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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국가 아일랜드, 교회 금기를 깨다

입력 2018.06.13. 09:29

ㆍ피임, 이혼, 동성결혼, 낙태까지 합법화

아일랜드 국민의 80% 이상은 스스로를 가톨릭 신자라고 여긴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교회의 권위를 일방적으로 따르는 대신 개인의 양심에 따라 사안을 판단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이다.

낙태 합법화를 지지하는 아일랜드 시민들이 5월 26일 더블린성 앞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 금지 헌법 조항 폐지’가 결정되자 손을 들며 환호하고 있다./AP연합뉴스

“조용한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는 지난 5월 26일(현지시간) 낙태 금지 헌법 조항의 폐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결과를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전날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폐지에 찬성한 유권자는 66.4%로 반대(33.6%)를 압도했다. 35년 전 열린 국민투표에서는 67%가 (낙태 불법화에) 찬성했던 그 조항이었다. 정부는 이르면 내년 1월 중으로 임신 12주까지 중절수술을 허용하는 법 개정을 완료한다고 밝혔다.

아일랜드가 달라지고 있다. 피임(1979년), 이혼(1995년), 동성결혼(2015년)에 이어 낙태까지 허용되면서 근 30년간 가톨릭 교회가 반대하던 거의 모든 사안들이 국민투표를 통해 합법화됐다. 불과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이혼이 불법이었던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는 이제 동성애자 총리를 둔 진보적 국가로 탈바꿈했다. 인구의 84%(2018년 유엔 통계)가 가톨릭 신도인 아일랜드에서 어떻게 이 같은 변화가 가능했을까.

아일랜드는 유럽 내에서도 경제적·사회적으로 다소 동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아일랜드는 1983년 국민투표를 통해 태아와 산모의 권리를 동등하게 규정하는 수정헌법 8조를 신설했다. 이에 따라 사실상 모든 경우의 낙태가 불법화됐다. 성폭행을 당해 임신했거나 태아의 건강이 위험한 경우에도 예외는 없었다. 이미 영국(1967년), 프랑스(1975년), 이탈리아(1978년)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이 조건부 낙태를 허용하기 시작했던 시점에서 정반대의 행보를 보인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오랜 기간 아일랜드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가톨릭 교회가 주도했다. 3년 후인 1986년에는 이혼 합법화를 묻는 국민투표도 부결시켰다. 메리 코르코란 메이누스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이리시 인디펜던트〉에 기고한 글에서 “당시까지도 교회가 명령을 하면 사람들은 따르는 분위기가 남아있었다”고 회고했다. 1980년대 경기불황으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졌는데, 그나마 진보적인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고국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교회의 권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고위 사제들의 불륜, 아동 성폭행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면서다. 아일랜드 교회 산하 ‘아동 보호를 위한 국가위원회’ 조사 결과에 의하면, 1975년부터 2011년까지 아동 성학대에 연루된 사제는 85명에 달했다. 가톨릭 교회가 피해자에게 ‘침묵 서약’을 강요하는 등 조직적 은폐를 시도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결국 당시 교황이었던 베네딕토 16세가 직접 사과서한을 발표했다. 교회의 권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성과 아이에게 자행한 가혹행위도 국민들이 교회에 등을 돌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미혼모 수천 명은 1990년대 후반까지도 “몸이 더럽혀졌다”는 이유로 ‘막달레나 세탁소’로 불리는 교회시설에 강제입소돼 무급노동을 했다. 이 과정에서 수녀들로부터 각종 폭력과 학대, 인권유린을 당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2014년 한 수녀원 마당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동 800명의 시신이 암매장된 채 발견되기도 했다.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가 5월 26일 낙태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헌법 조항의 폐지를 두고 치러진 국민투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AP연합뉴스

교회의 잇따른 추문은 영향력 감소로 이어졌다. 1983년 헌법 개정안이 통과됐을 때만 해도 인구의 약 80%가 주간미사에 참석했지만 현재는 그 비율이 20%대로 떨어졌다. 예수회 소속의 게리 오한롱은 공영방송 RTE와의 인터뷰에서 “교회는 더 이상 판단의 중심축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젠더 이슈 등에서 교회의 가르침은 더 이상 일반대중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교회는 문화적으로 동떨어진 소수가 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공영방송 RTE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지난 5월 국민투표에 참가한 유권자 중 ‘교회가 자신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한 비율은 12%에 그쳤다.

잇따른 추문으로 교회의 권위 추락

아일랜드 국민의 80% 이상은 여전히 스스로를 가톨릭 신자라고 여긴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교회의 권위를 일방적으로 따르는 대신 개인의 양심에 따라 사안을 판단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이다. 이는 낙태죄 폐지 논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92년 14살 소녀 X는 이웃집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해 임신을 하게 됐다. 중절수술을 받기 위해 영국으로 가려 했지만 법원에 의해 거부당했다. 수술을 받지 못하면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했지만, 정부는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2년 치과의사 사비타 할라파나바르의 죽음도 낙태죄 폐지 요구가 분출하는 계기가 됐다. 복부에 통증을 느낀 그녀는 병원 측에 임신중절을 요청했으나, 태아의 심장이 뛴다는 이유로 수술을 거부당했다. 결국 그녀는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두 사건은 태아의 생명을 위해 여성의 신체적·정신적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도덕적’인지를 국민들 스스로 판단해보는 계기가 됐다.

이후 아일랜드에서는 낙태죄 철폐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늘어났다. 매년 여성의 낙태할 권리를 요구하는 ‘선택을 위한 행진’ 시위가 열렸고, 정치인들을 포함한 수많은 시민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참가자 수는 매년 늘어 2016년 2만명을 넘어섰다. 이번 국민투표 과정에서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대대적인 ‘#폐지하라(Repeal)’ 캠페인이 전개됐다.

아일랜드는 다양한 목소리들을 제도적으로 수렴하려는 노력도 병행했다. 2016년 출범한 아일랜드 시민의회가 대표적이다. 평범한 시민 99명과 의장 1명으로 구성된 시민의회는 낙태문제에 관한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해 권고안을 마련한 뒤 이를 정치권에 전달했다. 이후 국회가 시민의회의 권고안을 받아들이면서 국민투표 성사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앨런 배랫 더블린 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오랜 금기였던 낙태문제에 대해 전국적인 토론이 이루어진 것을 ‘국가적 치료과정’에 빗댔다. 시민 아담 티럴(24)도 “아일랜드는 침묵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이제 깨졌다”고 말했다. 낙태죄 폐지 논쟁을 통해 아일랜드가 보다 건강한 사회로 접어들게 됐다는 분석이다.

<심윤지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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