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열차사고 비극 앞에서 셀카 .. "디지털서 자란 암"

김성탁 2018. 6. 6.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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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세 캐나다 여성 열차에 치여 중상
그 배경으로 'V' 그리며 사진 찍어
일간지들 1면 게재 .. SNS도 공분
"영혼 잃은 인터넷의 자동화 기계"
지난달 26일 이탈리아 피아센자역에서 구조요원들이 열차에 치어 중상을 입은 여성에게 응급 처치를 취하고 있다. [조르지오 람브리 페이스북 캡처]
열차 사고 현장에서 셀카를 찍고 있는 남성의 모습 때문에 이탈리아가 충격에 빠졌다.

사진기자인 조르지오 람브리는 지난 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북부 피아센자 지역 신문인 리베르타에 한 장의 사진을 실었다. ‘당신이 예상하지 못했던 야만성: 비극 앞에서 셀카 찍기’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가 보도한 사진은 지난달 26일 피아센자 역에서 촬영한 것이다.

당시 해당 역에서는 83세 캐나다 여성이 열차에 치여 중상을 입어 구조 요원들이 출동해 응급 구조 조치를 하고 있었다. 이 여성은 이후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하지만 사고 현장 옆 승강장에서 흰옷을 입은 젊은 남성은 그 장면을 배경으로 휴대전화를 이용해 셀카를 찍고 있었다. 이 남성은 한 손으로 ‘V’를 그려 보인 것으로도 비쳤다.

BBC에 따르면 이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람브리는 “우리는 완전히 도덕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한탄했다. 경찰은 이 남성을 조사한 뒤 해당 셀카 사진을 삭제토록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사고 현장에서 셀카를 찍은 젊은 남성의 모습이 상당수 일간지의 1면에 다뤄졌고, 소셜 미디어에서도 큰 반향을 낳았다. 현지 언론 라 스탐파는 “인터넷에서 자라난 암”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셀카를 찍은 젊은 남성은 나쁘다기보다 영혼과 인간성을 잊은 채 인터넷의 자동화 기계처럼 행동했다”고 지적했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가 발달하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진 등과 함께 올리는 이들이 늘면서 경각심을 느끼지 못한 채 습관처럼 셀카를 찍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우려다. 라디오 진행자인 이콜라 사비노는 “인류가 소멸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트위터 이용자는 유사한 문제점이 종종 발생해 왔다며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부적절한 상황에서 셀카를 찍어 비판을 받은 일은 종종 발생해 왔다. 2014년 미국에 사는 18세 여성은 유대인 학살이 자행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웃는 얼굴로 셀카를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공분에 휩싸였다. 경찰관 출신 미국 공화당 클레이 히긴스 하원의원도 지난해 7월 아우슈비츠 수용소 곳곳을 돌며 셀카 비디오를 찍어 구설에 올랐다. 그는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 가스실에서 수용자들이 어떻게 학살을 당했는지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히긴스의 비디오에 대해 아우슈비츠 박물관 측은 “모든 사람에게 개인적 반응을 할 권리가 있지만, 최소한 가스실에서는 희생자들을 위해 침묵해야 한다. 이곳은 무대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지난해 79명이 화재로 숨진 영국 런던의 그렌펠 타워에서는 화마의 흔적만 남은 건물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관광객이 너무 많아 이를 금지하는 안내문이 세워지기도 했다. 브라질에서는 지난해 12월 경찰이 마약밀매조직의 보스를 붙잡은 뒤 웃는 얼굴로 셀카를 찍고 경쟁적으로 소셜미디어에 올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현지 언론들은 “도시에 큰 문제를 일으킨 범죄자를 경찰은 톱스타로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무리한 셀카 촬영이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 1월 인도에서는 트레이너로 일하던 25세 남성이 달려오는 열차를 배경으로 철로 옆에서 셀카를 찍다 열차에 머리를 부딪치는 일이 벌어졌다.

이탈리아에서 다친 여성이 왜 열차에 치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보고서에 따르면 열차 문을 닫는 제어시스템에 결함이 있었고 해당 여성이 열차의 다른 쪽 문을 열려다 떨어진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다친 여성이 막 출발하려는 열차에 타려고 뛰어들었다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자신도 왜 사진을 찍고 있었느냐는 비판을 받았다고 밝힌 람브리는 “직업이기 때문에 그 남성이 포함된 사진을 찍었다”며 “그 사진을 대가로 추가 급여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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