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표지 이야기]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과욕'이 부른 참사

2018. 6. 1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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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자행된 사법행정권 남용의혹을 놓고 사법부가 내홍을 겪고 있다. 상고법원 추진을 놓고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의 입맛에 맞는 각종 문건을 작성하고, 법원행정처의 추진방향에 비판적인 판사와 단체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의혹의 중심에는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59·사법연수원 16기)이 있다. 그는 지난해 3월 법복을 벗은 뒤 두문불출 상태다. 법원 안팎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문건 작성의 핵심인물인 임 전 차장을 기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는 왜 그 같은 문건 작성을 지시했던 것일까. 〈주간경향〉은 임 전 차장과 함께 근무했던 전·현직 고위법관들의 입을 빌려 당시 상황을 재정리했다. 그는 ‘악의 축’이었을까, 사법부의 ‘희생양’이었을까.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 2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임식을 마치고 차량에 오르기 전 직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 이상훈 기자

“저의 퇴직인사에서만큼은 어떠한 의심이나 추측 없이 진심, 법원을 떠나는 아쉬움과 슬픔만을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그 어느 법관에게도 특히나 지나온 세월이 30년에 이른다면, 사랑하는 법원을 그만두고 동료 여러분을 떠나기로 하는 결정은 함부로 내릴 수 없는 가슴 아픈 결단일 것이기 때문입니다.”(2017년 3월 17일 사법부 내부 전산망 ‘코트넷’에 남긴 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사법부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욕을 남겼다. 그가 차장으로 재임하는 기간 동안 작성된 수백여 건의 문제 문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사법부가 법관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하려 했다는 증거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현직 법원장의 말이다. “과유불급이었다.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 나는 수십 년 동안 그 사람을 봐 왔기 때문에 알지만 국민들은 절대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아가 국민들은 이 사법부를 신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이 똥물을 뒤집어쓰고 법원행정처에서 일해온 모든 노력들은 이번 일로 모두 묻혀버렸다. 공이 큰들 뭐 하겠나, 과가 이리도 큰데…. 그 사람을 두둔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개인 대 개인으로서 나는 임 전 차장이 안쓰럽다.”

지난 2016년 6월 23일 대법원 사진실 우형근 사무관 퇴임식에 맞춰 열린 ‘대법원 40년간의 기록’ 사진전에서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가운데)이 설명을 듣고 있다.(임 전 차장 왼쪽(사진 기준)은 고영한 대법관, 오른쪽은 이민걸 서울고법 부장판사(당시 기조실장)) / 법원행정처 홈페이지 '포토뉴스'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임 전 차장은 사법부 내 ‘마타 하리’로 통했다(여기서 ‘마타 하리’는 프랑스·독일의 여성 이중간첩이 아니라, 모든 일을 ‘(도)맡아 하리’를 우스갯소리로 변형한 것이다). 그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 중 하나로 쓰이는 것이 ‘박치기왕’이다. 그는 지금은 많이 사라진 서초동의 밤문화를 띄우는 데도 선수급이었다. “판사들끼리 마시는 술자리 자체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런 자리가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선약이 있어도 꼭 밤 11시쯤 돼서 ‘어디신가요’라며 전화를 했다. 잠깐이라도 얼굴을 비춘 뒤 사라졌다. 술자리 분위기가 너무 다운돼 있다 싶으면 자신의 주특기였던 ‘박치기’를 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벽에도 머리를 박고, 테이블에도 머리를 박고, 박치기 대결을 하면서 술자리 분위기를 띄우려 했다. 그게 그 사람의 캐릭터였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사람들이 웃으면 그걸로 만족했다.”(A지방법원장)

재판도 잘 하는 사법행정 전문가

임 전 차장은 ‘사법행정 전문가’로 알려져 있지만 재판도 잘 하는 판사였다. 민사, 형사, 행정, 도산법 등 여러 법률실무를 두루 거쳤다. 특히 도산법 분야는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법원 내 정통한 이론가로 알려져 있었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되기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 사람 정말 재판도 끝내주게 잘했다. ‘어, 저 사건을 저렇게 풀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선배들도 할 정도였다. 참 잘 했다. 그걸 부정하는 판사는 아마 없을 것이다.”(B변호사·전 법원장)

