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영국 가디언(특약)] 풋볼리스트는 영국의 권위지 `가디언(Guardian)`이 제공하는 `2018러시아 월드컵` 32개팀 프리뷰를 다음카카오를 통해 독점 공개한다. 월드컵 본선 진출 32개 대표팀을 밀착 취재한 각국 전문가가 쓴 '월드컵 프리미어'는 러시아 월드컵을 즐기는데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편집자 주)

 

#키플레이어: 하세베 마코토, 불굴의 의지로 성장한 시골소년

비슷한 세대의 많은 축구선수처럼 하세베 마코토도 어린 시절 유명한 만화인 캡틴 츠바사를 읽고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주인공인 츠바사 오조라는 엄청난 기술을 선보인다. 그렇게 시작한 하세베는 오랫동안 축구를 해왔다.

 

하세베가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빠진 이유에는 문화적인 배경도 있다. 일본은 오랫동안 야구와 스모가 스포츠계를 양분해왔다. 하지만, 하세베 고향인 시즈오카의 후지에다는 일본 평균을 상회하는 지역 축구 열기로 유명한 것이다. 후지에다는 인구가 10만 명이 조금 넘을 정도로 작은 도시지만 유명한 축구선수를 많이 배출했다.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일본 대표로 뛴 나나미 히로시, 나카야마 마사시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이런 환경에서 자랐지만, 하세베는 10대 후반까지는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하세배는 부모님 가르침 덕분에 학교 성적도 좋았다. 15살 때는 지역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후지에다 히가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 학교는 공부로도 유명하지만, 매년 열리는 전일본고등학교축구선수권에서도 매년 우승을 다툴 정도로 축구 실력도 뛰어나다. 하세베는 입학 초기에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가끔은 벤치에 앉는 것도 어려울 정도였다. 동료들은 하세베가 1학년 때는 경기를 뛰기보다는 다른 일을 더 많이 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특히 하세베는 경기장에 선을 긋는데 매우 능했다고 한다.

그는 2학년 말에 드디어 무언가를 보여줄 기회를 잡았다. 물론 운동장에 선을 긋는 일은 아니었다. 뒤늦게 체격이 급성장한 하세베는 주전이 됐고, 조금씩 동료들에게도 신뢰를 얻었다. 하세베는 일본 대표팀에서도 정상 기량을 가장 오랫동안 유지한 선수로 평가 받으며 주장으로도 길게 활약했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주장 후보도 되지 못했었다.

 

하세베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며 엄청나게 성장했다. 2000년대 즈음, 일본에서는 18세 이하 전국대회가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에 열렸다. 하세베는 여름과 가을 대회에서 환상적인 활약을 펼쳤고, 전국적으로 주목 받는 선수가 됐다. 얼마 후, 하세베는 일본 연령별대표팀에 처음으로 선발됐다.

 

우라와레즈는 하세베가 전국고교대회와 연령별 대표팀에서 펼친 활약을 눈여겨봤고, 계약을 제의했다. 하세베 부모님은 하세베가 교육을 좀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어린 나이에 프로가 되는 위험을 안기보다는 대학에 진학하길 바랐다. 심지어 하세베 활약을 가장 가까이서 본 고등학교 감독도 “프로에서는 지금과 같은 활약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다른 의견을 낸 사람을 단 한 명, 그의 할아버지였다. “남자라면 도전해야 한다.” 할아버지는 정직 혹은 진실을 뜻하는 마코토라는 이름을 지어준 사람이었다.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손자가 축구를 하며 살고 싶다는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반대하는 다른 사람들을 설득했다. 결국 부모님과 고등학교 감독은 하세베가 보여준 열정을 감당하지 못했고, 그가 프로축구선수가 되는 것을 허락했다.

