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돈공포②]관리 부재가 키운 人災, 정부 대처 미숙으로 혼란가중

류정민 기자 2018. 6. 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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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부재, 미흡한 대처' 1300여명 목숨 앗아간 '가습기살균제' 사태와 유사
피해자모임 '文 대통령 만나겠다' 청원, 소비자단체·의협 등 고발 잇따라
엄재식 원자력안전위원회 사무처장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라돈 검출 침대 조사 중간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18.5.10/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류정민 기자 = 라돈침대 사태가 확산일로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미흡한 대처도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번 라돈침대 사건은 입법 미비, 관리 소홀, 미흡한 대처까지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서 드러난 시스템 부제와 안전 불감증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대한의사협회 등은 1, 2차 조사에서 서로 다른 결과를 발표하며 혼란을 가중시킨 한국원자력위원회(원안위)를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등 정부에 극도의 불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원안위 안일한 대처가 사태 키워, '엉터리' 조사에 불신감 확산

대진침대피해자모임은 이번 라돈침대 사태와 관련해 원안위,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련 부처가 미흡하게 대처하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과의 직접 면담을 추진하고 있다.

피해자모임이 지난달 31일부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추진 중인 청원에는 4일 오전 현재 1000명가량이 참여했다.

이들은 청원에서 "라돈침대 피해자들은 이번 사태가 가습기살균제나 세월호와 같은 국가적 재난이라고 생각한다"며 "모나자이트 (유통경로를) 추적하고 관리해야 했던 원자력안전위원회나 음이온제품에 친환경마크를 인증해준 환경부, 각종 음이온제품을 특허를 내준 산업부 산하 특허청 등 유관부서들이 침묵하거나 책임전가에 급급하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해결방안을 듣고 싶다"고 성토했다.

시민, 환경단체 등이 1차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이번 라돈침대 사태에 대한 당국의 미숙한 대처다.

원안위는 언론 보도 일주일만인 지난 5월 10일 발표한 라돈 검출 침대 조사 중간결과에서 "피폭선량이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에 따른 가공제품 안전기준(연간 1mSv 초과금지) 범위 내였다"고 발표했다. 피부를 통한 외부 피폭 선량은 0.06mSv, 최대 연간 외부 피폭 선량이 0.15mSv였다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천안시 서북구 대진침대 본사에서 관계자들이 방사성 물질인 '라돈'이 검출돼 수거한 침대 매트리스를 옮기고 있다. 2018.05.28/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또 내부피폭선량은 가장 보수적으로 침대에 엎드려 잘 경우를 가정해 매트리스 상단 2㎝ 지점에서 측정된 양이 연간 총 0.5mSv로 평가됐다고 밝혔다. 이중 수치가 더 높은 내부 피폭의 경우 국내외 적으로 구체적인 내부피폭에 대한 기준은 없다고 발표했다. 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센터(IARC)가 라돈을 1급 발암물질로 정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안감을 씻기 어려운 조사내용이다.

원안위가 첫 조사결과 발표 5일 만에 최초 조사결과를 뒤집으면서 우려는 현실이 됐다. 원안위는 지난달 15일 2차 조사 결과 발표에서 대진침대 7개 모델에서 많게는 기준치의 9배가 넘는 방사선 피폭량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는 앞선 1차 조사에서는 에코폼, 에코메모리폼 등 침대 스펀지는 확인하지 않은 채 커버만을 조사한 때문이다.

시민환경단체는 원안위가 이번 라돈 침대 사태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며 안일한 대처가 사태를 키웠다고 비판하고 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검에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강종민 원자력안전위원장을 직무유기혐의로 형사고발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고발장에서 "원안위가 2014년 직접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이번에 문제가 된 대진침대와 같이 속커버 원단안쪽에 음이온 발포 스폰지에 방사능 물질인 모나자이트가 함유돼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발인들은 언론의 대진침대의 라돈 검출 보도 직후 대진침대 7개종의 1차 조사발표(5월10일)를 하면서 기준치 이하 피폭 선량이 검출됐다고 엉터리 발표를 하는 등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방기했다"고 지적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습기살균제 사태와 유사한 패턴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정부가 이처럼 조사결과를 뒤집자 지난달 16일 이번 라돈침대에 대해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매우 유사하다"며 우려를 표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사망자만 6월 1일 현재 1325명에 달하는 추정되는 대참사다. 2011년 4~5월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 입원한 출산 전 후 산모 8명 중 4명이 폐 조직이 굳는 질환으로 숨지고 이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되며 세상에 알려졌다.

