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돈공포①]안전불감증이 불러온 참사..라돈침대-가습기살균제 '닮은꼴'

김민석 기자 2018. 6. 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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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돈침대 파문, 가습기살균제 사건 전개와 '판박이'
정부, 관리소홀에 발표 번복..이번에도 불신 키워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민석 기자 = '라돈 침대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라돈 피폭이 확인된 대진침대 매트리스를 추가 확인해 기존 7종에서 총 21종으로 늘었다고 발표한 데 이어 중국 등에서 들여온 라텍스 침대에서도 검출되면서 환경·시민단체들의 정부에 대한 고발까지 이어지는 상황이다.

정부의 관리 미흡과 발표 번복, 다수의 피해자 발생, 원료공급사의 안이한 태도, 다수의 제조·판매사의 존재 등 많은 면에서 수천명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라돈침대, 2 가습기살균제 사태로 이어질 조짐

4일 한국원자력안전위원회에 따르면 라돈은 국제암연구센터(IARC) 지정한 1급 발암물질로, 흡연에 이어 두 번째로 비중이 높은 폐암 유발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라돈 침대의 원인제공 물질인 천연 방사성 물질 '모나자이트'를 구매한 업체는 66개에 이르고 그중 13곳은 침대 등 내수용 가공제품을 제조하거나 판매했다고 밝혔다.

권 의원이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모자나이트 판매 독점업체 A사는 Δ2013년 3265㎏ Δ2014년 9959㎏ Δ2015년 9292.5㎏ Δ2016년 7222㎏ Δ2017년 6359㎏ Δ2018년 4560㎏ 등 4년 4개월간 66개 업체를 상대로 총 4만6575㎏을 판매했다. A사로부터 대진침대보다 더 많은 모나자이트를 사들인 업체는 3곳이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모나자이트를 취급하는 사업장에 대한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실태조사는 3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노동부는 예상한다. 노동부는 관계자는 "조사결과에 기초해 전·현직 노동자의 건강 이상 여부도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건의 발단은 최근 SBS가 대진침대의 시중 매트리스 천을 가로·세로 30㎝ 크기로 잘라 전문기관에 검사를 맡긴 결과 실내 기준치의 3배를 넘는 평균 620베크렐(Bq)/㎥의 라돈이 검출됐다고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대진침대는 리콜 결정을 내리고 제품을 회수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해당제품에 대한 방사선측정 등 정부의 정밀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원안위는 이틀 만인 지난달 10일 대진침대의 라돈 실제 피폭선량은 법에서 정한 기준치(연간 1mSv 초과 금지) 이하라고 발표했다.

원안위는 그러나 불과 5일 만에 방사선 피폭선량이 기준치의 최고 9.3배에 달한다는 2차 조사결과를 내놨다. 그 결과 뉴웨스턴슬리퍼 모델의 라돈과 토론(라돈의 동위원소)으로 인한 연간 피폭선량이 7.60밀리시버트(m㏜)로 나타났다는 것. 이는 앞서 발표한 수치인 0.5m㏜보다 15배 높고 흉부 엑스(X)선 촬영을 100번 했을 때 피폭선량과 맞먹는 수치다.

원안위는 사태가 심각해지자 국내 방사선 전문가 8명과 '라돈 내부피폭 기준설정 전문위원회'를 구성했다. 평가 기준을 수립·반영해 추가 조사한 결과 Δ네오그린헬스 Δ모젤 Δ벨라루체 Δ웨스턴슬리퍼 Δ네오그린슬리퍼 등 더 많은 모델에서 라돈과 토론에 의한 연간 피폭선량이 기준을 초과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천안시 서북구 대진침대 본사에서 관계자들이 방사성 물질인 '라돈'이 검출돼 수거한 침대 매트리스를 쌓고 있다. 2018.05.28/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시민단체에 따르면 대진침대뿐 아니라 중국에서 생산돼 국내 유통된 라텍스 침대에서도 라돈이 검출되고 있다. 센터와 탈핵단체 '태양의학교'가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거주자의 제보를 받고 라돈측정기로 매트리스를 측정한 결과 안전기준(148베크렐)의 7.2배에 달하는 라돈 1075베크렐이 나왔다는 설명이다.

