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의 현장+] 백범 김구 묘역 옆..정기를 끊듯 '북한반공투사위령탑'이 우뚝

김경호 2018. 6. 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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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선열들의 묘역…어울리지 않는 반공투사위령탑이 우뚝 / 독립운동가의 묘…의미를 축소 / 이승만 대통령 집권 이후 애국열사의 수난시대 / 박정희 대통령, 정기를 끊는 듯 세워 / 김구 선생 묘소 옆, 대한노인회 중앙회 건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역(왼쪽)인근에는 북한 반공투사 위령탑’(오른쪽)이 우뚝 솟아 있다.


서울 용산구 효창동 효창공원. 효창공원은 조선 22대 왕 정조의 장자 문효세자 무덤이 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공원으로 바뀌었다. 광복 이듬해 백범 김구 선생이 효창공원에 독립운동가 묘역을 조성했고 백범 김구 선생뿐 아니라 이동녕 선생, 조성환 선생, 차이석 선생 등 임시정부 요인인 4인이 이곳에 유해가 안치 돼 있다. 또 윤봉길·이봉창·백정기 등 ‘3의사(義士)’의 묘소뿐 아니라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모시기 위한 ‘가묘’(假墓)도 있는 곳이다.

지난해 광복절 제72주년을 맞아 광복절 행사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효창공원을 찾았다. 현직 대통령이 김구 묘역과 삼의사 묘역에 참배한 것은 1998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광복절에 김구 선생 묘역을 참배한 현직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유일하다.

문 대통령은 참배 ‘선열들이 이룬 광복,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방명록에 적었다. 문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국민 관심사. 문 대통령이 참배하기 전에는 효창공원이나 효창운동장은 알아도 독립운동가 묘역은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72주년 광복절 맞아 문 대통령이 ‘효창공원’ 독립운동가 묘역을 찾아 참배하는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독립운동가 묘역과는 어울리지 않는 기념물 북한반공투사위령탑.


애국선열의 묘소임에도 불구하고 효창공원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인 용산구청에서 관리 하고 있다. 문화재보호법의 적용을 받는 ‘사적공원’과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 ‘근린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사적 330호인 효창공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용산구청이 ‘근린공원’으로 관리하고 있다. 애국선열의 묘소임에도 ‘공원’으로서의 성격이 강해 국가적 차원의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백범 김구와 애국선열의 묘소임에도 효창공원은 수난의 상징이 됐다. 애국선열 묘역이 눈엣가시 이승만 정권에서는 1959년에 효창공원에 운동장을 지었다.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유치를 빌미로 효창공원에 축구장을 만든 것. ‘아세아축구선수권대회’ 개최를 구실로 백범 묘소를 이장하라는 시도했다. 각계각층의 거센 반대로 묘소 이전은 보류되었지만 15만 그루의 나무를 베고 연못을 메워 1960년 효창운동장은 결국 문을 열었다. 이때부터 효창공원은 효창운동장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애국선열의 묘소임에도 성역이라는 이미지는 퇴색됐다.

백범 묘역에서 북쪽 불과 20m 채 되지 않는 거리에 정기를 끊듯 급조된 ‘북한 반공 투사 위령탑’이 있다. 1969년에 세워진 위령탑 오른쪽에는 찬조한 이들을 빼곡히 적혀있다. 첫 부분에 일본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일본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 정권에서도 이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항일의 상징인 효창공원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다. 1968년에는 골프장 건립 공사가 추진됐다. 현재 열사들의 사당 자리에 골프장을 지으려 공사를 시도했다가 거센 반발을 포기했다. 공원 위쪽에 뜬금없이 서 있는 북한 반공 투사위령탑도 역사 지우기의 목적으로 1970년대 세웠다. 마치 정기를 끊는 듯 선열들의 묘소가 모두 내려다보인다. 백범 묘역에서 북쪽 불과 20m 채 되지 않는 거리에 급조된 ‘북한 반공 투사 위령탑’이 있다. 1969년에 세워진 위령탑 오른쪽에는 찬조한 이들을 빼곡히 적혀있다. 첫 부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1972년에 지은 대한노인회 중앙회 건물, 신광학원 도서관(현 대한노인회 서울시 연합회), ‘육영수 여사 경로 송덕비’. 1969년 들여놓은 10m 높이의 원효대사 동상도 효창공원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독립운동열사 7위선열의 사당.


◆‘근린공원’ 역할이 강해 국립묘지 승격을 주민들이 반대

대안으로 효창공원의 국립묘지 승격이 거론됐다. 김광진 의원이 2013년에는 효창공원을 국립묘지로 승격 지정하는 법안이 발의했다. 하지만, 국립묘지를 반대하는 것 보다는 공원의 자유로운 이용 못 하는 점과 집값 하락 우려도 있다는 지역주민들 반발로 폐기되기도 했다. 용산구의회는 효창공원의 국립묘지 지정 반대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 역사적 의미 묘소 이전도 어려워

더불어민주당이 효창공원 독립운동가들의 묘소를 내년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애국선열 묘역에 대한 예우 문제 거론했다. 국가적 차원의 참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은 “현재 효창공원에 안장된 김구와 윤봉길·이봉창·안중근 열사 등은 모두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 주역들이자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는 인물인데 국가적 차원의 참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백범 김구 선생 묘역.


역사적 의미를 강조해 이장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김구 선생은 광복 이후 효창원에 터를 잡고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 유해를 이곳으로 이장했다. 유해를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쓴 것도 김구 선생이다. 직접 독립운동가 묘역을 조성한 것도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깔려있다. 백범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효창공원에 묻어달라는 유훈을 남겼다. 1949년 암살된 뒤 이곳에 묻혔다.

보훈 전문가 따르면 “현재 효창공원을 성역화하는 것이 합당한 예우다”라며 “친일인사가 있는 현충원보다 독립투사들만으로 조성된 효창공원이 역사적 성지로서 상징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효창공원을 국립묘지로 승격해 중앙정부 차원에서 예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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