폐질환 원인의 핵심원인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등의 독성물질을 원료로 사용한 가습기살균제가 아무런 제지 없이 시판되고 10년 넘게 아무런 판매되는 등 정부의 관리부재가 사태를 키웠다.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들이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중구 환경재단에서 열린 '방사능 라돈침대 88,098개, 제2의 가습기살균제 참사' 기자회견에서 대진 라돈침대의 리콜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참가자들은 이 자리에서 라돈침대의 전 제품 리콜 확대와 취약계층 이용자의 건강 전수조사를 촉구했다. 2018.5.16/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SK케미칼의 전신 유공이 가습기 살균제 원료 PHMG 제조 신고서를 환경부에 제출한 건 1996년이고, 이후 SK케미칼로부터 원료를 공급받아 만든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처음 출시된 시점은 2000년이다. 환자가 본격적으로 발생한 것은 2006년, 원인 확인과 수거 명령이 이뤄진 것은 그로부터 5년 뒤인 2011년이었다. 제품이 처음 판매되기 시작한 지 무려 11년 만이다.

라돈침대도 가습기 살균제와 매우 흡사한 사건 전개 패턴을 보이고 있다.

처음에는 2010년 이후 출시된 제품으로 한정되는 듯했지만 환경보건시민센터는 2007년 생산된 침대에서도 라돈이 검출됐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원안위는 뒤늦게 '기준치를 초과한 모델은 생산연도와 상관없이 전체 수거명령을 내렸다'고 해명했다.

원안위는 지난달 21일 라돈을 내뿜는 모나자이트를 수입업체(1곳)로부터 구매한 66개 업체에 대한 조사와 생활밀착형 제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11개 업체 대해서도 별도의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사후약방문' 식의 조사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과 시민방사능감시센터 등은 최근 성명을 통해 "라돈 침대 사태는 음이온 파우더를 사용한 대진침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생활 전반에 퍼져있는 음이온 제품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며 "현재 특허청에서 특허를 내준 음이온 제품은 무려 18만개로, 음이온 생활제품에 대한 전반적 실태조사와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급 발암물질 '라돈' 내뿜는 모나자이트…침대회사가 사용한다는데 문제 예상 못했나 1급 발암물질인 라돈을 내뿜는 제품이 제작돼 시중에 버젓이 판매됨에도 정부 당국이 이를 제대로 인지조차 못한 것은 더욱 큰 문제다.

이번 라돈침대 사태의 핵심은 대진침대의 매트리스에 라돈을 내뿜는 모나자이트를 원료로 하는 음이온 가루가 쓰였다는 점이다.

원안위는 2013년 '천연 방사성 물질 취급자 등록제도'를 실시하고 모나자이트, 인광석과 같은 천연 방사성 핵종을 함유한 원료물질을 취급하는 업체 등록을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해외에서 모나자이트를 수입해 대진침대 매트리스 제조사를 비롯해 거래처에 납품한 업체도 원안위에 이를 등록하고 유통, 처리현황을 보고해왔다. 그러나 원안위는 소비자의 문제제기와 언론보도로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 모나자이트 수입업체나 매트리스 제조사에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모나자이트의 위험성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 없이 국가통합인증마크인 KC마크를 받고, 건강기능성 제품 특허 및 친환경마크를 부여 받은 것도 가습기살균제 사태와 유사하다.

KC마크를 부여받은 가습기살균제 역시 세정제로 허가받았지만, 가습 기능 사용 방식을 고려한 흡입 독성에 대한 검사가 부재했다. 살균제를 흡입할 경우를 가정한 유해성에 대한 심사규제도 강제하지 않아 결국 아무런 제지 없이 시판됐다.

박순장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소비자감시팀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라돈침대 사태'와 관련해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강정민 위원장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하기 위해 검찰 민원실로 향하고 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방사선으로 인한 국민의 건강과 생명안전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원안위가 적극적인 노력을 했다면 '라돈침대 사태'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며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2018.5.31/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원안위 고발장에서 "수입업체가 관련법에 따라 원안위에 공급대상을 신고했을 것인 만큼 대진침대의 매트리스에 모나자이트가 사용되고 있었음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2014년 조사에서는 기준치 이하라고 했고, 2015~2017년은 침대 매트리스에 대해서는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원안위는 사태가 불거지자 방사성물질 성분 표시제 또는 사전 안전기준 검사제의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모나자이트가 사용된 침대를 한 달 내에 수거 완료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뒤다.

라돈에 대한 폐질환의 경우 노출된 뒤 수년에서 수십년에 걸쳐 서서히 나타날 수 있어, 향후 피해 규모는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원안위를 직무유기로 고발한 대한의사협회는 "라돈 성분이 검출된 대진침대 매트리스 사용자에 대한 역학조사와 함께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며 폐암발병 여부에 대한 모니터링을 정부에 요구했다.

대한의사협회가 지난달 25일 정부에 역학조사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는 등의 라돈침대 사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News1

ryupd0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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