이에 환경보건시민센터는 라돈침대 사건을 '제2의 가습기살균제' '안방의 세월호'라고 규정했다. 이 단체는 "가습기살균제와 라돈침대는 모두 안방에서 사용되는 생활용품으로 안방의 세월호라고 불릴 만하다"면서 "대진침대 외 다른 회사의 침대제품에서도 모나자이트 등의 방사능 물질을 사용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에 국내 침대 모두에 대한 긴급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환경운동연합과 시민방사능감시센터 등 11개 단체도 정부의 부실한 조사를 규탄하고 근복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현재 국내 특허 음이온제품은 18만여개"라며 "음이온 생활제품에 대한 전반적 실태조사와 안전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원안위와 강정민 위원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 단체는 "원안위의 적극적 노력만 있었다면 라돈 사태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며 "대진침대 소비자가 방사선에 피폭된 이번 사태는 원안위의 무사안일과 무책임으로 인한 관재(官災)"라고 주장했다.

뉴스1 DB© News1

◇정부의 관리소홀·발표 번복에 시민단체 집단소송까지 똑같아

대진침대 등 업체들은 정부로부터 원료물질의 위험성을 안내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음이온 생활제품 전반의 안전성에 대한 '케미포비아'(화학제품 공포증)이 증폭될 전망이다. 특히 약 10년간의 잠복 기간을 거친다고 가정했을 때 소비자들이 오랜 시간 이후 건강에 문제가 발생할 우려도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라돈 침대' 사태는 불과 2년 전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린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정부의 미흡한 관리와 발표 번복 및 뒤늦은 대응, 피해자와 시민단체들의 집단행동과 피해보상 요구로 이어지는 등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유사점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대표 업체로 꼽힌 옥시의 경우 2011년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터진 후 검찰조사를 받기 전까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 않고 법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 인도적 기금 50억원을 냈지만 검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피해자들의 폐 손상 원인은 황사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옥시가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투명한 배상안을 내놓는 데까지 5년이 걸렸다.

정부 대응도 안일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2011년 4월~5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출산 전후 산모 8명이 폐가 굳는 원인 미상의 폐질환으로 입원한 뒤 4명이 숨지며 세상에 알려져 이후 인과관계가 밝혀졌음에도 '인체에 무해하다'며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업체들도, 이를 방관한 정부도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시간만 흘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2년 옥시 등 업체에 과징금 5200만원을 부과했을 뿐이다.

또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정위는 SK케미칼, 애경 등 기업들이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의 독성물질을 은폐한 채 광고행위를 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사무처 보고서를 받았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기업 책임자들을 고발할 필요성이 있어 애경산업은 81억원, SK케미칼은 250억원의 한도에서 과징금을 부과해야한다고 결론을 내냈지만 공정위는 이들 기업의 '기망표시광고죄'에 대한 공소시효 만료일을 불과 1주일 앞두고 "제품의 인체 위해성 여부가 최종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의절차를 종료했다. 공정위는 다시 올 2월 공정위가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유해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SK케미칼, 애경산업을 검찰에 고발했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회적참사 특조위)는 라돈 침대 논란과 관련한 긴급 현안점검회의를 소집해 활동을 시작했다.

안종주 사회적 참사 특조위 위원은 "대진침대에 사용된 모나자이 등 자연 방사능을 방출하는 희토류 광물질이 침구에 사용돼 문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며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이번 라돈 침대 사태는 매우 유사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피해배상을 주장하며 약 2800여 명의 피해자들의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라돈 침대 사태의 '책임'과 '배상'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경우 옥시레킷벤키저가 대표 책임 기업으로 배상에 앞장서고 있는 라돈 침대 사태의 경우 주요 책임 기업의 배상 재원 조달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해당 침대 사용으로 폐암, 갑상선(갑상샘) 질환 등 건강 이상을 호소하는 피해자들 속출하는 데다 음이온 생활제품 전반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증폭돼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확대될 수 있어 보인다"이라며 "정부가 안일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가 뒤엎는 등 미흡한 대처 부분도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ideaed@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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