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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뮤지컬 리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시대를 뛰어넘은 여성, 스칼릿 오하라

김규식 기자
입력 : 
2018-06-05 17: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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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미첼 원작에 충실한 각본…아름다운 음악과 연기로 되살려
방대한 서사…압축의 묘미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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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번역 때문에 말들이 많지만 한국 영화 역사에서 놀랄 만큼 잘된 번역이 하나 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이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마지막 장면에서 스칼릿 오하라가 나직이 내뱉은 마지막 말이다.

영어 원문은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그래도 내일이면 또 다른 날이 될 것이다)'지만 누군가 맛깔스럽게 의역했고, 한국인이 암송하는 명언으로 자리 잡았다.

이 영화의 원작은 같은 이름의 소설로 1929년 출간했다. 여전히 성차별이 뿌리 깊던 미국 사회에서 오하라는 시대를 앞서가는 여성상을 제시했다.

영화와 뮤지컬로 활발히 제작된 것은 오하라가 주는 매력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지난달 샤롯데씨어터에서 막을 올렸는데,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모으고 있다.

벌써 세 번째 공연이지만 이 작품은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으로 상처 입은 공연계에서 이목을 끈다.

물론 19세기 중반 미국 남북전쟁을 무대로 귀족 오하라가 몰락하는 모습은 비극적이다. 그럼에도 결코 생존을 포기하지 않고 운명에 맞서는 오하라는 현대적 여성상의 전형이다.

20세기 중반까지 성차별이 있던 미국 사회를 감안하면 마거릿 미첼의 상상력은 시대를 앞서갔다. 오하라는 어렸을 때만 해도 순종적 여성상을 동경하다가 비극적 운명이 닥치자 생존을 택한다. 때로는 결혼조차도 생존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면서.

무대는 원작의 깊이를 충실히 살리는 편이다. 연회장과 전쟁터를 오가며 수없이 장면이 바뀌는데, 무대 전환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무대 가운데 커다랗게 설치한 검은 막이 무대 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내려온다. 꽤나 영리한 무대 연출이다. 붉은 석양이 무대 전체를 감싸는 연출은 마치 영화를 그대로 옮긴 듯하다.

무대 전환이 매끄럽다 보니 배우들의 연기 또한 집중도를 높인다. 캐스팅부터 화려하다. 주인공 오하라는 최성희·김보경·루나가 맡았다. 각자 뮤지컬 무대에서 독특한 경력을 쌓은 배우들이 출연해 골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하라를 끝까지 사랑한 레드 버틀러는 신성우·김준현·테이가 연기한다. 이들 또한 각자 서로 다른 매력을 뽐내는 배우들로 무대를 풍성하게 한다. 뮤지컬 전문 배우가 다소 부족한 듯하지만 익숙한 얼굴들이 출연하는 것만으로 화제를 모은다.

특히 이번 뮤지컬의 백미는 의상이다. 19세기 중반 미국 남부 귀족들이 입던 형형색색 옷들이 충실히 구현됐다. 의상만으로 배우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여러모로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묻어난다.

가수 출신 배우를 대거 캐스팅해 노래만큼은 확실하다. 때로는 화려한 연회로, 때로는 전쟁터로 음악을 시시각각 전환해 듣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귀에 꽂히는 멜로디는 많지 않지만 전체 음악은 무리 없이 흐른다.

다만 워낙 방대한 서사를 압축하다 보니 장면 전환이 빠른 것은 아쉽다. 버틀러 친구로 나오는 벨 와틀링은 사실 극의 진행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은 아니다. 와틀링이 출연하는 장면이 적지 않은데 과감히 생략해도 되지 않았을까.

오하라가 짝사랑하는 애슐리 윌크스, 애슐리와 결혼하는 멜라니 해밀튼은 원작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오하라와 미묘한 삼각관계를 이루는데, 이 부분을 극적으로 부각하지 않는 것은 아쉽다. 7월 29일까지.

[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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