 

하세베가 프로 계약을 한 1년 뒤에 할아머지가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셨다. 고작 19살에 불과했던 하세베는 큰 타격을 받았지만, 그는 이런 아픔을 꼭 성공하겠다는 불굴의 의지로 바꾸고자 했다. 하세베가 우라와에서 보낸 두 번째 시즌을 함께한 이들은 하세베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활약해 주전자리를 확보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계속해서 발전했고, 이제 능력으로나 위상으로나 일본축구계에서 위대한 선수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하세베가 러시아 월드컵에서 골을 넣는다면,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를 지를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을 길러준 할아버지에게 골을 바친다는 의미를 담았을 것이다.

#전술 분석

2018년 4월, 일본은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과 월드컵 개막을 2달 앞둔 시점에 갈라섰다. 결과적으로 일본이 월드컵에서 어떤 전략과 전술을 쓸지 예상하는 일은 매우 어려워졌다. 글을 쓰는 시점에는 후임 감독이 경기는커녕 선수단 소집도 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필자를 포함한 모든 일본 국민들은 이 부분에 대해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축구협회는 할릴호지치 후임으로 63세인 니시노 아키라 일본축구협회기술위원장을 임명했다. 그는 J리그에서 수많은 경험을 쌓은 베테랑이다. 많은 이들이 니시노 감독의 임명을 두고 놀라움을 표했지만, 그는 오랫동안 대표팀 감독 물망에 올랐었고 ‘1996 아틀란타 올림픽’ 대표팀 감독도 맡았던 이다. 그는 아탈란타 올림픽에서 와일드 카드 없이 호나우두, 호베르투 카를로스, 디다에 와일드카드인 히바우두, 베베토까지 뛴 브라질을 이겼었다. 나카타 히데토시가 뛰었던 그 경기는 일본 축구 역사에 ‘마이애미의 기적’으로 남았다.

 

니시노 감독은 엄격한 맨투맨 수비를 기반으로 하는 수비적인 전술을 구사했었다. 하지만, 2002년부터 2011년까지 감바오사카 지휘봉을 잡았을 때는 공격적인 면모도 보여줬다. 2005년, 감바오사카는 공격적인 전술로 역사상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3년 뒤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컵도 차지했다. 2008년 12월, 감바오사카는 FIFA클럽월드컵 준결승에서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 난타전을 벌인 뒤 3-5로 패했다.

 

니시노 감독은 스스로 공격적인 경기를 좋아한다고 밝혔지만, 동시에 모든 선수가 공격적으로 나설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니시노는 아틀란타 올림픽에서 보여준 것처럼 강한 상대와 직면했을 때는 실용적인 전술과 전략을 쓸 것이다.

 

그는 취임일성으로 “일본 스타일의 축구”를 다시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속도와 민첩성 그리고 열심과 지구력을 중시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는 “개인적인 플레이를 제한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니시노 감독은 항상 선숙 개성을 표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왔다. 이는 항상 엄격하게 팀 전술을 운용한 할릴호지치와 반대되는 생각이다. 그는 일본 공격수들에게 좀 더 자유로운 플레이를 주문할 생각이다. 이것은 일본이 지닌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약점이 될 수도 있다.

 

#예상 베스트11

(4-2-3-1) 가와시마 – 사카이, 요시다, 쇼지, 나가토모 – 하세베, 곤노 – 오카자키, 혼다, 이누이 – 오사코

 

#Q&A

-어떤 선수가 월드컵에서 모두를 놀라게 할까? 
오사코 유야. 그가 지닌 수비 후방으로 침투하는 능력, 공을 지켜내는 능력, 패스 능력은 일본 대표팀에 다른 색깔을 입힌다.

 

-일본의 현실적인 목표는 어디쯤이 될까? 

16강이다. 2002년과 2010년에 거둔 최고 성적과 같은 곳이 목표가 될 것이다. 현재 팀 전력을 봐도 이 정도 성적을 거두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글= 가와바타 아키히코(풋볼리스타)

에디팅= 류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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