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국민연금, '기업 때리기' 도구 되어선 안 된다
'재산권 보호' 흔들리면 경제활동 더 위축될 것
경찰, 검찰, 국세청, 관세청 등 권력 기관들이 모조리 달라붙은 '대한항공 때리기'에 국민연금까지 가세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30일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밀수, 관세 포탈, 재산 국외 도피 등에 대한 보도로 국민의 우려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며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의 2대 주주(12.45%)로서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주주권을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장 자격으로 한 발언이다. 박 장관이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이유로 내세운 것은 '수익률'이다. 그는 "국민의 소중한 자산을 안정적으로 지키고 국민연금의 장기 수익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국민이 십시일반(十匙一飯) 모은 노후자금을 굴리는 국민연금의 목표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수익률이어야 한다. 수익률이 약간만 달라져도 수십 년 후 국민이 받게 될 연금액, 젊은 세대가 내야 하는 부담액, 연금이 바닥나는 시기, 언젠가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규모 등이 죄다 달라진다.
박 장관 말대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장기 수익률 제고에 도움이 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정부가 국민연금을 앞세워 기업 길들이기에 나서는 것 아니냐"며 '다른 의도'를 의심하는 이유는 정부와 정치권이 그동안 보여온 행태 때문일 것이다.
일례로 국민연금 운용을 책임지는 기금운용본부장은 전(前) 정권 때 임명된 전임자가 정권 교체 후 돌연 물러난 후 10개월째 공석이다. 620조원이나 되는 기금이 선장(船長)도 없이 망망대해를 떠다니고 있는 셈이다. 국민연금이 올해 1분기 국내 주식투자에서 마이너스(-) 2%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올린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오죽했으면 정부가 선임한 국민연금 기금운용평가단마저 "기금운용본부장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는데도 현 체제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하다"고 했을까.
여당이 국민연금을 '주머니 속 쌈짓돈'처럼 취급해왔다는 점도 정부가 국민연금 수익률 제고에 의지가 있는지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번 총선에서 국민연금 기금 100조원을 공공주택 건설에 투자하는 방안을 '경제민주화 1호 공약'으로 내세웠었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국민연금 조직을 '수익성'보다는 '공공성' 중심으로 개편하려는 법안을 계속 제출해왔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재벌 총수 일가의 편법 지배를 막기 위해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대한항공 사태는 국민연금을 재벌 개혁의 지렛대로 삼으려는 정부 입장에선 호재(好材)로 보일 법도 하다. 하지만 일가(一家)의 도덕적 일탈 행위에 대한 문책과 기업의 경영권 침해를 혼동해선 안 된다. 이런 사유로 기업 경영권을 위협하면 자본주의 근간인 재산권이 훼손된다. 기업가들 사이에 재산권 보호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면 경제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수익률 외 '다른 의도'를 갖고 의결권을 행사하면 불행한 일이 생긴다는 것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에서 증명됐다. 삼성전자·현대차·네이버 등 현재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만 276개에 이르는 국민연금은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 나오는 절대 강자(强者) 타노스와 비슷한 존재다. 영화 속 타노스가 손가락을 한 번 튕겨서 온 우주의 절반을 사라지게 만들었듯, 국민연금의 행보는 산업 생태계와 개별 기업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국민연금이 '정권의 코드'에 맞추어 춤춰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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