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밭 비무장지대 17년 길 내기..살아 남은 건 천운"

2018. 6. 1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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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 최종화 전 원사

비무장지대에서 17년간 지뢰 제거 작업을 한 최종화씨가 민통선 철책선을 만지며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했던 순간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길우 선임기자>

비무장지대는 비무장이 아니다. 용어의 뜻과 현실은 정반대이다. 휴전선의 비무장지대는 군대 주둔이나 무기의 배치, 군사시설의 설치가 금지되고, 이미 설치된 것을 철수 또는 철거하여야 한다. 하지만 한반도 허리를 차지하고 있는 휴전선 남북의 4㎞의 지대는 철저한 무장지대이다. 남북이 동원할 수 있는 최신예 정예장비를 배치한 ‘중(重)무장지대’이다. 비(非)무장이 아니라 ‘슬픈 무장’의 비(悲)무장지대이기도 하다. 그런 무기 중 가장 악랄한 게 대인지뢰이다. 한번 묻히면 자신을 밟은 생물체에 손상을 입혀야 그 생명을 다한다. 주한 미군은 헬기로 이 대인지뢰를 비무장지대에 뿌렸다. 그 수는 헤아릴 수 없다. 지난 1월 전역한 최종화 전 원사(56)는 35년 4개월의 직업군인 생활 동안 절반에 가까운 17년간 비무장지대에서 ‘통로 개척조장’을 했다. 지뢰가 무수히 깔린 비무장지대의 수색로를 만드는 역할이다.

비무장지대의 지뢰 지역 <자료사진>
비무장지대 <자료사진>

“살아남은 것이 천운이죠.” 하루하루가 삶과 죽음의 경계였다. 지난 1일 경기 파주의 한 민통선 지역에서 최씨를 만나 그 아슬아슬한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먼저 믿기 어려운 비무장지대 목격담을 이야기했다. “어른 팔뚝만 한 가물치가 일광욕을 하곤 합니다. 햇살이 가득한 강가의 바위에 가물치는 여유롭게 따뜻한 햇볕을 즐깁니다. 믿기 어렵죠? 꿩과 고라니가 함께 놉니다. 처음엔 싸우는 줄 알았어요. 자세히 보니 서로 밀당하며 노는 것이었어요.” 그만큼 비무장지대의 생태계가 보존이 잘 됐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농고를 졸업한 최씨는 대학에 가지 않고 바로 직업군인이 됐다. 어릴 때부터 꿈이 군인이었다. 훈련소 6개월을 거쳐 하사관으로 배치받은 전방이 파주였다. 사단에서 행정보급관으로 살림살이를 하면서 그는 가장 뛰어난 ‘통로 개척조장’으로 꼽혔다. 1999년부터 전역하기 직전까지 무거운 방호복을 입고, 한 손에는 지뢰 탐침봉과 다른 손에는 낫을 들고 앞장섰다. 그가 앞장서면 15명의 경호조가 20m가량 떨어져 따라왔다. 지뢰가 무수히 심겨 있거나 뿌려져 있는 비무장지대의 통로를 만드는 건 수색조와 매복조의 안전을 위해서이다. “지뢰를 매설하면 그 위치를 기록한 지도가 있어야 합니다. 아군 피해를 막기 위해서죠. 하지만 대부분 그런 지도가 없거나 있어도 좌표가 틀리곤 해요. 그래서 직접 몸으로 확인해야 해요.”

직업군인 35년 복무끝 1월 전역
99년부터 DMZ 통로 만들러
탐침봉과 낫 들고 지뢰 찾기

“불발지뢰 밟은 느낌 지금도 생생
남북 긴밀 협조해 DMZ 살려야”

그는 ‘동물적 감각’으로 지뢰가 없는 곳을 찾았단다. 동물로부터 배운 동물적 감각이라고 했다. “동물들도 살기 위해 지뢰가 없는 곳으로 다녀요. 꿩, 너구리, 고라니, 멧돼지의 통로는 거의 일치해요. 주변 갈댓잎의 꺾인 모양, 낙엽의 밟힌 모양 등을 보고 동물들의 통로를 탐색합니다. 그 길을 따라 좌우 2m 폭으로 전진하며 지뢰를 찾아 냅니다.” 낫을 들고 다닌 이유는 지뢰 제거에 낫이 대검보다 훨씬 효과적이어서다. 소형인 대인지뢰의 윗부분에는 대부분 풀뿌리 등이 얽혀있어 낫으로 주변의 땅을 파가며 풀뿌리를 제거해야 안전하게 지뢰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인지뢰<자료사진>
최종화 전 원사가 철조망을 만지고 있다.<이길우 선임기자>

그가 대인지뢰의 ‘악랄함’에 치를 떠는 가장 큰 이유는 일명 ‘발목지뢰’로 불리는 M14 지뢰는 모든 것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금속탐지기로는 도저히 위치를 찾을 수 없어서다. 17년간 지뢰 탐지를 하며 많게는 하루에 수십발의 지뢰를 제거했다고 한다. 지뢰를 밟아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수차례이다. “다행히 비스듬히 밟아 터지지 않았어요. 지금도 그때 발에 밟혔던 지뢰 뇌관의 느낌이 생생합니다.”

조장을 오래 했던 이유는 다들 그 역할을 피해서란다. 누구도 앞장서서 지뢰를 찾아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를 따라오는 경호조는 3개 조로, 하루 투입되면 이틀 휴식했다. 하지만 그는 거의 매일 투입되곤 했다.

최전방 근무를 하며 북한 병사들과 겪은 일화도 많다. 지금은 중단했지만 서로 확성기를 틀어놓고 심리전을 펼칠 때 일이다. 익숙한 목소리의 북 인민군은, 역시 익숙한 목소리의 최씨에게 통일되면 자신의 여동생을 소개해 주겠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때로는 집단 장기를 두었다. 장기판의 90개 점을 1번부터 90번까지 미리 정한 뒤 번갈아 확성기로 장기를 두었다고 한다. “1번의 포 7번으로 보내”라고 북쪽에 말하면, “5번의 포 11번 위치로 보내라우”라고 북쪽에서 확성기로 말하는 식이다. 전방 초소의 양쪽 병사들은 서로의 초소에 둘러앉아, 상의하며 장기를 두곤 했단다. 전방의 긴장감이 누그러졌을 때 이야기다. 때로는 서로 욕을 하기도 했다. 그가 들은 인민군의 가장 센 욕은 “30리 날라가라우(멀리 꺼지라는 뜻)”였단다.

최종화 전 원사가 무장공비의 침투가 이뤄졌던 철조망을 바라보며 자신의 군 생활을 회고하고 있다.<이길우 선임기자>

무게가 100g에 불과한 대인지뢰는 한 발 매설에 5000원 정도 들지만 제거엔 30만원 정도 든단다. 전 세계 64개국에 뿌려진 대인지뢰는 1억1천만여개로, 한반도에도 100만개 정도가 뿌려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뢰가 안전하게 제거되지 않는 한 비무장지대는 사실상 죽음의 땅입니다. 많은 동물이 지금도 지뢰를 밟아 죽어갑니다. 이 곳이 살아있는 자연의 땅으로 자리하려면 남북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해요.” 이제는 민간인이 된 그가 남북 화해를 바라는 가장 큰 이유이다.

파주/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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