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중간착취에 세금 폭탄..질긴 건설현장 '똥떼기 갑질'

김용출 2018. 6. 5.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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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스토리-甲甲한 직장⑬] 아직도 여전한 건설현장의 똥떼기 갑질
“지금 건설현장에서는 일명 ‘똥떼기’라는 관행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젊은 노동자나 비숙련 노동자들을 중간에서 착취하는 인간시장의 일면을 얘기하고자 합니다…시공사도 이 부조리를 다 알면서 눈감고 있고 이걸 관리 감독해야 할 노동부도 알면서 손놓고 있죠.”

세계일보가 지난 5월 대한민국 직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갑질 실태를 연속으로 다룬 시리즈 [甲甲한 직장]을 보도하는 사이 과거 건설현장에서 일했다고 밝힌 노동자 A(51)씨가 이메일과 전화 등으로 알려온 건설 현장의 ‘똥떼기 갑질’ 사연 일부다.

취재 결과 ‘노가다’로 불리는 건설 노동자의 상당수가 아직도 건설 현장에서 임금의 일정액을 자신이 속한 하청 또는 재하청업체의 책임자에게 떼이는, 일명 ‘똥떼기’로 불리는 중간 착취가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즉 정부가 ‘똥떼기 갑질’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근절을 천명했지만 ‘똥떼기 갑질’는 여전하다는 거였다.

◆배관설비 노동자, “팀장이 통장까지 관리하며 중간에서 착취”

많은 젊은 노동자나 미숙련 노동자들이 원청업체로부터 받은 임금의 상당액을 중간에서 똥떼기 팀장 등에게 떼이고 있었다.

과거 건설현장에서 근무했다고 밝힌 노동자 A씨가 지난 5월 전화와 이메일 등을 통해 제보한 내용에 따르면 현재 상당수 건설 현장에서는 숙련 기술자 2명과 비숙련 노동자 2명 등 보통 4명이 ‘똥떼기’ 팀을 이뤄 하청 또는 재하청받아 일을 한다.

임금은 보통 원청업체로부터 숙련도나 경험 등과 상관 없이 사람수 단위로 받게 되는데, 그의 똥떼기 팀에서는 하루 1인당 20만원씩 모두 8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미리 노동자들의 통장과 통장 카드, 비밀번호 등을 받아 관리해온 팀장은 원청업체에서 받은 임금을 △비숙련 근로자 10만원 안팎 △숙련 노동자 18만∼20만원씩을 준 뒤 남은 20만원을 챙겼다. 팀장은 이런 똥떼기로 A씨가 속한 팀에서만 1개월에 600만원 안팎을 챙겼다고 한다.

A씨는 “잘 몰라서 당하는 경우도 있고 ‘잠시하고 말건데’ 하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참고 일하는 경우도 많다”며 “방학 때 많은 대학생들이 왔다가 이런 피해를 입는다”고 안타까워했다.

◆“꺼림칙해도 임금받기 위해 통장 넘겨…비숙련 노동자 상당수 피해”

실제 경기도의 한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한 B(43)씨는 ‘건설 현장에서 아직 똥떼기 관행이 있느냐’는 물음에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 똥떼기 팀이 현장에 투입되는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그는 그러면서 “대체로 잘 모르는 대학생들이나 초보 노가다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2월말부터 2개월간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C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공개했다. 


C씨에 따르면 그가 지난해 2월말 똥떼기 업체에 입사하자마자, 똥떼기 팀장은 임금 정산에 필요하다며 사본이 아닌 통장원본과 통장카드를 가져오라고 말했다.

C씨는 ‘통장 사본이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에 꺼림칙했지만 자신만 예외로 할 수 없어 팀장 요구대로 통장과 통장 카드를 제출했다.

