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軍 최초 장교 집단 양심선언..30년 만에 명예회복

이철호 2018. 6. 7. 0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30년 전 군 최초의 장교 집단 양심선언을 주동했다는 이유로 이등병으로 강등된 뒤 파면된 이동균 대위에 대한 징계 처분을 국방부가 취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는 지난해 말 군 적폐청산위원회를 통해 접수된 이동균 대위의 청원을 받아들여 최근 이 대위의 제적 처분을 무효로 하고 대위로 복권했다. 내부 고발 차원의 양심선언에 따른 징계 처분을 군 스스로 취소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하지만 이 대위는 명예회복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를 상대로 추가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지난 30년간 이 대위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1989년 1월 5일 ‘명예선언’ 기자회견 모습


軍 최초 집단 양심선언 '장교 명예선언문'

1989년 1월 5일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에 육군 30사단 공병대대 이동균 대위와 김종대 중위가 들어섰다. 당시 기독교회관은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수시로 모이던 농성장이었다. 회관에 있던 이소선(고 전태일 열사 모친) 씨는 김종대 중위 가방에 있던 시너 두 통을 발견했다.
"종철이 아버지, 여기 왜 시너가 있어요?"
2년 전 아들(박종철 열사)을 잃은 박정기 씨는 깜짝 놀라 분신 자살을 각오하고 있다는 두 군인을 달래고 시너 통을 빼앗았다. 그날 저녁 7시 이동균 대위 김종대 중위는 한국군 역사상 최초의 장교 집단 양심선언을 시작했다.

장교 명예선언문(요약)
신성한 국토방위의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으로서 민족적인 아픔을 안겨주고
조국의 민주화 열망에 누를 범한 불명예를 과감히 청산하고
후손과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국민의 군대로 바로 서기 위해 선언문을 발표한다.
우리는 불명예로 군을 이끌었던 정치 군인들에게 진실한 각성과 반성을 촉구한다.
우리는 군의 엄정한 정치 중립을 위한 제도적 조치를 요구한다.
우리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심 밖의 개인에 대한 맹종을 단호히 배격한다.

1989년 1월 5일
대위 이동균
중위 김종대
중위 이청록
소위 박동석
소위 권균경


구속, 강등, 파면 그리고 의문의 집단 폭행

전방부대 현역 장교 5명이 실명으로 서슬 퍼런 군 수뇌부를 정면 비판한 건 유례없는 일이었다. 부대를 이탈해 기자회견장에 직접 나타난 이동균 대위와 김종대 중위는 2년 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자행된 부정 선거 실상을 폭로했다.

육군본부는 나흘 뒤 군형법 등을 위반했다며 5명 모두 구속했다. 야권과 시민사회단체는 이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6월 항쟁 이후 다소 완화된 사회 분위기 덕에 실형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동균 대위와 김종대 중위는 이등병으로 강등된 뒤 파면됐다. 기자회견장에 나타나지 않고 이름만 올렸던 이청록 중위, 박동석 소위, 권균경 소위 등 3명의 장교는 정직 3월 처분을 받았다. 김종대 중위는 파면 직후 정체 모를 괴한으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기자회견 중인 김종대 중위(좌) 폭행 당한 뒤 모습(우)


당시 기독교 인권위원회 소속으로 기자회견 과정을 도왔던 김영주 목사(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장)는 '장교 명예선언문' 사건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냥 양심선언이 아니라 명예회복선언을 한 거예요. 우리 군인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명예회복 선언을 하고 군대가 서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짚어준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1980년대가 끝나기 전 군인들이 나서준 건 한국사회의 군인이 서야 할 자리, 정상적인 사회가 어떤 사회냐 라는 가르쳐준 굉장히 중요한 변곡점이 됐어요. 결국, 뒤이어 나왔던 윤석양 이병, 이지문 중위 같은, 군 내부를 고발한 양심선언들의 마중물 역할을 했죠."(김영주 목사)

왼쪽부터 김영주 목사, 이동균 대위, 기자


민주화 유공자로 선정 "복직 권고"…국방부 '무응답'

사상 최초, 정권 교체로 집권한 김대중 정부 시절(2000년)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이 통과됐다. 이 법에 따라 이동균 대위와 김종대 중위도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선정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2004년)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두 장교의 복직을 국방부에 권고했다. 이듬해 국방부는 "검토가 진행 중"이라는 회신했다. 그리고 이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문재인 정부 국방부는 '군 적폐청산위원회'라는 이름의 기구를 출범했다. 이동균 대위는 지난해 11월 적폐청산위원회에 자신의 복직을 청원했다. 이 대위는 "집단적인 이익이나 정치개입 이런 부분들도 적폐일 수 있겠지만, 정상적인 법에 따라서 복직을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는 것이 적폐의 첫 번째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이동균 대위에게 보낸 징계 취소 공문


청원 넉 달 만에 국방부로부터 한 통의 우편물이 도착했다. 이등병으로 강등한 뒤 제적 처분한 인사 명령을 무효로 하고, 대위로 복권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국방부는 파면된 그 해 6월 전역한 걸로 처리했다. 뒤이어 국방부 재정관리단은 '대위 월급 넉 달 치와 퇴직금'을 지급할 것이라는 공문이 보내왔다. 30년 만의 명예회복이었지만 이 과정에서 국방부로부터 "전화 한 통 없었다"고 이 대위는 말했다. 함께 파면됐던 김종대 중위와 함께 청원하려고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한다.


이동균 대위, "제2의 명예회복 준비"

이동균 대위는 변호사와 함께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국방부가 1989년 2월 28일부로 시행한 제적(강등 후 파면) 처분을 무효로 하면서 다시 대위로 복권하면서도 그해 6월 30일부로 전역 처리한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제적이 무효가 됐으니 복직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국방부는 '본인 원(願)에 의한 전역'이라고 처리했는데 저는 원한 적이 없어요. 제가 요구하고 있는 것은 (징계가 무효가 됐으니) 계속 근무한 걸로 인정돼야 하고 거기에 따른 계급과 복지, 예우를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이동균 대위)

이 대위는 변호사와 상의한 결과 "지금까지 복무한 것으로 가정하고 급여를 요구할 경우, 사회생활을 통해 실제 얻었던 수익과 상계(相計)하게 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즉 지난 30년간 군 생활을 계속했다고 가정하고 받았을 월급과 실제 이 대위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벌었던 수익을 비교해봤는데 오히려 몇억 원을 '토해내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이 대위는 그럼에도 소송을 하겠다고 말했다.

"저는 명예를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합니다."(이동균 대위)

[연관 기사] [뉴스9/단독] 軍 최초 장교 집단 양심선언 30년 만에 복권

이철호기자 (manjeok@kbs.co.kr)

Copyright © K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