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는 게 상책"..경비원, 본인 경비는 속수무책

김영상 기자 2018. 5. 3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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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경비아저씨들, 험한 꼴 당해도 그저 참고 피할뿐.."제도와 인식, 동시에 바꿔야"
/삽화=임종철 디자인 기자


서울 관악구 한 상가건물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우모씨(69)는 지난해 3월만 생각하면 아직도 끔찍하다. 3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열흘 동안 건물 안에서 소리를 지르고 다른 사람을 위협하는 등 행패를 부린 것이다. 참다못한 우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에 "제발 다시 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남성은 몇 시간 후 다시 건물에 찾아오더니 다짜고짜 우씨에게 주먹을 날렸다. 머리 쪽을 주먹으로 두 대 맞은 후 우씨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벗어났다. 폭행을 당했지만 문제를 만들기 싫어서 참았다. 우씨는 "그 이후 건물 안을 지나는 사람들을 보면 한동안 불안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안전을 지키는 건물 경비원이 정작 자신의 안전에는 무방비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서울 강남 한 오피스텔에서 경비원 2명이 살해당하며 경비원의 안전을 향한 관심이 커졌지만 마땅한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3년 전 서울 강남 유흥가의 한 오피스텔에서 일하던 경비원 정모씨(73)는 술에 취한 사람들을 자주 상대했다. 정씨는 "한 번은 자정 이후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시간에 한 젊은 남성에게 나가달라고 요청했는데 그 남성이 다짜고짜 욕을 했다"며 "출입문을 흔들면서 계속 난동을 부렸지만 혹시 시비가 붙으면 내 손해라는 생각 뿐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정씨는 그 남성을 내보냈지만 당시 혼자 건물을 지키던 터라 혹시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밤새 두려움에 떨었다.

상당수 경비원은 나이가 많아 안전 문제에 더 취약하다. 고령사회고용진흥원에 따르면 전체 경비원 중 60대 이상이 47.9%(2014년 기준)를 차지했다. 실제 폭행을 당한 적이 있는 경비원도 적지 않았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는 경비원 중 5%가 신체적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6년 이상 근무한 경비원으로 범위를 좁히면 11.9%로 올라갔다. 3명 중 1명은 언어폭력·정신적 가혹행위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경비원들은 "위험한 상황을 대비한 대책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대부분 용역업체 소속으로 고용이 불안정한 경우가 많아 문제를 일으키는 걸 꺼려 한다. 본인의 안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도 어려운 이유다.

정우일 울산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비원들은 혹시 계약 연장에 실패하는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3년 차 경비원 마모씨(73)도 "화가 나는 일을 많이 당하지만 문제를 키울 바에는 차라리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했다.

야간에 혼자 일하는 많은 경비원들이 제대로 된 보호 장비도 갖추지 못한 점도 개선해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경비업법에 따르면 경비원이 근무 중 경적·단봉 등을 휴대할 수 있지만 실제로 지켜지는 경우는 드물다. 강제조항이 아닌 탓에 업체에서 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장비를 제공하지 않아도 제재를 받지 않는다.

3년차 경비원 신모씨(65)는 "업체에서 따로 경비봉을 지급해주지 않는데 그렇다고 내 돈으로 사기는 부담스럽다"며 "편의점에서 사용하는 것처럼 근처 경찰서에 바로 연락할 수 있는 벨이라도 설치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비원의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와 인식의 변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다. 한국경비협회 관계자는 "경비원이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공익적인 일을 하는데도 이들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있지 않다"며 "경비원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는 더 강력하게 처벌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우일 교수는 "기본적으로 경비원을 본인보다 낮은 사람으로 보는 왜곡된 시민의식이 문제"라며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갑질' 문화를 개선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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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상 기자 vide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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