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단독] 삼한시대 역사 앞당길 '국보급 청동창' 나왔다

2018. 6. 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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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리 목관묘 요갱에서 최상급 무기갖춤 출토
옻칠된 창집, 과집 발견은 역대 발굴 사상 처음
과집 표면의 오수전 무더기 장식 놀라움 안겨
영남 일대 군림한 진한 소국들의 실체 보여줘

[한겨레]

경산 양지리 6호분 무덤의 요갱에서 드러난 옻칠된 최상급의 무기갖춤 유물들. 긴창을 넣은 창집이 비스듬하게 요갱 안에 걸쳐있다. 긴 창집 옆에 놓인 작은 창집과 두 창집 아래 중국 오수전을 표면에 붙인 과집의 일부도 보인다.

2000여년전 까맣게 옻칠된 표면은 방금 바른 듯 윤이 났다. 날카로운 창과 꺽창(과)이 쑥 들어간 무기집은 옛 자태 그대로였다. 놀랍게도 꺽창 집에는 중국 동전 수십여개가 장식물로 붙어있었다.

기원전 1세기~기원 전후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 진한 소국의 왕 무덤에서 옻칠한 역대 최고급의 무기갖춤이 세상에 나왔다. 20세기 이래 발굴된 삼국시대 이전 출토품들 가운데 단연 최상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는 국보급 명품의 발견이다.

유물이 나온 곳은 경북 경산시 하양읍 양지리 택지개발터에서 지난해 조사된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께의 삼한시대 목관묘 6호분. 31일 학계 등에 따르면, 성림문화재연구원(원장 박광열)은 지난해 12월 무덤 관 자리 밑 요갱(주검 허리 부분 아래쪽에 판 부장품 구덩이)을 찾아내 무덤주인의 부장품인 2점의 청동창과 옻칠된 창집, 1점의 청동과와 옻칠된 과집을 각각 발견해 수습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게 옻칠된 창집과 과집은 요갱의 옻칠된 나무상자 안에서 발견됐다. 긴창이 든 창집은 길이 70㎝, 작은 창이 든 창집과 과집은 길이 30cm 정도다. 창집들은 마디마다 서너개의 장식용 금속띠(금구)를 둘렀다. 특히 과집은 한나라 동전 오수전 26개로 표면을 수놓아 권세를 과시하는 독창적인 장식 구도를 보여준다. 이건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삼국시대 이전 유물로는 가장 월등한 가치를 지닌 국보급”이라며 “기원전 진한 소국의 실체를 명백히 드러내는 대발견”이라고 평가했다.

소식을 접한 고고학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처음 출토된 옻칠 창집들과 오수전이 잔뜩 붙은 창집 표면의 장식 등 요갱의 부장품들은 삼국시대 이전의 출토 유물들 가운데 가장 만듦새가 뛰어난 유물로 평가된다. 기원전부터 한반도 남부 일대 소국들이 강력한 정치체제와 경제력을 바탕으로 독창적 문화와 교역망을 갖고 있었음을 실증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동 과(꺽창)를 감싸는 옻칠된 과집은 양지리 6호분의 핵심 유물이다. 검게 옻칠된 표면에 중국 한나라 동전인 오수전 20여개를 가득 붙여놓은 것은 전례를 찾을 수 없는 디자인이다. 중국 선진 문물의 상징이던 오수전을 무기의 장식소재로 쓴 건 무덤 주인의 위세를 과시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 전례 없는 최상급 유물들의 의미는? 양지리 6호분 요갱에서 나온 옻칠된 창집, 과집 등은 진한에서 강력한 권력을 쥐고있던 왕의 무덤임을 보여준다. 앞서 지난해 11월 연구원 쪽이 요갱 윗부분 묘실의 발굴 성과를 공개할 당시에도 옻칠된 동검·철검 칼집, 호랑이 모양 허리띠, 중국제 청동거울, 길쭉한 쇳덩이(판상철부) 등의 중요 유물들이 쏟아져 학계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삼한시대 최고의 발굴 성과로 꼽히는 80~90년대 창원 다호리 고분군 출토품과도 연관되는 양상을 보여, 영남권 진한 소국들의 실체를 드러낼 새 타임캡슐로 주목받아온 상황이었다.

