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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문재인정부 인사개혁 총지휘하는 김판석 인사혁신처장

김아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03 17:21

수정 2018.06.03 21:28

"9급 공무원, 5급 되는데 25년 걸려 능력 있다면 '고속승진' 기회 줘야"
속진임용제 내년중 도입, 우수한 공무원들 공개경쟁 유도 직무훈련·해외연수 기회도 늘릴것
해외에 인사제도 노하우 전수, 전자인사관리·윤리정보시스템 등 중앙亞·중남미 국가에 수출 추진
인사혁신 기반 다진 1년..'재해보상법' 도입 순직범위 합리화, '공직자윤리법' 개정 연내 마무리
지난달 29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를 가진 김판석 처장이 공직 인사 개혁에 대한 그의 경험과 노하우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서동일기자
지난달 29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를 가진 김판석 처장이 공직 인사 개혁에 대한 그의 경험과 노하우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서동일기자

[특별인터뷰]문재인정부 인사개혁 총지휘하는 김판석 인사혁신처장


부드럽고 강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함과 자신감이 묻어났다. 오랜 학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론적 정교함과 디테일이 돋보였다. 정통 관료 출신이 갖추지 못한 개혁적이고 창의적인 인사개혁의 기대감이 커지는 것도 그래서다.
정부혁신을 외치는 문재인정부의 첫 인사혁신처장으로 그의 역할은 어느때보다 막중하다. 정부혁신과 인사혁신은 동전의 양면이다. 인사혁신이 이뤄지지 않는 정부혁신은 공염불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5월 29일 늦은 오후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만난 김판석 처장은 어느 때보다 상기돼 있었다.

오는 7월이면 취임 1주년이 되는 만큼 지난 1년간의 성과와 인사개혁 로드맵 마련에 부담과 긴장감이 역력했다. 지난 1년간 쉼없이 달려온 그는 각종 인사관행을 개혁하고 혁신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았다는 평가다. 특히 경직된 관료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사회 각 분야의 재능있는 인재를 영입하는 데 동분서주하고 있다. 고위직과 중하위직 간 승진차별 해법 마련에도 암중모색 중이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공무원 계급구조 축소 주장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현행 계급구조는 과거 조선시대부터 시행된 역사적 경험으로 지혜와 지식이 농축된 꽤 합리적인 인사방안"이라는 것이 그의 견해다. '속진임용제'를 내년부터 시행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충분하진 않지만 경직성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방편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기준 고위공무원단 입직경로별 비율은 5급 공채가 무려 75.1%를 차지했고 7급 공채는 4.6%, 9급 공채는 1.6%, 경력채용이 11.6%에 그쳤다. 9급에서 5급으로 올라가는 데 평균 25년4개월의 시간이 걸리는 현실을 타개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의 공무원 인사에 대한 철학과 지론을 들어봤다.

―내달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소회는.

▲문재인 대통령께서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공직자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말씀을 여러 번 했다. 공무원이 개혁의 주체로서 국민의 요구에 기민하게 반응,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공무원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지난해 7월 12일 인사처장으로 부임한 이후 공무원의 역량을 높이고 공직사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인사처 전 직원과 함께 숨가쁘게 달려왔다. 위기관리 대응에 힘쓰고 있는 현장 공무원들을 위해 '공무원 재해보상법'을 새롭게 제정, 재해보상과 순직범위 등을 현실화했다. 공무원이 상관의 위법한 지시나 명령에 따라야 했던 행태를 방지하고자 '국가공무원법' 개정안과 공직윤리 강화를 위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 올해 안에 개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공정한 채용을 위해 직무역량 중심의 '배경 블라인드 채용' 시스템을 확립했다. 공무원시험 수험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자 공개경쟁채용시험 선발 소요기간을 시험별로 약 2개월 이상씩 단축했다. 여성관리자 임용 확대 5개년 계획을 발표했으며 올해에는 균형인사 5개년 계획도 수립할 계획이다. 공무원노조 합법화 이후 최초로 11년 만에 행정부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과, 올 1월에 발표한 '정부기관 근무혁신 종합대책' 또한 공직사회 근무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큰 성과로 생각한다. 지난 1년은 법령 개정 등 인사혁신을 위한 기반을 닦는 과정이었다. 앞으로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인사정책을 지속적으로 개선, 발전시켜 나가겠다.

―공무원의 경직된 계급구조에 대해서도 지적이 나온다.

▲계급은 양면이 있다. 계급을 늘리면 빨리 승진하는 효과가 있다. 줄이자는 사람도 있다. 서구의 직위분류제처럼 한곳에 들어가서 평생 근무하는 사람은 계급구조가 많지 않은 게 좋다. '9'라는 숫자로 정해져 있는 것은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중국 역사에서도 9품제가 근간이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계급사회다. 체계를 흔드는 것은 진통이 있을 것이다. 9개의 계급은 한국의 역사적 맥락에 의해서 안정돼 있는 것이다. 다만 승진 관련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 지난해 기준으로 9급에서 5급까지 승진하는 데 25년4개월이 걸린다는 통계가 나왔다. 보통 20대 후반에 시험 준비해서 들어오면 벌써 50대 중반에 이른다. 이 부분은 개선이 필요하다. 능력있는 9급은 속진하는 '속진임용제'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오래전부터 이야기만 나오고 실제 추진은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각 부처와 협의를 해서 내년도 상반기에는 협의된 안을 가지고 임용령을 개정할 예정이다. 상반기까지 부처 의견 검토안 받아서 내년중으로 도입할 것이다.

