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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등번호 특집] 17번의 전설 마지뉴과 후배 페르난지뉴

축구에서 등번호가 달리기 시작한 건 19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이전까지는 축구에 등번호 자체가 없었다. 그마저도 월드컵에서 처음 도입된 건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였다. 당시엔 고정된 등번호가 아닌 선발 출전하는 선수에게 해당 경기마다 1번부터 11번의 등번호를 달고 출전하는 형태였다.

결국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이르러서야 지금처럼 선수 고유의 등번호를 가지고 경기에 나섰다. 이를 기점으로 등번호는 제각각의 의미를 띄기 시작했다. 몇몇 선수들은 특정 등번호를 통해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월드컵 참가 선수가 22명에서 23명으로 늘어난 건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이다. 이전까지는 22인으로 월드컵 로스터가 정해져 있었다. 즉 등번호 23번이 등장한 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그런 관계로 골닷컴에서 제공하는 등번호 특집 칼럼에서 등번호 23번은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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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의 경우 등번호 1번부터 11번까지는 전통에 따라 주전 선수들이 많이 다는 번호이다. 그 중에서 17번은 중앙 미드필더 혹은 측면 미드필더들이 즐겨 사용하는 번호이다. 

World Cup Back Number박성재 디자이너


# 등번호 17번의 전설 마지뉴와 그의 후배 페르난지뉴

특히 브라질에선 최근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이 번호를 물려받는 경향이 있다. 그 출발점은 바로 1994년 미국 월드컵 우승 주역인 마지뉴였다. 

마지뉴는 선수 시절 브라질과 이탈리아, 스페인 무대에서 활약했다. 이로 인해 그의 큰 아들 티아고 알칸타라는 이탈리아에서 출생해 바르셀로나 유스팀을 거쳐 스페인 국적으로 귀화하면서 스페인 대표팀 10번으로 자리잡았고, 작은 아들 하피냐는 브라질에서 출생해 형과 마찬가지로 바르셀로나 유스팀에서 뛰면서 스페인 연령대별 대표팀에서 뛰었으나 브라질 올림픽 대표팀에 승선하면서 조국 브라질 국적을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지금은 티아고와 하피냐의 아버지이자 스페인 대표팀 9번 공격수 로드리고 모레노의 삼촌으로 더 알려진 인물이지만 마지뉴 역시 위대한 선수였다.

원래 그는 측면 수비수였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등번호 18번을 달고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 대회에 참가했으나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한 채 브라질의 8강 탈락을 벤치에서 지켜봐야 했다.

1990년 월드컵이 끝나고 세리에A 구단 레체로 이적한 그는 수비형 미드필더 보직을 변경했다. 이는 주효했다. 특별한 장기는 없지만 공수 전반에 걸쳐 준수한 능력을 갖춘 그의 멀티 플레이어적인 성향은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브라질 대표팀에서 멀티 백업 선수 그 이상의 위상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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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에게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반전의 계기가 이루어졌다. 바로 브라질 대표팀 등번호 10번이자 주장인 하이가 24강 조별 리그 내내 부진을 면치 못한 것. 이에 카를로스 알베르투 파헤이라 브라질 대표팀 감독은 16강 토너먼트부터 하이 대신 마지뉴를 기용하는 강수를 던졌다. 

이는 브라질에게 상당히 충격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브라질은 전통적으로 펠레와 가린샤를 시작으로 호베르투 히벨리누, 지쿠, 그리고 소크라테스 같은 마법사 유형의 선수들을 중심으로 축구 왕국을 구축했다. 1994년 월드컵에서 이를 계승한 인물은 바로 소크라테스의 동생으로 유명한 하이였다. 천재 공격형 미드필더를 중심으로 한 화려한 공격축구는 브라질의 아이덴티티라고 봐도 무방하다.

파헤이라가 하이 대신 마지뉴를 선택한 건 수비 축구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브라질의 정체성에 위배되는 일이었다. 무수히 많은 브라질 축구 전문가들과 언론 매체들은 물론 팬들 역시 브라질이 고유의 정신을 잃어버렸다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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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지뉴는 실력으로 논란을 종식시켰다. 그는 성실하게 수비에 가담하면서도 중간에서 패스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며 브라질의 통산 4번째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다. 이는 펠레 시대를 제외한 브라질의 첫 월드컵 우승(이후 2002년에 호나우두와 호나우지뉴, 히바우두의 3R이 5번째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으로 1982년 브라질이 자랑하는 황금사중주(지쿠-소크라테스-파우캉-세레주)조차 해내지 못한 업적이다.

