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기사 덕에 통장 만들었어요"

2018. 6. 12.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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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두 번째 서울 찾은 난민 차노끄난 동자동 쪽방촌 찾아…
“한국 사회 차별 개선 위해 힘쓸 것”

타이에서 ‘왕실모독죄’로 기소될 위기에 처하자 한국으로 망명을 선택한 차노끄난 루암삽(25)이 지난 6월5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을 찾아 윤용주(오른쪽)씨와 이야기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초여름 햇살이 뜨거웠던 6월5일, 타이에서 ‘민주주의 천사’로 불린 차노끄난 루암삽(25)이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을 찾았다.

당뇨 합병증으로 두 다리를 잃은 1급 지체장애인 윤용주(56)씨는 지하층 복도 끝의 작은 방에 있었다. 그에게로 가는 길은 덥고, 어둡고, 습했다. 창문도 없는 윤씨의 방은 월세가 17만원이다. 차노끄난은 월세가 비싸다고 생각했는지 놀라는 눈치였다.

“다음에 그림 사러 다시 오겠다”

“정부가 의료비를 지원해주나요?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드세요?” 차노끄난이 물었다.

윤씨는 “정부한테 매달 65만원 정도 받는다. 방세를 내고 남은 돈으로 과거 사업에서 진 빚을 갚고, 생활비에 쓴다. 신부전증과 천식 등 여러 질병을 앓고 있어 음식을 편하게 먹지 못하는 것과 자유롭게 못 움직이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의료급여 수급권자인 윤씨는 대부분의 의료비를 정부에서 지원받는다. 하지만 일부 비급여 약값으로 매달 수십만원을 쓰고 있어 부담이 크다.

차노끄난은 조심스럽게 “화장실에는 어떻게 가세요”라고 물었다. 그는 윤씨의 방을 방문하기 전에 쪽방이 옹기종기 들어앉은 건물을 둘러보면서 층마다 하나밖에 없는 재래식 화장실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윤씨는 “재래식 화장실을 도저히 쓸 수가 없어서 낮에는 대로 건너 서울역까지 가고, 저녁에는 인근 카페 화장실을 사용한다. 비 오는 날에는 어쩔 수 없이 방 안에서 해결한다”고 털어놨다. 차노끄난 미간의 주름이 깊어졌다.

차노끄난이 타이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왕실모독죄’로 기소될 위기에 몰리자 한국으로 망명을 선택했다는 설명을 들은 윤씨는 “잘 오셨다”며 그가 그린 그림들을 꺼내 보여주었다. 윤씨는 지난해 한국장애인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한 ‘2017 제2회 국제장애인미술대전’ 한국화 부문에서 특선을 받았다. 그는 쪽방에서 그린 그림을 인터넷에서 팔거나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윤씨는 “몸이 불편하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허락된 범위 안에서 만족하며 살려고 노력한다. 혼자서는 버겁지만 쪽방촌 공동체 사람들이 도와줘 감사하며 산다”고 했다. 차노끄난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에 그림을 사러 꼭 다시 오겠다”고 하자, 윤씨는 “다시 방문해주면 잘 그린 그림을 선물로 드리겠다”고 답했다.

차노끄난은 동자동 쪽방촌 곳곳을 둘러보고 주민회의에도 참여해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해에 차노끄난의 고향인 타이의 빈민 지원 공동체 ‘네구역빈민네트워크’(FRSN)가 동자동 쪽방촌을 다녀갔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네구역빈민네트워크는 차노끄난이 소속된 ‘빈곤의회’와도 가까운 단체로, 여러 차레 같이 일했다. 해외주민운동연대의 강인남 대표는 “네구역빈민네트워크는 철거투쟁 이후에 주민들의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지와 빈곤층이 어떻게 협동조합을 만들고 저축을 장려하면서 자립심을 키워나가는지 보고 배우기 위해 한국과 동자동 쪽방촌을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난민 인정받으면 NGO에서 일하고 싶어

동자동에 가기 전 왜 쪽방촌에 가고 싶은지, 왜 노숙인을 만나고 싶은지 기자가 묻자 차노끄난은 이렇게 답했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그들이 소외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에 관심이 많다. 나 역시 한국에서 소외된 사람이지 않나.” 그는 “타이에 있을 때도 빈민과 노숙인을 돕는 활동을 했다. 대학생 때 존경했던 교수가 필리핀 마닐라 빈민가에 살면서 그들의 삶을 연구해 책으로 펴낸 것을 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도 한국의 빈민가를 관찰해 글로 써서 알리고, 돕고 싶다”고 했다.

쪽방촌 방문을 마친 차노끄난은 “타이의 빈민가에는 아이를 포함해 가족 단위로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대부분 고령의 남성들이 아주 작은 방에 혼자 사는 점이 달랐다. 다음번에 방문하면 이 부분에 대해 좀더 질문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차노끄난은 난민으로 인정받으면 대학원에 진학해 인권 관련 공부를 하거나,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광주에 머물면서 타이 출신 불법체류 노동자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은 이 사회에서 천민 취급을 받고 있었다. 한국인은 그들을 무시한다. 이러한 차별에는 사회구조적 문제가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공부하고 일함으로써 한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방문은 차노끄난에게 두 번째 서울행이었다. 6월1일 서울을 찾은 그는 그날 저녁 ‘마포대교’를 찾았다. “자살률이 세계적으로 높은 한국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람들이 투신하는 곳이라고 해서 가보고 싶었다. 이방인인 내가 한국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거라고 기대했다.” 세 시간 가까이 마포대교를 거닐면서 자살 예방 문구를 읽었다는 차노끄난은 “예방 문구가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며 “그런데 왜 마포대교가 자살률이 높으냐”고 물었다. 기자가 “지하철역에서 가깝고, 광역버스 정류소가 가까워서 서울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 접근하기 편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고 경찰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하자 차노끄난은 생각에 잠긴 표정이 되었다.

기사 보고 도와준 은행 직원

<한겨레21> 기사가 나간 뒤 무엇이 바뀌었냐는 질문에 차노끄난은 “드디어 은행계좌를 열고 체크카드를 만들었다”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기사가 나간 다음날 전남대학교 안에 있는 광주은행에 갔다. 은행계좌를 열고 싶다고 하니까 나에게 일을 하는지, 학생인지 물어봤다. 둘 다 아니고 ‘난민’이라고 하자 은행 직원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한겨레21>을 꺼내 보여줬더니 직원이 깜짝 놀라면서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상사와 이야기를 하고 돌아온 은행 직원은 나와 관련된 <한겨레21> 기사를 복사한 뒤 바로 은행계좌를 개설해줬다.” 한국에서 은행계좌를 열 수 없었던 차노끄난은 한국에 온 뒤 줄곧 현금을 들고 다녀야만 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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