그는 모든 일에 성실의 아이콘이었다. “내가 임 전 차장을 묘사한다면 일단 진정성 최고, 두 번째로 열정 최고라고 하고 싶다. 그런데 단, 그게 항상 너무 과했다.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 일에 대해서까지 모든 일에 열정적이었다.”(C지방법원장)

임 전 차장과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전·현직 법관이 묘사하는 그의 특징은 거의 동일했다. 모든 일에 열정적이었다는 것. 심지어 그가 사법연수원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동료교수들과 함께 만들어야 하는 연구과제조차 떠안아 만들었다. “교수들이랑 회의해서 관련 자료를 준비하는데 ‘제가 다 준비하겠습니다.’ 이러면서 며칠 지나면 다 해왔다. 게다가 내놓는 결과물도 엄청 꼼꼼했다. 자기가 전부 다 준비하고 챙긴 다음에 동료교수들에게 ‘저 이거 어떻습니까’라고 보여줬다. 그걸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솔선수범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C지방법원장)

그는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이 가장 꺼리는 국회 대관업무도 누구보다 성실하게 임했다. 혹자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의원들 가랭이 사이도 기어다닐’ 사람이었다. 자신이 사법부를 대신해 국회의원들의 비위를 맞추고, 부적절한 청탁을 받아도 자기 선에서 삼키면 사법부의 독립을 지킬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다고 했다. 실제 국회의원과의 대면업무가 가장 많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차장에 임명된 후에도 매번 직접 여의도로 가 국회의원을 만났다. 행정처 관계자는 “보통 심의관급이 오면 의원들이 싫어한다. 기조실장은 어디 있냐고 한다. 그래서 보통 큰일이 있거나 현안보고가 필요하면 기조실장이 매번 참석하게 돼 있는데 임 전 차장은 본인은 갈 필요가 없는 위치에 올랐음에도 대관업무를 계속했다”고 말했다. 의원들이 봤을 때 부담스러울 정도로 90도로 인사하는 모습도 종종 후배 법관들의 눈에 띄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6월 1일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의 놀이터에서 재판 거래의혹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이준헌 기자

문제는 그 솔선수범 정신과 열정이 지나치게 과했다는 데 있었다.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내놓은 3차 조사 결과 및 추가공개 문건들 대부분은 임 전 차장이 ‘기획조정실장~차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작성된 것들이다. 임 전 차장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 같은 문건은 없었다는 이야기다. 사법부를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말했던 그가 사법부를 벼랑 끝까지 밀어넣은 이유에 대해 그를 잘 알던 법관들은 ‘그 역시 그의 열정’이었다고 했다. 거기에 행정처 차장이라는 직위가 가리키는 방향(대법관)도 그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추측했다. “누구도 입 밖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임 전 차장이 다음 대법관으로 가는 것은 ‘이변’이 없는 한 당연한 코스라 생각했다.”(C지방법원장)

그는 그 누구보다 법원 내 행정엘리트 코스를 충실히 밟았다. 통상 사법부 내에서 ‘사법부 내 행정달인’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행정처 심의관-총괄심의관-실장’을 모두 거쳐야 한다. 행정에 욕심이 있는 법관들은 대부분이 한 번 행정처 심의관을 거쳤다면 그 다음으로 총괄심의관 자리로 가기를 원한다. 총괄심의관을 거치면 그 다음으로 기획조정실장, 사법정책실장 등 ‘OO실장’으로 갈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임 전 차장은 이 모든 과정을 거친 인물 중 하나다. 거기다 대법관으로 가는 직행열차인 법원행정처 차장에 임명됐다는 것은 그로서는 그간의 노고를 인정받았다는 ‘훈장’이자 ‘대법관으로 가는 보증수표’로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설명이다.

