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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에너지 협력은 이제 현실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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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에너지 협력은 이제 현실로 다가왔다

[초록發光] 남북 에너지 협력이 던지는 질문들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눈앞에 다가왔다. 다시 돌발변수가 생길지 모르겠으나 아직까진 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소식이 찾아올 것 같은 분위기다. 북미 정상회담의 고비를 무사히 넘긴다면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은 크게 확대될 것이 틀림없다. 환경·에너지 분야에서도 지금껏 마주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에너지 및 전력 문제는 익히 알려진바 이미 남북 간 에너지 협력과 관련된 이야기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야기의 초점도 에너지 협력의 필요성을 넘어서 에너지 협력의 방법으로 빠르게 넘어가고 있다.

남북한 에너지 협력, 어떻게?

이제껏 나온 남북한 에너지 협력 방안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북한 밖에서 생산된 전력 및 에너지를 북한으로 공급하는 방안. 그동안 핵 협상 과정에서 단골 메뉴로 등장했던 대북 중유 공급, 대북 송전이 대표적인 방안이다. 근래에는 접경지역에 LNG를 연료로 한 '평화발전소'를 건설하여 북한으로 송전하는 형태로 변주되기도 했다. 넓게 보면, 남·북·러 천연가스망을 연결한 뒤 파이프라인 사용 대가로 북한에 발전용 천연가스를 제공하는 안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북한 내 대규모 발전소 건설에 투자하는 방안도 추진된 바 있다. 단적으로 1994년 북미 간의 제네바 합의에 따라 추진된 경수로 건설을 떠올리면 되겠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통한 대북 경수로 건설사업은 비록 좌초되긴 했지만 원자력산업계에서 최초의 원전 수출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최근 남북 에너지 협력이 논의되면서 원자력계는 실패했던 이 카드를 다시 꺼내들고 있다.

그러나 이상의 두 가지 방안은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다름 아닌 북한의 취약한 송전망 상황. 북한의 전력망은 낙후되고 포괄 범위가 제한적일 뿐더러 송배전 손실률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대규모 발전소 건설을 통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려면 송배전망을 재구축해야하는데, 여기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다.

대안으로 제시되어온 세 번째 방안은 재생에너지 중심의 남북 에너지 협력이다. 재생에너지에 기초한 분산형 전력망을 구축하면 취약한 송전망의 문제를 피해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재생에너지 협력은 환경적인 지속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경제성도 뒤쳐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적정 규모'에 대한 입장은 서로 달라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대규모 해상풍력단지를 건설하는 것에서 독립형의 가정용 재생에너지 기기 지원 또는 마을 규모의 소규모 전력망 구축까지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다양한 남북 에너지 협력 방안에서 드러나는 바, 남북 에너지 협력은 이제 북한에 어떤 에너지·전력 체계를 구축할 것인지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단순히 남북 에너지 협력 그 자체에만 의미를 두기에는 물밑의 경로 경쟁이 이미 치열하다. 더불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든 에너지 전환을 최소한 한반도 스케일에서 사고해야하는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 전력망으로 보면, 앞으로 남한은 '고립된 섬'의 처지를 탈피할 가능성이 커졌다. 남북 에너지 협력이 확대되는 것과 함께 에너지 전환을 논의하는 지평도 크게 요동칠 것이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협력이면 충분한가, 질문을 던질 때도 되었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남북 에너지 협력과 관련된 논의들에서도 지배적인 시각은 '북한 에너지 문제의 해결사로서 남한'인 듯싶다. 이때 북한은 남한으로부터 재생에너지 지원을 받는 존재에 불과하다. 기술적, 재정적 현실성의 그늘 아래 숨어 에너지 협력의 주체로서 북한의 역할은 사라진다. 북한은 단지 대상으로 존재할 따름이다. 달리 표현하면, 북한을 단순히 남한의 재생에너지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자 개발 중인 재생에너지 기술들의 테스트 베드(시험대)로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굴절된 에너지 안보와 강요된 에너지 자립화 사이

