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초 천지' 서울 거리 .. 시민 의식도 쓰레기통도 없다

임선영 2018. 5. 3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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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150억 개비 중 3분의 2가 거리에”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젊음의 거리에 있는 한 건물 앞에서 시민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임선영 기자
지난 29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종각 젊음의 거리는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학생들로 북적였다. 두 건물 벽면 사이의 한 좁은 골목길에는 입에 담배를 문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휙~’ 한 남성이 다 피운 담배꽁초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이 꽁초는 다른 사람들이 이미 버리고 간 꽁초 30여 개 옆으로 떨어졌다. 또 다른 남성은 자신의 가슴 높이에 설치된 환풍기 윗면에 비벼 끈 꽁초를 그대로 두고 떠났다. 이 골목길에서 약 5m 떨어진 건물 앞은 20분 동안 흡연자 40여 명이 다녀갔다. 이들이 머물다 간 자리엔 40여 개의 담배꽁초가 남았다. ‘금연구역’ 스티커가 붙은 한 골목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바닥에 갈라진 틈 사이까지 꽁초들이 수두룩했다.
흡연자들이 떠난 종로구의 한 건물 앞에 담배꽁초들이 흩어져있다. 임선영 기자
종로구 환경미화원 김모(50)씨는 “하루에 서너 번 치워도 흡연자들이 몰리는 곳은 올 때마다 (담배꽁초로) 바닥이 하얗다. 종각 일대에서만 하루에 1000개비는 넘게 치우는 것 같다”면서 “쓸고 있는데 버젓이 꽁초를 버리고 갈 때 가장 속상하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젊음의 거리 한 골목길에 버려진 담배꽁초들. 한 흡연자가 담뱃재를 털고 있다. 임선영 기자
“숨은 흡연자가 도시 풍경 파괴”

‘꽁초 천지’가 된 서울의 거리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담배꽁초 무단투기 단속 건수는 2015년 6만5870건, 2016년 6만8619건, 2017년 7만2789건으로 증가했다. 정확한 통계수치는 없지만, 실제로 거리에 버려지는 꽁초 개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담배 판매량은 2017년 한해 34억4000만갑이었다(기획재정부). 하루 평균 942만갑(1억 8800만 개비 추산)에 이른다.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금연의 날(5월 31일)을 맞아 ‘담배와 담배가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펴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담배는 세계에서 매일 150억 개비가 팔리는데, 이 중 3분의 2가 땅바닥에 버려진다. 이성규 국가금연지원센터장은 “골목길 등지의 ‘숨은 흡연자’들이 뒤처리마저 책임지지 않으면서 도시의 풍경을 파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서울 종로구 곳곳에서 발견된 담배꽁초들. 윗줄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빗물받이, 벽면의 틈, 골목길 구석, 환풍기와 나무 바닥 사이에 담배꽁초들이 버려져있다. 임선영 기자
자치구 단속원 부족해 하루 단속 ‘제로’도
폐기물관리법상 담배꽁초 무단투기는 5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단속·수거 모두 지방자치단체나 자치구의 몫이다. 서울의 경우 일반적으로 각 자치구에서 단속반을 운영한다. 단속반은 자치구마다 2~10명 정도의 공무원, 임기제 공무원, 기간제 근로자 등으로 구성된다. 2인 1조로 활동하면서 대부분 일반 쓰레기 무단투기도 함께 적발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지난 28일 종로구 젊음의 거리에선 종로구청 소속 단속원 2명이 ‘잠복근무’ 중이었다. 두 단속원은 흡연자들로부터 2m쯤 떨어진 곳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남성이 꽁초를 바닥에 버리자 쫓아가 “담배꽁초를 무단투기해 과태료를 내야 한다”고 알렸다. “왜 나만 잡느냐”고 저항하던 이 남성은 결국 과태료 확인서에 서명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단속원 총 10명이 2인 1조로 주중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종로구 전역을 돌아다녀 하루에 40명 안팎을 적발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버려지는 담배꽁초에 비해 단속원 인원이 부족하다 보니 하루에 한 건도 단속하지 못하는 자치구들도 있다.

흡연실은 금연 구역의 2.4% … “버릴 데가 없다”

흡연자들은 반대로 “피울 곳도 버릴 곳도 없다”고 불만이다. 서울의 실내·외 금연 구역은 26만5113곳에 이른다. 이중 자치구에서 지정하는 실외 금연 구역은 1만9201곳(7.2%)이다. 반면 서울의 음식점·카페·사무실 등에 있는 실내 흡연실은 6293곳이다. 또 실외 흡연실(개방형·폐쇄형 포함)은 59곳에 불과하다.

흡연자 유재혁(25·직장인)씨는 “금연 구역이 늘어나 흡연자들이 담배를 숨어서 피면서 꽁초를 마구 버리는 것 아니냐”면서 “금연 구역이 아닌 곳엔 쓰레기통을 두거나 흡연실을 늘려달라”고 말했다. 서울의 쓰레기통은 1995년 약 7600개에서 현재 약 5900개(지난해 기준)로 줄었다.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되면서 무단투기를 예방한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시는 올 안에 쓰레기통 300개를 늘릴 예정이지만, 대부분 대로변·버스정류장 등에 설치한다. 서울시 도시청결팀 관계자는 “흡연 다발 지역에 쓰레기통을 두는 건 흡연을 부추기는 꼴이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 주택가의 한 골목길은 금연구역이지만, 담배꽁초 수십 개가 버려져있다. 임선영 기자
담배 안 7000종 유독물질이 공기·수질 오염
하지만 담배꽁초는 환경에도 해롭다. WHO에 따르면 담배에는 발암물질을 포함해 7000여 종의 유독한 화학물질이 있다. 신호상 공주대 사범대 환경교육과 교수는 “담배꽁초에 묻어있는 유해 성분들이 공기 중에 휘발되면, 우리는 오염된 공기를 마시게 된다”면서 “담배꽁초가 빗물에라도 쓸려 가면 물을 오염시켜 생태계를 파괴하고, 결국 사람의 몸에도 이 물질이 쌓이게 된다”고 말했다. 사회적인 비용 손실도 크다. 서울시에선 지난해 담배꽁초 등으로 더럽혀진 서울의 빗물받이 약 47만개를 청소하는데 약 80억원을 썼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담배꽁초 때문에 발생한 화재는 매년 6000건을 훌쩍 넘는다.
서울 종로구의 한 골목길에서 시민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임선영 기자
“담배 폐기물부담금을 꽁초 수거·단속에”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흡연자가 담배꽁초를 책임감 있게 처리하는 의식 개선이 시급하다.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교육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금연 구역이 아닌 곳에는 쓰레기통을 두거나 흡연 공간을 확보해 꽁초 처리시설을 갖추는 식으로 현실적인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담배꽁초를 수거·단속하는데 재원과 인력을 더 투입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에선 2017년 한해 약 895억원의 담배 폐기물부담금(한갑에 24.4원)을 거둬들였다. 이 돈은 환경부의 환경개선특별회계로 편입돼 쓰인다. 지자체·자치구가 담배꽁초를 수거·단속하는데 지원되지 않는다. 이성규 센터장은 “담배 ‘폐기물부담금’이란 목적에 걸맞게 이 돈이 담배꽁초를 버리는 시설을 만들고, 수거·단속하는데 직접 사용될 필요성도 있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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