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블랙박스] 3년간 3만건 '교통위반 신고왕'.. 뒤에선 운전자 돈 뜯어

권순완 기자 2018. 6. 1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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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만 자며 매일 30건꼴 신고.. '업무 소홀'로 회사에서도 잘려

교통법규를 어긴 운전자를 "신고하겠다"며 협박해 돈을 뜯어낸 30대 남성이 경찰에 검거됐다. 잡고 보니 범인은 지난 3년간 '공익 신고 애플리케이션(앱)'으로 3만번 이상 교통법규 위반 신고를 경찰 등에 넣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루도 쉬지 않고 신고했다고 가정해도 매일 30건꼴이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상습 공갈 혐의로 장모(38)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1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장씨는 2016년 10월부터 지난 4월까지 서울 서초구의 한 도로에서 불법 유턴하는 차량들을 상대로 70차례 금품을 갈취한 혐의를 받는다. 장씨는 도로 근처에 숨어 있다가 불법 유턴 차량을 발견하면 호루라기를 불며 나타나 휴대전화로 영상을 찍었다. 운전자가 차를 세우면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주변에서 교통법규 위반이 잦아 대표로 해결하고 있다. 신고는 하지 않을 테니 성의를 보여라"며 돈을 요구했다. 장씨는 건당 1만~5만원을 받았으며 총 150여만원을 챙겼다.

경찰에 따르면 장씨는 최근까지 중견 건설 회사에서 임원의 운전기사로 일했다. 장씨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니 경찰청 공익 신고 앱 등으로 2015년 중반부터 3만2000여회 불법 사항을 신고한 전력이 있었다. 대부분이 교통신호 위반, 불법 주정차 등 경미한 교통법규 위반이었다. 많게는 하루 70건 넘게 신고한 적도 있었다.

장씨의 신고벽(癖)은 집요했다. 장씨는 자신이 운전하는 차량의 전방 블랙박스 영상을 따로 저장해놓고, 나중에 영상을 돌려보며 다른 차량의 법규 위반 장면을 확인해 신고했다. 회사 사무실에서도 블랙박스 영상을 보는 데 몰두했다. 경찰은 "법규 위반 차량을 확인하느라 잠도 4~5시간밖에 안 잤다"며 "결국 회사에서 '일을 소홀히 한다'는 지적을 받아 최근 면직됐다"고 했다. 장씨는 따로 신고 포상금을 받진 않았다. 교통법규 위반 신고 포상제는 2003년 폐지됐다.

장씨의 '폭탄 민원'을 처리하느라 담당자는 진땀을 뺐다. 경찰 관계자는 "장씨가 형사 처벌을 받는 것과 별개로 그가 제기한 민원은 모두 살펴야 하는 게 법 현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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