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고교물리도 모르는 공대생..서울대 '물리학 열등반' 보충수업

양연호 2018. 6. 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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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들 어려운 물리Ⅱ 대신 대입 유리한 쉬운과목만 선택
정시출신은 절반 넘게 미이수..대학강의 수준 못따라가 쩔쩔
"韓 4차산업혁명 주도하려면 물리학 기초 튼튼히 다져야"

서울공대 신입생 절반 '물알못'

내년부터 고등학교 때 자연계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물리 심화과목인 '물리Ⅱ'를 이수하지 않고 서울대 공대에 입학하는 신입생은 고교 이과 과정 수준의 물리 수업을 대학에서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한다. 문과 수준 물리 교육만 받은 '물알못(물리를 알지 못하는)' 학생이 국내 최고 학부 공대 신입생 중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물리 소양 부족' 현상이 반복되면서 서울대가 이른바 '물알못' 학생들을 대상으로 열등반을 운영하는 극약 처방에 나선 것이다.

6일 서울대에 따르면 서울대 공대는 지난 5일 교과과정위원회를 열고 고등학교에서 물리Ⅱ 과목을 이수하지 않은 학생들이 대학에서 '물리학' 대신 '물리의 기본'이라는 과목을 이수하도록 규정을 수정했다. '물리의 기본'은 고등학교에서 물리 과목을 배우지 않았거나 물리Ⅰ 또는 그에 준하는 수준의 과목만을 이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난도를 대폭 낮춘 강의다. '물알못반'은 물리Ⅱ를 이수하지 않은 2019학년도 이후 신입생 중 물리학이 필요한 전공 분야 학생들을 대상으로 의무화된다. 서울대 공대 관계자는 "공대 한 해 입학생 정원 900여 명 가운데 450명가량이 고교에서 물리Ⅱ를 배우지 않고 들어오는데, 대학에서 갑자기 확 높아진 물리학 난도에 좌절해 공학도의 꿈을 접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대학에서 공학을 배우는 데 가장 기초인 물리학Ⅰ·Ⅱ도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같은 내용을 (고교 수준으로) 더 쉽게 설명하는 '물리의 기본' 수업을 내년부터 의무적으로 수강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또 이 관계자는 "고교에서 물리Ⅱ를 배우지 않아 '물리의 기본' 과목을 반드시 수강해야 하는 학생이 '물리학' 강의에 도전하고자 할 때는 물리학 성취도 평가에 응시해 일정 점수를 획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서울대 이공계열 학과에 입학한 신입생 중 고등학교에서 물리Ⅱ를 수강하지 않은 학생은 매년 절반 수준에 이른다. 특히 최근 3년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하고 정시모집으로 입학한 이공대 신입생들 사이에서는 물리Ⅱ를 전혀 배우지 않은 학생이 배운 학생보다 많았다.

'물알못' 신입생들은 대학 전공수업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5년간 서울대에서 개설된 물리학 강의 중 학생들의 수강 중도 취소율이 15%를 넘은 강의 비율은 24%로, 수학(7%)보다 3배 이상 높았다. 수강 중도 취소율이 25%를 넘는 강의는 물리학과 수학이 각각 8%, 1%로 차이가 더 벌어졌다.

고등학교에서 물리Ⅱ 과목의 인기가 떨어지는 것은 물리학이 다른 과목보다 어려운 데다 입시점수 획득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2014학년도 수능부터 선택 가능한 과학 과목 수가 2개로 축소되면서 상대적으로 좋은 등급을 딸 수 있는 과목에 수험생들이 몰리고 있다. 지난해 11월에 치러진 2018학년도 수능에서 전체 과학탐구 응시자 24만4733명 가운데 물리Ⅱ 응시자는 2839명(1.2%)으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학생들의 수요가 줄면서 물리Ⅱ를 개설한 고등학교가 최근 감소하는 추세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 소재 고등학교에 개설된 과학탐구Ⅱ(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 과목 중 물리학을 선택한 학생의 비율은 14%에 그쳤다. 물리Ⅱ를 개설한 일부 학교에서는 수업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최승후 전국진학지도협의회 정책국장(경기 문산고 교사)은 "물리Ⅱ에 대해 가산점을 주는 일부 대학을 지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학생들이 물리Ⅱ를 수강할 유인이 거의 없다"며 "다만 고교에서 물리Ⅱ를 이수했다는 사실만으로 일부 대학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유리하다는 점을 이용해 일부 고등학교는 물리Ⅱ 과목을 개설만 해놓은 채 실제로는 다른 과목 자습을 시키는 일도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공계 진학자들이 기초과학 지식을 탄탄히 다지지 못하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해 나갈 '과학기술 강국'으로서 한국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차국헌 서울대 공대 학장은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 되는 기초학문을 지속적으로 가르치는 게 고등학교 단계에서 중단되면 대학에서 관련 소양을 높이는 게 쉽지 않다"며 고등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입 제도 개편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공계 대학생들의 물리학 기초가 약해지면서 산업계에서도 수준 높은 한국인 엔지니어를 수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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