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41

2018.06.06

문화

20대 신인 여배우의 통과의례는 노출?

김고은, 김태리, 전종서의 성공 공식 뒤에 숨은 한국 영화계 구조적 문제

  • 입력2018-06-05 13: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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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가씨’의 김태리.(왼쪽) 영화 ‘은교’의 김고은.[스포츠동아, 렛츠필름]

    영화 ‘아가씨’의 김태리.(왼쪽) 영화 ‘은교’의 김고은.[스포츠동아, 렛츠필름]

    김고은, 김태리, 전종서. 이들 세 여배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빼어난 외모보다 신인답지 않은 당찬 연기력으로 데뷔작부터 주역을 꿰찬 20대 여배우라는 점에서 30, 40대 주연 여배우가 많은 한국 영화계의 귀한 존재다. 

    1991년생인 김고은은 스물한 살 당시 300 대 1의 오디션 경쟁 끝에 영화 ‘은교’(2012)에서 타이틀롤을 맡으며 데뷔했다. 그해 대종상, 청룡상, 아름다운예술인상 등 각종 영화제의 신인상을 휩쓸었다. 이후 김혜수와 연기 맞대결을 펼친 영화 ‘차이나타운’(2015)에서 당찬 연기력으로 다시금 주목받았고 TV 드라마 ‘치즈인더트랩’(2016)과 ‘도깨비’(2016)로 인기 절정의 여배우로 우뚝 섰다. 

    1990년생인 김태리는 스물여섯 살에 1500 대 1 경쟁률을 뚫고 영화 ‘아가씨’(2016)로 장편영화에 데뷔했다. 식민지 조선에서 돈 많은 일본 귀족가문 아가씨를 유인하려고 하녀로 위장 취업한 숙희 역으로 그해 대종상과 부일영화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무수한 스타 배우가 출연한 영화 ‘1987’(2017)에서 유일한 주연급 여배우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더니 ‘리틀 포레스트’(2018)에선 탄탄한 연기력까지 입증했다. 올해 7월 첫 방송 예정인, ‘도깨비’ 작가 김은숙의 차기작 ‘미스터 선샤인’에선 스무 살 연상인 이병헌의 상대역을 맡아 다시 화제에 올랐다.

    노출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영화 ‘버닝’의 전종서. [IMDb]

    영화 ‘버닝’의 전종서. [IMDb]

    1994년생인 전종서는 역시 높은 경쟁률을 뚫고 출연한 데뷔작 ‘버닝’으로 함께 주연을 맡은 유아인, 스티븐 연과 나란히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는 영광을 누렸다. 신인답지 않게 개성이 뚜렷하면서 입체감 넘치는 연기로 한국 영화계뿐 아니라 세계 영화계에 그 존재를 뚜렷이 각인한 것. 이 때문에 전종서도 김고은과 김태리의 성공을 이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들 세 여배우가 충무로에 데뷔해 정상급 배우로 서는 과정에서 일종의 루틴이 발견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예술영화로 지명도 높은 감독의 오디션을 거쳐 발탁된다. 김고은은 정지우, 김태리는 박찬욱, 전종서는 이창동이라는,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의 작품을 통해 영화판에 첫발을 디뎠다. 



    이들 데뷔작에서 신선한 마스크와 탄탄한 연기력 못지않게 중요한 게 과감한 노출연기다. 세 영화 모두 ‘수위 제한 없는 노출’을 내건 작품이었다. ‘은교’에서 열일곱 여고생으로 분한 김고은은 치모를 노출할 만큼 강렬한 베드신으로 롤리타 신드롬 논란을 몰고 왔다. ‘아가씨’의 김태리는 한국 여배우로서는 이례적으로 김민희와 레즈비언 베드신을 펼쳤다. ‘버닝’의 전종서 역시 유아인과 농도 짙은 베드신을 펼쳤을 뿐 아니라 대마초에 취한 상태에서 석양에 상반신을 드러내고 춤추는 파격 연기를 선보였다. 

    이들의 노출연기에 대해 영화 전개상 필요하고 자연스럽다는 평이 다수다. 상업적 의도보다 작품의 완성도에 부합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바로 그 노출연기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는 것까지 부인할 수 있을까. 김고은과 김태리의 경우 그 후 데뷔작의 강렬한 이미지에서 벗어나려고 대부분 노출연기와 거리가 있는 작품을 선택하고 있다. 김고은은 갱스터 영화에서 보이시한 모습을 보여주다 로맨틱코미디와 멜로연기에 주력하고 있다. 김태리는 역사성이 뚜렷하거나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 중이다. 전종서는 이들과 달리 예술영화에서 또 다른 노출연기를 감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영화처럼 과감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결국 과감한 노출연기로 존재감을 각인한 뒤 차기작에서 그와 차별된 대중친화적 연기력으로 입지를 다져가는 패턴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씁쓸한 점은 그들이 배우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벗는 연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대 여배우로 소비하는 방식

    영화계 인사들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대부분 “그걸 패턴이나 공식이라고 보는 것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내놓는다. 그렇지 않고 영화계에서 성공한 20대 여배우가 있느냐고 물어보면 말문이 막힌다. 아역배우 출신으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 잇따라 출연한 고아성(26)과 영화보다 TV 드라마로 입지를 굳힌 강소라(28), 뒤늦게 데뷔해 벌써 30대가 된 천우희(31) 외에는 대중적 인지도에 차이가 있을 뿐 이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한국 영화계는 왜 물오른 연기력을 갖춘 여배우가 아니라 초짜 연기력을 지닌 신인 여배우에게 노출연기의 부담을 떠넘기는 것일까. 이는 한국 영화계의 구조적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한국 영화계에서 주연급 20대 여배우를 찾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김고은, 김태리, 전종서 같은 여배우가 희귀한 사례란 소리다. 영화평론가인 정민아 성결대 교수의 설명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 영화시장 규모가 커지고 때깔(영상미)이 좋아지면서 나타난 변화가 스릴러, 미스터리, 갱스터, 액션처럼 시각효과를 강조하면서 남자주인공의 역할이 중요한 장르가 주류가 된 점입니다. 여성주인공의 역할이 중요한 멜로와 로맨틱코미디는 TV 드라마로 흡수됐는데 수지와 아이유 같은 아이돌 가수 출신이 그 주역을 꿰차고 있는 형국입니다. 게다가 영화 예산이 점점 커지면서 티켓 파워와 연기력이 입증된 30대 이상의 스타급 배우만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졌는데, 여배우 중에는 (40대인) 전도연, 김혜수와 (30대 후반인) 손예진 정도만이 그 반열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티켓 파워나 연기력이 입증되지 않은 20대 여배우가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진입장벽이 높아진 상황에서 20대 여배우가 택할 수 있는 돌파구는 30, 40대 여배우들이 기피하는 파격적 노출연기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노출연기가 20대 여배우에겐 일종의 통과의례가 되고 있으며 후속세대에게 대물림되는 악순환의 징후까지 보인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의 ‘세대 착취’라는 문제 제기도 가능하다. 

    영화평론가 정지욱 씨는 “김고은, 김태리, 전종서처럼 좋은 감독을 만난 경우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고 ‘벗는 연기’로 소비되고 버려지는 20대 여배우도 많다. 조연급 여배우로 눈을 돌리면 그런 경우가 더 많다”면서 “개별 영화의 완성도나 해당 여배우의 연기력 평가와 별도로 한국 영화계가 성찰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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