그해 2월에만 6일간 일했던 그는 원청업체로부터 약 10% 수준의 4대 보험비를 제외한 100만원을 통장으로 입금받았지만, 팀장이 35만원을 떼고 자신은 65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B씨는 “팀장이 월급에서 떼낸 돈의 일부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숙련 노동자(이른바 ‘기공’)에게 일부 건네고 나머지는 자신이 챙긴다고 말하더라”고 기억했다.

◆“일부 팀장, 숙식비 강제하고 해고 횡포도”

아직도 건설현장 등에서 만연한 똥떼기는 경험이 부족하거나 젊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중간에 착취하는 대표적인 불공정 관행으로 꼽힌다.

똥떼기는 인원수에 따라 임금을 지급받는 시스템인데, 기술 숙련도에 따라 임금 차이가 많지 않아 미숙련 노동자의 임금의 일부를 떼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숙련 노동자의 임금을 보전하고 팀장 커미션을 챙겨주는 구조이다.

건설 노동자 출신인 D씨 등에 따르면 현장에서 5년 이상 숙련 노동자들인 이른바 ‘기공’은 보통 일당 17만∼20만원을, 막 노가다를 시작해 기술이 없는 이른바 ‘데모도’는 10만원 안팎을 받는다고 한다.

팀장의 경우 각종 공사를 따오는 수고와 팀원 관리, 공구 조달, 숙소 문제 해결 등 팀 운영에 따른 각종 관리업무를 수행한다.

건설 노동자들은 “문제는 초보 노동자들의 임금이 문제가 아니라 기공들의 임금을 지나치게 낮게 측정하고 있다는 것과 팀장의 관리업무 비용이 과도하게 높게 책정된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일부 팀장은 2, 30명의 팀원을 거느리고 1인당 월 100만씩 모두 2, 3000만원을 본인 몫으로 챙기기도 한다.

특히 일부 악질적인 똥떼기 팀장은 노무비에 포함된 숙식비를 별도 명목으로 갈취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똥떼기 비숙련 노동자들은 대부분 근로계약서 등을 쓰지 않기 때문에 팀장의 입맛에 따라 손쉽게 해고되기도 한다.

D씨는 이와 관련, “시공사나 협력업체, 노동부 등도 근로 현장에 만연한 똥떼기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눈을 감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청에서 지원받은 4대보험 비용도 떼먹기도

일부 똥떼기 팀장은 시공사 등으로부터 근로자들의 4대 보험 관련 경비를 지원받으면서도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중간에서 가로채기도 한다.

지난해 2개월 정도 현장일을 한 E씨는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똥떼기 팀장이 (원청 회사로부터 소속 근로자의 4대 보험비 지원을 받고도) 4대 보험에 은근슬쩍 가입하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E씨는 “팀장에게 몇 번을 전화를 했지만(자신의 4대 보험 가입 여부 등을 물어도) 팀장은 자꾸 자기는 모른다는 식으로 대답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팀장 성격이 쪼잔하고 출퇴근하는 데에도 회식 한번 해주지 않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지도 않았으며, 일의 진행이나 지시도 제대로 못하고 힘으로 몰아붙였다”고 이를 갈았다.

◆“똥떼기 적폐 청산하라” 청와대 청원도

건설현장을 중심으로 똥떼기 관행의 근절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민간공사 불법적인 똥떼기팀장 운영방식 이제는 법이 만들어야할 시기’라는 제목으로 똥떼기 추방을 청원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원자는 게시판에서 “(건설)업체가 팀단가로 팀장에게 돈을 주면 근로자에게 일정액을 주고 나머지 차액은 매일 똥떼기를 하면서 가져간다”며 “(노동자들은 그만큼) 임금이 깎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똥떼기 관행에 대해 “(노동자들은)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슬프다”며 “민간공사에서 지금도 관행처럼 이루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청원자는 ‘똥떼기 팀장들만 잘 먹고 잘사는 썩어빠진 적폐’를 청산해달라고 촉구하고 똥떼기 관행이 사라지면 “185만개의 건설업은 일자리는 더욱더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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