그뒤 요갱의 후속 발굴에서 드러난 무기갖춤은 지난해 공개된 묘실 조사 성과를 압도할 뿐 아니라 획기적인 역사적 진실을 전해주고 있다. 칼보다 큰 장창과 적을 찍어누르는 기능을 하는 꺽창이 나무 재질에 고급스런 검정 옻칠을 더한 창집에 넣어져 부장됐을 뿐 아니라, 중국교역으로 얻은 선진 문물의 상징이던 오수전이 무더기로 창집에 붙은 장식재로 발견된 것이다. 영호남 유적에서 종종 발견되는 오수전·반량전은 한나라에서는 화폐로 쓰였지만, 고대 한반도 지역세력들 사이에서는 지위나 위신을 보여주는 상징물로 인식됐다. 이전에는 유적마다 1~3점의 소량이 출토되는 정도였으나, 양지리 6호분에서는 20개 넘는 오수전들이 모두 무기의 장식재로 쓰였다는 사실이 학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고고학회 회장인 이청규 영남대 교수는 “동전 자체로도 위세품인 오수전을 거리낌 없이 무기류에 붙여 장식했다는 점에서 무덤 주인인 진한 수장의 권력이 엄청났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무덤 조성 당시 이미 개인 권력자의 지배체제가 확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꺽창(과) 들어간 과집을 투사한 엑스레이 사진. 표면 곳곳에 붙은 중국돈 오수전들의 윤곽이 선명하게 보인다. 성림문화재연구원 제공

기원전부터 진한은 융성했다? 요갱에서 나온 최고 수준의 부장품들은 삼한의 존속 시기와 관련해 논란도 예고한다. 지난해 1차 발굴 결과에서 연구원이 밝힌 것처럼 이 무덤의 연대는 애초 기원 전후이거나 기원후 1~2세기까지로 늦춰 보는 게 통설이었다. 연약한 와질토기나 금속유물들의 양상이 다호리에서 나온 청동검과 붓 등의 무기, 생활유물들보다 연대가 떨어진다는 견해였다. 이 설은 한반도 서북부 낙랑군과의 교역에 따른 영향을 받아 빨라도 기원 전후에나 삼한 소국의 기틀이 마련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6호분 요갱에서 나온 오수전과 묘실에서 추가확인된 구름무늬를 새긴 거울(성운경) 등은 모두 기원전 중국 전한시기의 연대를 대표하는 유물들이다. 이에 따라 무덤 연대를 기원전 1세기까지 올리게 되면 삼한 소국들의 등장과 존속 시기도 이른 시점까지 확장된다.

중국 사서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는 삼한시대 20여개 소국들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만, 기원후 3세기대의 문헌기록이다. 경산·영천 일대의 소국 압독국, 골벌국을 기록한 <삼국사기>의 경우도 3~4세기의 역사적 사실들을 다루는 데 그치고 있다. 반면, 요갱 출토품 연대는 문헌보다 훨씬 이른 기원전 시기 중국과 교역하면서 강력한 경제력과 정치체제를 갖춘 소국이 영남 일대에 번성했을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 압독국, 골벌국에 시기적으로 앞선 미지의 진한 소국들이 기원전과 기원 전후 건재했다는 결론에 이르는 셈이다. 앞으로 학계에서 삼한시대의 구체적인 연대 범위와 기존 문헌상의 소국들보다 앞서 융성한 기원전후 시기 소국들의 정체에 대해 좀더 깊은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양지리 6호분의 무덤 관 자리 바닥에 있는 요갱(흰줄 쳐진 사각형)의 발굴 당시 모습. 안에 옻칠된 창집들이 보인다.

요갱에서 발굴된 무기갖춤들은 현재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 처리 중이다. 6호분의 요갱 출토품들 사진과 지난해 11월 공개된 묘실 유물 등은 19일 국립대구박물관에서 개막하는 특별전 ‘금호강과 길’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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