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업계 흔드는 '리들 이펙트'

2018. 6. 1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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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유럽대륙 휩쓰는 초저가 마트… 국내에서도 리들형 모델 진행 중

오늘날의 마트업계는 20년 전과 매우 다르다. 주말이면 자가용을 몰고 가족단위로 대형마트에서 일주일치 장을 보던 중산층은 소득 양극화로 인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소비자들은 저렴한 생필품을 온라인 최저가로 구입하기 위해 스마트폰 화면을 부지런히 스크롤다운 한다. 그렇다면 고객을 잃는 마트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아야 할까.

영국 노위치 소재 리들 매장 내부 모습. 상단 배너에 ‘품질 좋은 물건이 더 저렴한 곳’(Where Quality is Cheaper)라고 적혀 있다. / 게티이미지코리아

그래서 요즘 마트업계의 화두는 ‘리들 이펙트’이다. 초저가 독일계 마트인 리들(Lidl)이 유럽대륙을 휩쓴 데 이어 미국 시장까지 진출하며 기존 마트업체들을 긴장시키고 있어서다. 앞으로 마트가 갈 미래는 ‘리들’밖에 없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판이다.

리들은 독일에서 1973년 할인점 사업을 처음 시작한 이래 현재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29개국에서 1만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코스트코 같은 창고형 매장인데 교외가 아니라 도심지역에 있어서 접근성이 더 좋다. 매장에서는 ‘온라인 최저가’로도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저렴한 가격의 물건들을 판매한다. 영국 런던의 리들을 방문한 한 블로거는 “식료품이 엄청나게 싸서 뭘 잔뜩 구매해도 10파운드(한화 약 1만4000원)를 잘 안넘는 편”이라고 평했다. 아침식사 빵인 크로아상은 개당 400원, 기네스 500㎖ 캔맥주는 1400원, 샴푸는 1500원, 멜론 한 통에 1800원, 친환경 미국산 립아이 스테이크 300g을 약 6500원에 판매하는 식이다.

아마존은 잊어라, 진짜 라이벌은 리들

리들은 유통과정을 혁신해 좋은 상품을 파격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늘려나가고 있다. “이웃 경쟁점이 리들보다 더 싼 가격에 물건을 내놓으면 무자비할 정도로 그보다 더 싼 가격에 물건을 내놓는다”는 평이 있다. 미 노스캐롤라이나 연구진의 지난 1월 연구에 따르면 리들이 개점한 지역에서 경쟁관계의 마트들은 주요 품목의 가격을 최대 55% 인하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월마트가 개점할 때에 비해 3배에 달하는 가격인하 효과로 평가된다. 미국에서는 “(온라인 유통공룡) 아마존은 잊어라, 진짜 라이벌은 리들”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리들과 그와 비슷한 할인점 ‘알디’가 진출한 이래 영국의 ‘마트 생태계’는 흔들리고 있다. 테스코를 비롯한 영국의 4대 ‘마트 천왕’의 점유율이 2017년 기준 69.3%로 5년 전 76.3%에 비해 감소세에 빠진 반면, 알디는 중상층 이상이 쇼핑하던 웨이트로즈의 시장점유율을 제치면서 지난해를 기점으로 영국 7위 마트로 떠올랐다. 위기감을 느낀 테스코는 리들과 비슷한 창고형 매장을 출점할 계획을 세우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현상은 왜 나타나는 것일까. 2007년 경제위기 이후 소득격차가 커지고, 화폐가치가 낮아지며 심화되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유럽 보통사람들의 구매력은 많이 떨어졌다. 청년실업 문제도, 저임금노동의 문제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다. 소비자들은 한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국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생활용품을 온라인으로 구입하거나, ‘다이소’ 같은 저가용품점에서 구입하는 경우는 갈수록 늘고 있다.

주말에 마트에 가는 ‘재미’도 시들해졌다. 다양하게 진열된 제품들을 구경하며 소비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형편인 데다, ‘스타필드’ 같은 새로운 체험형 쇼핑공간이 등장하며 기존의 마트는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수익이 정체 또는 감소세인 오프라인 마트들이 스타필드처럼 거액을 투자하는 것도 무리다. 4인 가족의 가장인 한 대기업 부장은 “가족들과 함께 마트에 장보러 간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라며 “필요한 건 동네 편의점, 슈퍼마켓에서 바로 사거나 온라인 주문으로 구입한 지가 꽤 됐다”고 말했다. 이마트·홈플러스를 비롯한 주요 마트들이 실적이 부진한 점포들을 잇따라 문 닫는 것도 그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리들이야말로 정체기를 맞은 한국의 마트들이 나아갈 수밖에 없는 방향”이라고 말한다. 김명주 미래에셋대우 애널리스트는 “오프라인 매장의 활용도를 높여 매장의 수익성을 높이고, 집객효과를 일으켜 구매를 발생시키는 기업이 향후 생존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체브랜드 비율 70% 이상 유지

독일 베를린 리들 매장의 간판
리들은 불필요한 사업비용은 과감하게 줄이는 방식으로 가격경쟁력을 유지한다. 특히 자체브랜드(PB) 비율을 70% 이상으로 유지하며 유통단계를 간소화는 데 강점을 갖는다. 기존의 브랜드 제품을 거칠 경우 제조 및 유통단계에서 들어가는 비용을 확 줄이는 것이다. PB제품에 대해서는 ‘중소기업 후려치기’ 가능성을 우려하는 부정적인 시각들도 있지만 반대로 중소업체들이 판로를 확보하는 수단이 된다는 긍정적 의견도 있다. 한 마트 관계자는 “PB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재고 및 유통비용 부담을 지지 않고 마트 측에 납품만 하면 되기 때문에 오히려 사업의 안정성이 확보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국내에서 이미 ‘리들형 모델’이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PB브랜드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어서다. 롯데마트는 2017년부터 상품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온리프라이스’를 론칭하는 등 5월 현재 약 1만3000종의 상품을 PB브랜드로 판매 중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전체 상품 매출의 25~27%가 PB에서 나온다”고 전했다. ‘노브랜드’를 운영 중인 이마트는 PB제품이 매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마트는 이외에도 ‘피코크’ ‘자주’ 등을 비롯한 다양한 PB제품군을 갖추고 있다. 홈플러스는 10%대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유통단계를 줄이고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PB상품이 더 유리한 측면이 많다”면서 “향후 마트의 생존경쟁이 격화되면 어중간한 경쟁력이나 가격대의 제품보다는 마트의 PB상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아무래도 어려워질 것으로 보이는 건 기술개발(R&D)에 취약한 일반 제조 브랜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품질이 비슷하다면 더 저렴한 PB제품이 소비자들의 장바구니에 담길 것이기 때문이다. 대형 브랜드 제조업체들은 PB 납품이 곧 유통업체에 종속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지만, 부가가치 높은 상품 개발 없이는 피하기 어려운 앞날이 될 수도 있다.

<최민영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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