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돌아갔다가 U턴하는 이민 1.5세대들

주호석 2018. 5. 3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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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주호석의 이민스토리(14)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를 따라 이민 와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로 살아가는 세대를 이민 1.5세대라고 부른다. [중앙포토]

올해 27살인 A 씨는 한국의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을 따라 캐나다에 이민 왔습니다. 캐나다 교육시스템으론 ‘세콘더리 스쿨(Secondary School,중·고등학교) 8학년이었습니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순전히 부모의 뜻과 계획에 따라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낯선 나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외국 여행을 해본 적이 없는 A 씨는 한국과 전혀 다른 캐나다 학교생활이 처음엔 두렵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한국의 학교보다 더 재미있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성적에 대한 중압감에서 벗어나고 하기 싫은 과외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게 좋았습니다.

학교생활이든 학교 외 생활이든 자신에게 자유가 주어져 있다는 사실에 캐나다라는 나라가 무척 매력 있는 곳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캐나다에서 직업을 구하고 캐네디언으로 살아가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영어 콤플렉스로 한국 학생들 하고만 어울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당초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이 하나둘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영어가 완벽해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캐나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에세이 쓰는 숙제를 많이 내주는데 가뜩이나 글쓰기가 어려운 데다 영어 능력이 따라주지 못해 에세이 점수가 늘 평균 이하밖에 안 됐습니다. 그로 인해 생긴 영어 콤플렉스 때문에 캐네디언 아이들하고 어울리는 것도 꺼려져 친구라야 한국 아이 몇 명밖에 사귀질 못했습니다.

영어 능력이 따라주지 못해 항상 평균 이하의 성적을 받게되었고, 그로 인해 생긴 영어 콤플렉스 때문에 한국인 친구들 하고만 어울리게 된 A씨. [중앙포토]

또 생계를 위해 무척 힘든 일을 하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편치가 않아 한국식당에서 아르바이트로 식기 닦는 일을 해 용돈을 벌어 쓰기도 했습니다. 고생하시는 부모님이 외아들인 자기한테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일에 지쳐 피곤한 부모님이 가끔 하는 말이 ‘좋은 대학 가서 나중에 돈 많이 벌어야 한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소위 좋은 대학 중 한 곳에 진학했지만 졸업하기까지 7년이나 걸렸습니다. 캐나다 대학은 공부를 무지막지하게 시키기 때문에 입학은 쉬워도 졸업은 무척 어렵습니다. 거기다 영어 능력이 부족해 성적이 나오질 않아 재수강을 밥 먹듯 해야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졸업은 했는데 그다음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취직을 위해 몇 군데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직장을 구하는 데 번번이 실패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인터뷰할 때마다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마음속에 ‘과연 내가 캐나다 회사에서 캐네디언들과 어울려 일을 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과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직 실패하자 한국으로 돌아가 임시 영어 강사
구직에 몇 차례 실패한 뒤 고민 끝에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어쩐지 한국이 정서적으로 더 잘 맞는 것 같고 캐나다에서는 부족한 수준의 영어지만 그 영어를 한국에 가면 써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임시로 한국의 수도권에 있는 어느 영어학원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면서 안정된 직업을 찾고 있는데, 장래가 불안하고 불투명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도 어려운 데다 한국정부가 병역을 미필하고 외국 시민권자가 된 남자가 한국에 돌아가 취업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시행했기 때문입니다.

구직에 몇 차례 실패한 뒤 고민 끝에 한국으로 돌아와 수도권에 있는 어느 영어학원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사진 freepik]

A 씨처럼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를 따라 이민 와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로 살아가는 세대를 이민 1.5세대라고 부릅니다. 이민 와 잘 안 풀린 1.5세대는 부모한테 억지로 끌려온 세대라고 자신을 비하해 부르기도 하지요.

이들 이민 1.5세대 가운데 교육환경이 한국과 다른 캐나다에 오자마자 물 만난 물고기처럼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아이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원래 타고난 능력이 있지만, 한국식 교육시스템에 체질적으로 안 맞는 아이들이 대개 그런 모습을 보이지요.

그런데 그렇지 못한 1.5세대들, 즉 학교생활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대학까지 마치고서도 캐나다 사회에 진출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위에 예를 든 A 씨도 이민 와서 캐나다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축에 들어갑니다. 이민 초기에 가졌던 꿈을 이루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가 장래가 매우 불안하고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A 씨와 비슷한 과정을 밟는 1.5세대가 의외로 많습니다. 물론 이민 와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직업을 구하는 것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한국 정서가 더 잘 맞고 한국에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만 있다면 굳이 캐나다에서 살아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영주권자 또는 시민권자로 캐나다에서 살고 싶은데 영어 능력이나 직장문화 등 이런저런 이유로 할 수 없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안타깝습니다.

또 캐나다에서 적응하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가 직장을 잡은 아이 중에는 한국의 직장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유턴해 캐나다로 돌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캐나다에서 학교생활 하는 동안 익숙해진 서양식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이 한국의 그것들과 너무나 다르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캐나다에 제대로 적응할 수 없어 한국에 돌아갔는데 거기서도 적응하기 어려워 다시 돌아오는 것이지요.


한국에서 다시 유턴하는 이민 1.5세대의 공통점
대부분의 이민 1.5세대 아이들은 영어, 교우관계, 이성 교제 등에 있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중앙포토]

이민 1.5세대 아이가 그런 상황에 부닥치는 데는 몇 가지 공통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입니다. 학교 다니는 시절부터 영어권 아이와 어울리지 못하거나 안 하는 경우입니다. 그렇게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우선 영어 능력이 뒤처지기 쉽고 캐네디언 생활문화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 졸업 후 직장을 구해도 적응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또 하나는 부모가 가진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이민 1세대는 생계문제 때문에 고생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 다니는 자식한테 세심하게 관심을 가져주기가 쉽지 않지요. 한국 같으면 담임선생을 찾아가서 상담도 하고 과외 학원을 수소문해 아이를 데려가기도 하지만 이민자 부모들 대부분은 그럴 형편이 못됩니다. 그저 ‘자기가 알아서 잘하겠지’ 정도에 그치고는 합니다.

대부분의 1.5세대 아이들이 특히 이민 초기에 많은 고민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우선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교우관계나 이성 교제 등에 있어서도 고민하는 아이가 많습니다. 심지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마초에 빠져드는 아이도 종종 있습니다.


김치와 버터를 동시에 먹고 사는 아이들
이민 1.5세대들 가운데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아이도 적지 않습니다. 자신이 한국 사람인지 캐네디언인지에 대한 고민과 갈등입니다. 말하자면 김치와 버터를 동시에 먹고 살아가는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밖에 나가면 서양문화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에 들어오면 부모와 함께 한국식 생활방식에 의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민생활이 힘들고 고달프기는 하지만 가끔이라도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학생 상담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그리고 이민 1세대가 영어권 사람과 교류를 하고 어울리려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먹고 사는 일이 녹록지 않고 영어도 짧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지만 1세대를 따라온 1.5세대 자식을 위해서라도 그런 마음가짐과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주호석 밴쿠버 중앙일보 편집위원 genman2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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