그런데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바로 모든 논란의 중심에 있는 ‘상고법원 설치’ 문제였다. 대법원 상고심 사건을 줄이는 것은 사법부의 오래된 숙원사업이었다. 법원행정처가 수십여 년간 연구를 해도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1년에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이 처리해야 할 상고심 사건 수가 2015년에만 3만6000여건에 이르렀다. 대법관 1인당 3000건 이상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 전직 부장판사는 “국민들은 사법부가 어느 날 갑자기 상고법원이라는 생소한 방안을 내놓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아니었다. 상고허가제도 만들어보고, 심리불속행제도도 만들어봤다. 그런데 상고허가제는 위헌논란이 불거지면서 당시에 정말 여론도 나빴다. 결국 그거 폐지하지 않았나. 대법관 수 증원 문제도 각종 안을 내놓으면서 시도해봤지만 현실적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20여년째 시행 중인 심리불속행제도 역시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청와대 보고용으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에서 작성된 ‘현안 관련 말씀 자료’. / 특별조사단 제공

문제의 문건들 임 전 차장 시절 작성

판사는 각자가 한 개의 법원이라는 말처럼 대법원장, 행정처장을 포함한 14명의 대법관들이 하나의 통일된 방안을 마련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전임인 이용훈 전 대법원장 재임시절에도 상고심제도 개선은 임기 내내 숙원사업이었다. 그러나 이 전 대법원장조차 ‘어제는 상고허가제 부활에 무게를 뒀다가 오늘은 대법관 수 증원에 무게를 두는 등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려운 문제였다. 거기다 상고법원이라는 대안은 단 한 차례도 최선의 방안으로 꼽힌 적이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인은 “엄밀히 말해 상고법원은 마이너한 안이었다. 1안도, 2안도 아니었다. 3안 정도 됐었다. 상고허가제를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도’ 양승태 대법원장 임기 중반에 들어 상고법원이 급부상했다. 2014년 12월 홍일표 당시 새누리당 의원을 필두로 168명의 여야 의원이 15년 이상 경력의 법조인을 상고법원 판사로 두는 등의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원행정처의 끈질긴 물밑작업도 당연히 있었다. “당시 사법부로서는 ‘어! 이게 무슨 일이지?’ 할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거기다 그 ‘꼰대스러운’ 각각의 대법관들이 이견 없이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과 동일하게 상고법원을 설치하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양 전 원장이 잘 설득한 것인지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법부 역사상 대법관들이 일치된 의견으로 하나의 안을 내놓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D부장판사)

당연히 순조롭게 추진될 줄 알았던 상고법원 설치 문제는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에서 암초를 만났다.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국회 논의과정에서 ‘어? 지금 내부적으로 다른 이야기가 나오네? 어떻게 내부적으로 통일되지 않은 상고법원 설치안을 가지고 우리(국회의원)가 계속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가 의원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코트넷(법원 내부통신망)에 상고법원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오고, 그게 언론에 보도되니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B법원장)

6월 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 법원장 간담회에 참석한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생각에 잠겨 있다. / 연합뉴스

암초에 부딪친 상고법원 설치 문제

상고법원에 반대의견을 내거나 비판적인 소모임 및 각종 커뮤니티에 대한 관리(?)가 시작된 시점도 의원들의 지적이 들어오면서부터였다.

