설치된 3500개의 사전 투표소 중 1831곳이 지하나 2~3층에 설치돼 있었지만 대부분이 승강기가 없어 장애인들의 접근이 어려웠다. 이에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주요 내용을 보면, 투표소는 건물의 1층 또는 노약자ㆍ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갖춰진 곳에 설치하고 부득이한 경우 이동식 투표소를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기존 군부대 밀집 지역에 설치할 수 있었던 사전투표소를 유동인구가 많은 대학ㆍ공항ㆍ항만ㆍ철도역 등의 시설에도 추가로 설치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아직 상임위원회도 통과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배려 문제도 논의가 시작됐지만 갈 길이 멀다. 지난 8일 사전투표를 마친 문재인 대통령은 참정권 보장 요구 시위 중이던 발달장애인들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판단력과 정치적 소신은 있어도 언어 이해ㆍ기표 능력이 떨어지는 발달장애인들을 위해 다양한 대안을 마련해달라는 요구에 문 대통령은 흔쾌히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문제도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 2016년 국회에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전국 16만여명에 이르는 발달장애인들은 "우리가 유령이냐"고 호소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는 모든 주체들이 권리를 평등하게 행사할 수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참정권의 보장은 여성ㆍ흑인에 대한 역사에서 보듯 사회 발달의 척도로 여겨진다. 예산ㆍ제도가 충분히 보장될 수 있음에도 낙오된 현실은 과연 누구의 탓일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때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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