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지울 수 없는 무늬 새기는 남자의 절창

입력 2018. 6. 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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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5일 화요일 맑음.

의식.

거의 1년 만이었다.

A 선배의 문자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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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모지스 섬니의 2017년 앨범 ‘Aromanticism’ 표지.
2018년 6월 5일 화요일 맑음. 의식. #287 Moses Sumney ‘Quarrel’(2017년)

‘잘 지내고 있지?’

거의 1년 만이었다. A 선배의 문자메시지. 소속된 회사는 다르지만 한때 같은 분야에서 뛰었던 선배. 근데 오후 10시에 메시지라니…. 뜬금없는 시간이어서 되레 더 반가웠다. 이쪽저쪽 스케줄 최대한 배려해 잡는 약속보다 이런 ‘번개’가 때로는 더 벼락같은 즐거움을 주니까. ‘언제 끝나는데?’ 마침 사무실에서 야근 중이었으니 타이밍이 좋았다. 종종걸음으로 2호선 시청역을 향했다. 어쩌면 소나기가 내려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홀 근처 ××이라는 아재 LP바야. 이리로 와.’

음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A 선배다운 장소에 A 선배가 예전의 A 선배처럼 앉아 있었다. 요즘엔 음악과 별 상관없는 분야를 취재하고 있다는 그는 근황을 묻는 질문에 “그럭저럭”이라 답했다. 그러면서도 내게는 좋아하는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줬다.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오랜만에 만나면 나오는 얘기가 있다. 가족이나 직장 얘기로 안부를 묻고 나면 결국엔 “요즘엔 뭐 들어?” 하는 질문.

떠오르는 대로 영국 솔 싱어송라이터 톰 미시, 브루노 메이저 따위의 이름을 대자 A 선배가 자신의 휴대전화 메모장을 내게 내민다. 몇 개의 이름을 적다 머릿속에 번쩍, 조명이 켜진다. “아! 이거. 이거라면 형이 진짜 좋아할 거야. 힙스터 음악가지만 아재들도 홀릴 만하다고. 꼭 들어봐.”

미국 싱어송라이터 모지스 섬니의 이름을 꾹꾹 눌러 써줬다. 섬니의 부모는 아프리카 가나 출신이다. 남자로선 무척 높은 가성을 활용한, 유려한 절창이 섬니 음악의 첫인상이다. 재즈적 화성 속을 유영하는 아름다운 선율. 둔탁한 비트 위로 물방울처럼 떨어지는 영롱한 하프의 분산화음. 그의 악곡은 쉽사리 잊기 힘든 기묘한 무늬를 듣는 사람 뇌리에 새긴다.

‘Worth It’과 ‘Lonely World’의 뮤직비디오에서 기괴한 생명체를 만난 섬니는 ‘Quarrel’에 이르러서는 마구간의 말과 사랑에 빠진다. 후반부, 말의 시체를 앞에 두고 슬퍼하던 섬니가 끝내 환상에 이끌려 설원으로 나아간다.

A 선배에게는 이런 묘사나 설명을 붙이지 않았다. 아름다움이란 보는 순간 이해할 수 있는 거니까. 아니, 어쩌면 이해 따위는 필요 없을지도…. 좋은 음악은 각자의 마음속에 그저 눈과 비처럼 내릴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또 우린 이렇게 마주 앉아 있을 테니까.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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