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우먼이 사랑한 디자이너' 케이트 스페이드 사망

이현호 기자 입력 2018. 6. 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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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 패션 브랜드 '케이트스페이드'의 창업자이자 패션디자이너 케이트 스페이드가 미국 뉴욕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돼 세계 젊은 여성들과 패션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그가 디자이너로 첫발을 뗀 것은 1993년에 남편인 앤디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핸드백 브랜드 '케이트스페이드'를 론칭하면서다.

특유의 밝은 색상과 프린트를 앞세운 케이트스페이드의 나일론 백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젊은 커리어우먼들의 사랑을 받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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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자택서 목맨 채 발견
"평온함 찾길" 美전역 애도물결
연합뉴스
[서울경제] 미국의 유명 패션 브랜드 ‘케이트스페이드’의 창업자이자 패션디자이너 케이트 스페이드가 미국 뉴욕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돼 세계 젊은 여성들과 패션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향년 55세.

5일(현지시간) AP통신 등 미국 주요 매체에 따르면 이날 오전10시20분께 가사도우미가 파크애비뉴에 있는 아파트에서 스페이드가 목을 맨 채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뉴욕 경찰은 자살로 추정하고 정확한 사망원인을 조사 중이다.

지난 1962년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출신인 스페이드의 본명은 케이트 브로스나한이다. 가톨릭 학교를 거쳐 애리조나주립대에서 언론정보학을 전공한 그는 같은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남편 앤디 스페이드를 만나 1983년 뉴욕으로 이주해 잡지 ‘마드모아젤’의 스타일 전문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가 디자이너로 첫발을 뗀 것은 1993년에 남편인 앤디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핸드백 브랜드 ‘케이트스페이드’를 론칭하면서다. 특유의 밝은 색상과 프린트를 앞세운 케이트스페이드의 나일론 백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젊은 커리어우먼들의 사랑을 받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업이 성공 가도를 달리며 스페이드는 핸드백뿐 아니라 액세서리, 향수, 안경테, 인테리어 용품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혀 나갔다. 2004년에는 세계 각지에 400여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는 유명 브랜드로 발돋움하며 마이클코어스 등과 함께 최고의 핸드백 브랜드로 성장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케이트스페이드 브랜드는 갑작스러운 유통 업계 불황으로 사업 부진에 직면했으며 스페이드는 2007년 니만마커스그룹에 브랜드를 3,400만달러라는 헐값에 매각하고 회사를 떠났다. 이후 10여년간 딸 양육에 집중하던 스페이드는 재기를 꿈꾸며 2016년 슈즈와 핸드백 브랜드 ‘프랜시스발렌타인’을 내놓고 다시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브랜드는 현재 온라인 쇼핑몰과 노드스트롬백화점 등을 통해 인기리에 판매 중이다.

다시 날개를 펼치는 듯 보였던 스페이드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그의 핸드백과 함께 20대의 추억을 간직하는 많은 여성 소비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기면서 애도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딸인 첼시 클린턴은 트위터에 “대학에 다닐 때 할머니께서 처음으로 주신 케이트스페이드 가방을 아직 갖고 있다”며 추모 글을 올렸다. 미국 배우 루시 헤일도 트위터에 “스페이드의 사망 소식을 듣고 무척 슬펐다”면서 “그녀가 평온함을 찾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CFDA는 우리의 친구이자 동료, CFDA 멤버인 스페이드의 비극적인 사망 소식에 망연자실해하고 있다”고 추모했다. /이현호기자 h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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