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계리 폭파, 단지 '쇼'였을까? 핵과학자 해커 박사의 팩트체크

정인석 2018. 5. 31. 12: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지난 24일 진행한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 행사는 국내와 달리 외신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이를 둘러싼 논란은 국내외에서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행사가 끝난 지 몇 시간 뒤 전격적으로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해 빛이 바랜 데다, 북한 당국 역시 당초 약속을 어기고 전문가들의 초청을 거부해서 행사의 의미를 퇴색시켰기 때문이다.

풍계리 행사 이후 일각에서는 '제2의 냉각탑 폭파', '폭파 쇼'라는 혹평도 내놓았고, 상당수의 전문가 역시 공개된 영상만으로는 풍계리 핵실험장이 완전히 폐기됐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는 과연 '쇼'에 불과한 걸까?

미국 내 최고 핵과학자로 꼽히는 미국의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가 이를 둘러싼 논란을 팩트체크 형태로 분석한 글을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해 이를 소개한다.


팩트체크 ①: "풍계리 폭파는 중요한 비핵화 조치".. 미국의 거친 수사 통했다!

해커 박사는 먼저, 북한의 조치가 비록 불가역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비핵화로 가는 하나의 중요한 조치(serious step toward denuclearization)라고 긍정 평가하면서, 먼저 김정은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를 분석했다.

해커 박사는 그 선택의 이유 중 하나로 비핵화와 관련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거친 수사, 대북 압박을 들었다. 트럼프 정부가 줄곧 비핵화의 구체적인 조치(concrete steps)가 필요하다는 점과 그 조치가 초기에 이뤄지길 원한다는 점을 거듭 밝혀왔고, 북한이 이 요구를 수용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팩트체크 ②: 시진핑 주석, 풍계리 폭파 직접 요구했을 가능성 커

해커 박사는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가 최근 수년간 저점에 달했던 북·중 관계를 의식한 조치라는 분석도 함께 내놨다.

해커 박사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중국에 매우 심각한 위협을 주고 있다"는 중국인 동료들의 말을 인용한 뒤 "중국의 가장 큰 우려는 핵폭발이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불러오는 것이며 이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중국에 심각한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커 박사는 특히 풍계리 핵실험장과 인접한 지린성 등 북·중 접경 지역 언론들이 최근 방사능 오염 우려를 집중적으로 제기한 사실을 거론하면서, 시진핑 중국 주석이 최근 2차례의 북·중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이 문제를 주요 의제로 올렸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시진핑 주석이 방사능 오염 위험을 막기 위해 김정은 위원장에게 풍계리 핵실험장을 가능한 한 빨리, 영구적으로 폐쇄할 것을 주문했을 거라면서, 중국의 이런 우려에 민감하게 반응해온 북한이 이에 호응했을 개연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해커 박사는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행사 직후 "폭파로 인한 방사성 물질 누출 현상이 전혀 없었고 주위 환경에 어떤 부정적 영향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발표한 사실에 주목했다.


팩트체크 ③:핵무기 정보 유실? .."핵실험장 폐쇄 자체가 더 중요"

해커 박사는 북한이 핵실험장 폐쇄 행사에 전문가들을 초청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북한의 핵무기 관련 정보가 사라졌다는 전문가들의 지적과 관련해서도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해커 박사는 물론 북한이 외부 전문가들의 접근을 허용해 폭발 정도를 검증하도록 허용했다면 좋은 신뢰조성 조치가 됐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핵실험장이 폐쇄됐다는 사실(what is most important is that the test site is destroyed.)"이라고 지적했다.


팩트체크 ④:제2의 냉각탑 폭파 쇼? .."핵실험장 재건 시간·비용 훨씬 커"

해커 박사는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가 '2008년 영변 냉각탑 폭파 행사와 흡사한 언론 쇼'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런 비교는 적절치 않다고 일축하면서, 북한이 핵실험장 폐쇄 조치를 통해 핵실험 중단(모라토리엄)을 훨씬 뛰어넘는 조처를 했다는 긍정평가를 내놨다.(By closing the nuclear test site, Pyongyang took a step considerably beyond a nuclear testing moratorium)

해커 박사는 그 근거로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핵실험장은 영변 냉각탑보다 훨씬 중요한 시설이고 향후 북한이 새로운 터널을 만들어 핵실험장을 재건한다 하더라도 여기에는 훨씬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했다.
(The loss of the test site is a much greater one for North Korea than the cooling tower and would take much more time and money to reestablish.)


팩트체크 ⑤:"가까운 미래 북한 추가 핵실험 불가능하다"

해커 박사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의 가장 긍정적인 효과로 "북한이 최소한 가까운 미래에는 추가 핵실험을 할 수 없게 됐다(All of these various tests will now not take place, at least not in the immediate future)"는 점을 꼽았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록 북한의 핵 무력의 완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자신이 볼 때 핵탄두를 탑재한 북한의 미사일이 미국 본토까지 도달하기에는 북한이 아직 충분한 미사일 실험과 핵실험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해커 박사는 특히 북한이 핵무기의 정교성과 안전성, 다양성을 증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핵실험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팩트체크 ⑥: 쓸모없게 된 터널 폭파했다?→"2개의 터널 핵실험 가능 증거 있다"

해커 박사는 북한이 지난해 9월 6차 핵실험으로 핵실험장이 이미 무용지물이 됐고, 이 때문에 이번 조치는 큰 양보가 아니라는 지적과 관련해서도 반박하는 견해를 내놨다.

해커 박사는 당시 대규모 폭발로 풍계리 핵실험장의 터널이 심한 손상을 입은 것은 맞지만, 같은 규모의 다른 두 개의 터널은 여전히 핵실험이 가능한 상황이라는 증거가 있다고 반박했다.

해커 박사는 현재 미 스탠퍼드 대학의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공동 소장을 맡고 있으며, 1986년부터 97년까지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 국립 로스 알라모스 핵 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해커 박사는 지금까지 모두 7차례 방북해 북한의 핵시설을 둘러본 경험이 있고, 특히 2010년 10월엔 북한 당국의 초청을 받아 미국 과학자로는 유일하게 원심분리기 1천여 개를 갖춘 영변의 대규모 농축우라늄 시설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정인석기자 (isjeong@kbs.co.kr)

Copyright © K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