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미국이 '대북 군사옵션→대화' 전환한 진짜 속내는

박수찬 2018. 6. 1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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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桑田碧海:세상이 몰라볼 정도로 변함). 최근 1년간의 북미 관계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하는 고사성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와 핵실험, 대북 군사옵션 위협이 반복됐다. “로켓맨” “늙은이”라며 서로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 “북한을 파괴하겠다” “미국을 불로서 다스리겠다”던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면서 평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같은 위기 상황은 올해 초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눈 녹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이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다. 20여년 동안 해결되지 못했던 북한 비핵화 문제와 6.25 전쟁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 가능성이 한꺼번에 제기되면서 한반도 정세는 대화 국면으로 전환됐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공공연히 자랑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화로 돌아선 것은 대북 군사옵션의 실효성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효력 잃은 윈-윈 전략

미국의 군사행동을 결정하는 대(大)전략은 윈-윈(Win-Win) 전략이다. 두 지역에서 동시에 일어난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윈-윈 전략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일본에 승리를 거두면서 얻은 군사적 자신감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동시에 치르면서 미국은 윈-윈 전략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 2003년부터 8년 동안 4400여명의 미군이 전사했고, 2조달러(2140조원)의 전비를 지출했지만 이라크 안정에는 실패했다. 2001년 시작된 아프간 전쟁은 미군 2200여명이 전사했고 8000억달러(약 908조원)가 투입됐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미국 공군 스텔스 전투기 F-22가 2015년 10월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전개해있다.
공군 제공
이라크, 아프간 전쟁은 미군에 큰 상처를 남겼다. 미군은 분쟁이 일어나도 전면전에 준하는 군사개입을 자제하고 있다. 윈-윈 전략을 사실상 포기한 채 특수전부대와 드론을 앞세운 저강도 전쟁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지난 4월 시리아의 화학무기 공격에 맞서 미군이 공습을 단행하고도 추가 군사행동을 하지 않은 것도 분쟁 확대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분쟁 개입을 피할수록 미군을 필요로 하는 곳은 늘어난다는 역설적 상황이 미국의 고민을 깊게 하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 아프간에 발목이 잡혀 있는 동안 군사력을 키운 중국과 러시아는 패권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며 유럽과 중동, 동남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국방과학기술 투자를 늘려 미국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스텔스 전투기, 전략폭격기, 신형 ICBM, 초음속 미사일 등 첨단 무기를 개발해 미국과의 군사력 격차를 줄이고 있다. 이란과의 갈등, 대(對)테러작전, 예맨 내전 등 미국의 군사력을 필요로 하는 국제 현안들이 수두룩하다.

예전같았으면 군사적 개입이 진행됐을 분쟁이 적지 않지만 미국은 여전히 개입을 꺼리고 있다. 미군은 10여년에 걸친 전쟁으로 지쳐있다. 군사적 개입을 줄여도 무력시위나 연합훈련 등의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는 장병들의 피로누적과 숙련도 저하라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미국 해군 이지스구축함 하퍼에서 SM-3 요격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미국 해군 제공
실제로 태평양 서부를 관할하는 미국 해군 제7함대에서는 다섯차례에 걸쳐 선박 충돌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지난 6월 이지스구축함 피츠제럴드함이 일본 시즈오카 이즈 반도 앞바다에서 필리핀 선적 컨테이너선과 충돌했고, 8월에는 존 매케인함이 싱가포르 부근 말라카 해협에서 유조선과 충돌했다. 두 사고로 17명의 승조원이 사망했다. 미국 해군은 제7함대 사령관을 보직해임하는 등 강도 높은 징계조치를 내렸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 해군에서 선박 충돌사고가 빈발한 것은 전력이 감소한 반면 작전 수요는 증가하면서 승조원 훈련과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데 있다. 미국 해군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해군 전투함정 숫자는 1993년 454척에서 2016년 275척으로 급감했다. 여기에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가 예산 자동 삭감(시퀘스터)을 단행하면서 해군에 대한 지원은 더욱 감소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 북한 위협 증가에 따른 작전 수요는 늘어났다. 이에 7함대는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할 승조원을 휴식없이 작전에 투입했고, 이는 돌발상황에서 승조원들의 대처 능력을 약화시켰다. 미국 군사전문매체 디펜스 뉴스는 최근 미국 해군 내부 문건을 인용해 “초임 장교의 85%가 함정 운용 기본기가 취약하며, 배가 충돌위기에 있을 때 대응능력이 미숙했다”고 지적했다.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싱가포르 센토사섬에 있는 카펠라 호텔.
연합뉴스
◆대북 군사옵션 대신 중국, 러시아 견제로 선회