특히 마지뉴는 개최국 미국과의 16강전에서 43분경 왼쪽 측면 수비수 레오나르두가 퇴장을 당하면서 수적 열세에 직면하자 측면 수비수로 위치를 변경하면서 브라질의 버팀목 역할을 담당했다. 결국 브라질은 72분경에 터져나온 베베투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와의 8강전은 마지뉴가 유명세를 타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 62분경 베베투가 팀의 두번째 골을 성공시키자 마지뉴와 호마리우가 달려와 베베투와 함께 요람 세레모니를 펼쳐보인 것. 이는 요람 세레모니의 원조격으로 아직까지도 마지뉴 하면 베베투와 함께 요람 세레모니를 펼친 선수로 기억하는 축구팬들이 많다. 이후 무수히 많은 축구 선수들이 아이를 출산할 시 이 세레모니를 따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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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뉴의 뒤를 이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선 수비형 미드필더 도리바가 17번을 물려받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선 측면 미드필더 데니우손이 17번을 배정받으면서 17번=수비형 미드필더 전통이 잠시 끊겼으나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선 지우베르투 시우바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선 조수에가, 그리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선 루이스 구스타부가 17번을 달고 뛰면서 마지뉴의 전통을 계승해가고 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17번의 주인공은 페르난지뉴로 낙점됐다. 페르난지뉴는 여러모로 마지뉴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펩 과르디올라(맨체스터 시티 감독)의 지도 하에서 빌드업 능력이 크게 발전했으나 기본적으로 페르난지뉴의 강점은 바로 공수 전반에 걸친 헌신성과 왕성한 활동량에 기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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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원래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지만 좌우 측면 수비는 물론 최후방 수비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다재다능하다. 실제 2016/17 시즌엔 소속팀 맨체스터 시티에서 좌우 측면 수비수 역할까지 수행한 적이 있고, 2017/18 시즌 친정팀 샤흐타르와의 챔피언스 리그 32강 조별 리그 최종전에선 스리백의 수비를 담당한 바 있다. 

무엇보다도 페르난지뉴 역시 마지뉴처럼 브라질의 확고한 주전 선수라고 볼 수 없다. 실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남미 지역 예선 18경기에서 그가 선발 출전한 건 8경기가 전부다(교체 출전 4경기). 

기본적으로 브라질의 중원은 카세미루와 파울리뉴가 책임지고 있는 가운데 남은 한 자리를 놓고 두 가지 플랜으로 나뉘어지고 있다(브라질 감독 티테는 역삼각형 형태의 중원을 중심으로 4-3-3 포메이션을 고집하고 있다). 하나는 공격형 미드필더 필리페 쿠티뉴를 중앙 미드필더로 내리는 형태와 페르난지뉴를 배치하는 형태다. 

Philippe Coutinho &  Fernandinho

둘 다 일장일단이 있다. 페르난지뉴가 선발로 나선다면 장악력은 올라가지만 공격 패턴이 다소 단조로워지는 단점이 있다. 이 경우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속성이 강한 쿠티뉴가 측면 공격수로 배치되기에 측면 공격 활용 빈도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반면 쿠티뉴를 중앙 미드필더에 배치하면 중원에서의 창의성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 더글라스 코스타나 윌리안이 측면 공격수로 선발 출전하면서 측면 활용폭도 증가하는 대신 수비적인 안정감은 다소 떨어지게 된다. 

현 시점에서 브라질 국민들은 당연히 쿠티뉴 중앙 배치를 더 선호하고 있다. 이것이 브라질의 정체성과도 일치한다. 하지만 강팀들과의 맞대결이 성사되는 토너먼트에서 쿠티뉴를 중원에 배치하는 건 감독 입장에서 다소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조별 리그에선 쿠티뉴가 중앙에서 뛸 가능성이 높지만 토너먼트에선 페르난지뉴가 중용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선배 마지뉴의 역할을 러시아 월드컵에서 재연해야 브라질의 통산 6번째 월드컵 우승도 가능하다.

Mazinho박성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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