―속진임용제 적용대상은.

▲모든 공무원에 적용된다. 제도가 잘 정착된다면 우수한 7·9급 출신 공무원들이 실·국장 자리까지 많이 진출해 5급 공채(고시)와 경쟁하는 구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5급 공무원은 많으니까 7급, 9급에 좀 더 승진 배려를 하겠다는 차원이다. 지금은 명부를 가지고 승진 리스트가 나오는데 이제는 공개경쟁을 시킬 수도 있고 역량평가를 통해서 우수한 사람을 뽑아내겠다는 것이다. 능력을 개발할 기회가 필요하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5급으로 들어오면 받게 되는 1년짜리 직무훈련, 국외 공무원연수 학위과정도 하위직에 배려할 방침이다.

―성과연봉제는 도입 관련 진통을 겪고 있다.

▲노조에서 문제제기를 해왔고 현재 협의기구를 만들어 협의하고 있다. 제도개선 방안을 대화를 통해 모색하고 있다. 성과급에 대해 전 세계적인 자료를 찾아보면 완벽한 제도를 자랑하는 나라는 없다. 국가마다 입장이 다르고 하나의 제도를 베스트라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범적인 사례가 없다. 그나마 우리제도에 자신감을 갖는 것은 적어도 국가공무원의 경우 성과급과 관련해 문제된 적은 거의 없었다. 정약용 선생의 '경세유표'에 보면 공정한 인사철학 얘기가 나온다. 그 책에 따르면 공직자는 반드시 평가를 해야 하고 잘하는 사람 상주고 못하는 사람은 적절한 인사조치를 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조선시대에도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떤 사회든 평가를 하면 잘하는 사람은 그에 합당한 평가와 보상을 받는 것은 변함없는 원칙이다.

―개발도상국 인사제도 정비에 힘을 쏟고 있다. 어떤 효과가 있는가.

▲공무원 인사행정 분야의 국제협력 확대, 행정 한류 아이템으로 공무원 인사제도의 글로벌 확산에 힘쓰고 있다. 우리의 고위공무원단 제도, 국가인재 DB(데이터베이스)·전자인사관리시스템, 공직윤리종합정보시스템 등은 해외에 수출할 만한 좋은 제도다. 실제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중남미 지역의 국가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협력사업을 추진 중이다. 인사제도를 포함한 한국 정부의 우수사례 및 제도가 해외에 전파되면 그 과정에서 정부와 외국 정부 간의 국제협력과 교류를 통한 상호호혜 관계증진이라는 편익도 있지만 간접적 차원에서도 효과가 있다. 한국 공공행정 분야의 우수한 정책과 사례를 다른 외국정부 기관이 참고하거나 받아들이면 제도를 발전시켜온 한국과 국민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높아지고 우호적 감정도 확산될 수 있다. 개도국 행정의 개선을 통한 간접적인 낭비요인 제거 등은 한국 국민 또는 기업이 해외진출하거나 사업을 하는 데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주52시간 근로제 시행을 앞두고 있다. 공무원도 예외 아닌데.

▲주52시간 근무시간 한도 도입은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 등을 보호하기 위해 재난발생 등 긴급 비상상황에 대응해야 하는 공무원의 업무특수성을 고려해야 하므로 일률적으로 근무시간 상한을 규제할 경우 자칫 대국민 서비스 차질 등이 우려돼 신중하고 세밀한 제도설계가 필요하다. 경찰, 소방, 우편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현업공무원의 근무시간 제한은 교대근무인력의 충분한 확보 등이 선행돼야 한다. 이에 2022년까지 초과근무를 40% 감축하기 위한 '정부기관 근무혁신 종합대책'을 세웠다. 낡은 업무관행 제거, 모바일 전자결재 등 ICT 기반의 스마트한 업무환경 확산을 통한 업무 프로세스 개선 등을 통해 불필요한 근무시간을 최소화하도록 했다.
초과근무를 한 경우 상대적으로 덜 바쁠 때 그만큼 단축근무 또는 연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초과근무저축 연가제도를 도입하고 동계휴가를 도입하는 등 근무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국가공무원 복무규정(대통령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상반기 중 시행할 예정이다. 현재 인사처 내부에서는 초과근무, 연가사용 근무상황판을 도입해 각 부서의 초과근무를 지적하고 연가 사용을 독려하고 있다.
이 같은 근무상황판은 전 부처로 확대할 계획도 고려 중이다.

대담 = 김태경 정책사회부장

정리=true@fnnews.com 김아름 기자

김판석 인사혁신처장은

약력 △62세 △경남 창원 △동아고 △중앙대 행정학과 △미국 플로리다국제대 행정학 석사 △미국 아메리칸대 행정학 박사 △연세대 글로벌행정학과 교수 △연세대 정경대학장 겸 정경대학원장 △대통령비서실 인사제도비서관 △한국인사행정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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