상고법원 도입 법률안은 국회의원들 간의 의견 차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좌초위기에 처했다. 거기다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법무부 역시 반대입장 제시)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멈추면 또 언제 상고심 개선방안이 추진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임 전 차장은 자신의 ‘성격’대로 밀어붙이기 작전을 펼쳤다. 전략을 바꿔 대통령의 승인을 받기로 했다. 대통령으로부터 “상고법원이 괜찮아 보이던데요”라는 말 한마디를 얻어내면 멈춰 있던 법률안이 통과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 과정에서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각종 문건들이 작성됐다. 청와대(BH)와 재판 거래를 하려 한 증거로 제시되는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사례’(2015년 7월 31일 작성)다. 이들 문건에는 국가배상 제한 등 과거사 사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 통상임금 사건, KTX 승무원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이 사법부가 청와대에 ‘협력’한 사례로 기재돼 있다(사진참고). 그러나 국가 의전서열 3위인 대법원장조차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독대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박 전 대통령의 옆에는 항상 우병우 수석이 배석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행정처에 있었던 측근의 이야기다. “우 수석이 대통령 옆에 딱 붙어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는 게 당시 (행정처) 누구에게나 보였다. 사법부에서 어떤 의견을 내도 말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대법원장이면 당연히 대통령과 독대할 기회가 있어야 하는데 그 기회가 도무지 없었다. 2015년 8월 6일 당시 큰 행사(민일영 전 대법관 후임 대법관 제청 관련 대통령 오찬회동)가 하나 있었는데 그때가 원장님(양 전 대법원장)이 대통령과 독대할 기회였다. 약간 허리도 굽혀가며 사법부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왜 상고법원이 필요한지 설명을 드리려고 (임 전 차장이 만든) 갖가지 자료를 원장이 들고 갔었다. 그런데 독대 자리인 줄 알았던 그 자리에 우 전 수석이 갑자기 배석을 했다. 원장은 당시 정말 ‘간곡하게(말이나 행동에서 보여질 정도로)’ 이야기를 드려야 하는데 민정수석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원장 자존심에) 그런 식으로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원장이 돌아와서 임 전 차장한테 ‘야 이거 힘들다’라고 했다. 그러니 그동안 상고법원 추진에 매진해온 임 전 차장 입장에서는 무력감을 느꼈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부터 그 사람의 폭주가 시작됐다.”

청와대 동의 얻기 위해 과욕과 폭주

임 전 차장은 그때부터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청와대 또는 그 주변에 전달할 각종 문건 작성을 지시하기 시작한다. 또 법원행정처에서 추진하고 있는 각종 계획에 토를 달거나 반대의견을 표하는 판사 개인이나 집단을 눌러버리려는 시도도 노골적으로 진행됐다. 한 법원장은 “그 사람은 멈추는 것을 하지 못했다. 안티를 견디지 못했다. 옆에서 봐도 눌러버리려고 하는 게 보였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통상적인 보고라인, 지시라인이 무시되기 시작했다. 이민걸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모르는 각종 문건 작성 지시들이 기조실 심의관들에게 하달됐다. 보고도 이민걸 실장을 건너뛰고 이뤄졌다. 법원행정처 출신의 한 부장판사는 “정상적인 지휘라인과 보고라인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은 임 전 차장 역시 자신의 행동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법원행정처를 나가 일선에서 재판을 하고 있는 판사들에게까지 문건 작성 지시가 떨어졌다. 말 그대로 폭주였다.

이것은 가정이다. 만약 지난해 2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으로 발령받았던 이탄희 판사가 법관 뒷조사 문건 작성 및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정책 추진 지시에 반발,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사법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임 전 차장의 전횡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을까. 법원행정처 출신 한 부장판사는 “이 판사는 발령받은 지 불과 며칠 만에 그런 지시를 받았기에 반발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다수의 심의관들은 부당한 지시에도 ‘NO’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찌들어 있었고, 부당한 지시라는 것을 알면서도 반발하지 못했다”면서 “임종헌 단 한 사람의 잘못으로 돌리기에는 법원행정처라는 곳이 너무나 특수한 곳이었다”고 했다.

한때 임 전 차장을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한 법관은 〈주간경향〉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판은 시스템으로 거래될 수 없다. 그리고 대법원장이 대법관에게 판결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임 전 차장의 과욕이 부른 결과를 봐라. 사법부의 공정성은 이미 무너졌다. 나는 ‘판사’인 임 전 차장 스스로 재판 거래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판결 후 사후적으로 문건이 작성됐든 말든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문건을 만든 것 자체가 BH에 그렇게 보이려 했다는 것 아닌가. 그 자체로 그는 이미 판사가 아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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