이쯤에서 잠시 남북한의 에너지 체제의 발전 경로를 되돌아보는 게 좋겠다. 알다시피 남한의 해외 에너지 의존도는 대단히 높다. 석유, 천연가스, 유연탄을 수입하지 않는다면, 산업활동은 물론 일상적 활동까지 사실상 중단되는 수준이다. 이처럼 높은 해외 의존도는 역설적으로 '준국산 에너지 = 원전'의 신화가 싹트는 토양이 되었다. 한편 지구적인 에너지 공급 체계에 편입된 남한은 국내적으로 전국화된 에너지·전력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와 같은 과정은 환경파괴와 위험이 확산되고 지역 간의 환경부정의(environmental injustice)가 심화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따라서 남북 에너지 협력이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기초한 남한 모델을 확장하고 이식하는 것이라면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확대라면 다르지 않을까?


1990년대 이래 북한은 강요된 에너지 자립화의 길을 걸었다. 소련의 붕괴와 함께 원유 지원이 끊기면서 북한의 에너지 체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북한 특유의 '자력갱생'에 따라 국내 자원인 수력과 무연탄은 에너지 자립화의 주춧돌이 되었다. 하지만 가혹한 1990년대였다. 1990년대 중반 연이은 홍수로 탄광이 대거 침수되면서 무연탄 생산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석유 부족에 따른 농업 생산성 하락이 겹쳐 식량난도 심각해졌다. 과도한 땔감 채취와 농지 개간으로 인해 산림은 황폐해져갔다. 산림이 황폐화되면서 홍수 피해가 커지고 토사 유출로 인해 수력 발전까지 영향을 받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노후화된 수력 및 화력 발전소를 정비하는 데 필요한 설비와 기술도 부족했고 송전망을 복구할 길도 요원했다. 그렇게 에너지·전력난이 장기화되었다. 다만 에너지-물-식량-산림의 상호연계의 악순환 속에서 흥미로운 시도가 일어나기도 했다. 예컨대 자구책으로 '1지역 1발전소 정책'이 추진되면서 지역별로 중소규모 (수력) 발전소가 크게 늘었다. 바이오매스, 특히 메탄가스를 생산·이용하는 기술도 농촌을 중심으로 축적되었다. 2010년대 중반 들어서면서 풍력과 태양광 등 '자연에너르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보급도 확대되고 있다. 북한의 에너지 체제가 대안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에너지 자립이나 지역 에너지 등의 측면에서 따져볼 만한 사례가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기술 수준, 효율성, 경제성 등 고려할 게 많지만 강요된 에너지 자립화의 역사와 맥락 속에서 등장한 실험들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

에너지 전환에 있어 북한은 어떤 존재인가?

이와 같은 북한의 자체적 시도들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면, 남북 재생에너지 협력에 관한 우리의 사고 속에서 북한은 계속 남한 재생에너지 산업과 기술을 위한 시장이자 테스트베드의 위치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단적으로 북한 지역은 주민들의 저항과 환경규제가 약하기 때문에 풍력과 태양광을 설치하기에 유리한 곳으로만 그려질 것이다. 혹여 남한에서 실험하기 어려운 새로운 기술들을 앞서 경험해볼 수 있는 혜택을 북한 주민들이 누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정작 그 기술과 기술이 제공하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묻힌 채. 그래서 타자화된 북한(주민)만 존재하는 상상 속에서의 재생에너지는 매력적이지만 위험할 수 있다.

평화체제의 안착이 중요한 만큼 남북 에너지 '협력'에 집중하고 '작은 문제들'은 잠시 제쳐두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마치 20여 년 전 경수로 건설이 그랬듯이. 하지만 어떤 에너지원을 선택하느냐는 더 이상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할 때 재생에너지 중심의 협력도 벅찬 과제일 수 있다. 하지만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면 정의로운 협력의 가능성도 찾아야할 것이다. 다행히 시민사회가 주도한 에너지 교류·협력의 경험도 존재한다. 10여 년 전 대북 에너지 지원 국민운동본부나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서 시도한 자원순환형 지원사업, 소규모 태양광발전소 건설 추진, 태양열 조리기 및 소형 풍력 발전소 지원 등은 지배적 상상과는 다른 길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것이 답이라 자신할 수는 없지만 잊혀진 기억을 되살리면서 에너지 협력을 매개로 북한과 마주할 수 있는 더 많은 길을 찾아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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