군사행동의 선봉 역할을 맡을 해군력은 취약해졌고, 육군과 해병대는 10여년간의 이라크, 아프간 전쟁으로 지쳐있는 상황에서 미군의 대북 군사행동은 큰 리스크를 동반한 모험이다.

대북 군사옵션이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제한적인 공습으로는 부족하다. 핵추진항공모함과 전략폭격기, 스텔스 전투기,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등 미군이 보유한 첨단무기를 총동원해 북한 전쟁지도부와 탄도미사일 기지, 핵시설 등을 집중 공격할 필요가 있다. 미군의 공습을 받은 북한이 가만히 있을까. 침묵할 가능성도 있지만 군사분계선(MDL) 일대에 배치된 장사정포로 한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더 높다. 장사정포가 한국을 향해 불을 뿜으면 미국 지상군 개입이 불가피해 한반도 전면전으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

대북 군사옵션이 전면전으로 확대되면 지상군 수십만명과 해군, 공군 전력을 대거 투입해야 한다.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북한과 전면전을 벌인다 해도 북한군을 단기간 내 제압하고 김정은 정권을 전복한다는 보장이 없다. 북한이 정규군과 예비병력을 총동원해 산악지역이나 시가지에서 저항할 경우 미군으로서는 이라크, 아프간 전쟁에 이은 또 하나의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중국과 러시아의 움직임도 대북 군사옵션 시도를 주저하게 한다. 윈-윈 전략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린 미군이 한반도에서 장기간 군사작전을 펼치게 되면 유럽과 중동, 동남아시아에서 활동하는 미군 전력 일부가 한반도 갈 수밖에 없다. 이는 해당 지역에서 힘의 공백을 유발한다. 미국에 맞서려는 중국과 러시아로서는 영향력을 확대할 절호의 기회가 생기는 셈이다. 미국으로서는 한쪽을 상대하려면 다른 한쪽을 포기해야 하지만 그 어느 쪽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셈이다.

미국 해병대 소속 M-1A2 전차가 석양을 받으며 승무원들로부터 정비를 받고 있다.
미국 해병대 제공
남은 방법은 군사력이 꼭 필요한 부분과 외교적 해법이 가능한 부분을 나누어 대응하는 것뿐이다. 동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위협에 대처하고자 미군 주둔 규모를 늘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갈등을 빚는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원한다. 글로벌 패권을 놓고 대치국면이 격화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우방국들을 지원하려면 군사력을 소모하기보다는 증강과 유지에 집중해야 한다.

미국이 우위를 보였던 국방과학기술도 중국과 러시아의 투자가 이어지면서 빠른 속도로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미국의 전유물이었던 군집(群集) 드론과 무인 보트, 레이저 무기, 전자전 공격 무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이 접목된 신무기들도 중국과 러시아에서 속속 선보이거나 개발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에 맞서 국방과학기술 개발을 서두르고 군사력을 재정비하려면, 제3국과의 무력충돌을 회피해야 한다. 북한에 대한 군사옵션 대신 대화에 의한 비핵화 시도가 우선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다만 변수는 있다.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 비핵화에 대한 외교적 노력이 실패할 경우 대북 군사옵션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를 가능성이다. 국제정치학적 측면에서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미국과 북한이 대화에 나서고 있지만 언제든 돌아설 가능성도 남아있다.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 변화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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