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201만원 기대했던 청소노동자, 194만원에 그친대요

2018. 5. 3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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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
내년부터 최저임금 범위에
정기상여금·복리후생비 포함
노동자들 임금 전반에 큰 영향
연 2500만원 이하 노동자 중
21만6천명 기대이익 줄어들 수도

[한겨레]

최저임금법을 놓고 지난 25일 오후 국회에서 본회의가 열려, 최저임금연대·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민중공동행동 등이 '개악 최저임금법 폐기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사용자의 이윤보장을 위해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고 노동자 동의 없이 사용자가 임금삭감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법을 개악시켰다고 주장하며, 국회에 '개정 최저임금법 폐기'와 '최저임금제도 개선 위한 최저임금위원회 협의 보장' 등을 촉구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29일 정부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연 소득 2500만원 이하 저임금 노동자 가운데 최대 21만6천명의 기대이익이 줄어들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법정 최저임금이 올라도 21만명이 넘는 저임금 노동자는 그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지난 28일 국회를 통과한 최저임금법 개정안 내용처럼, 내년부터 최저임금의 25%를 초과하는 정기 상여금과 7% 넘는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의 일부’로 여길 때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정부 발표에 앞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여야는 “산입범위를 넓혀도 연봉 2500만원 이하 노동자한테는 영향이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제 정부가 ‘최대 21만6천명’이라는 구체적 수치까지 제시한 만큼, 산입범위 확대가 저임금 노동자한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주장은 잦아들 것으로 보입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바쁜 노동자한테는 여전히 궁금증이 남지요. 누가 21만6천명에 포함되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더친기’가 준비했습니다. 바뀐 최저임금 제도가 내년 노동자 ‘월급봉투’(실제로는 급여계좌)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요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초단기 완성! 최저임금법 개정안의 이해’ 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기본급에 복리후생비 찔끔 받는 청소노동자 기본급 157만원에 식비 13만원, 교통비 7만원을 받는 청소노동자 ㄱ씨의 ‘월급 명세서’가 있습니다. ㄱ씨의 한달 월급은 177만원, 연 소득은 2124만원입니다. 애초 여야는 최저임금법 개정을 밀어붙이며 “2500만원 이하의 저임금 노동자가 최저임금 인상의 수혜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했다”고 밝혔으니, ㄱ씨는 ‘보호 대상’이라야 맞습니다.

최저임금 제도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이 15% 올랐다면, ㄱ씨의 월급은 201만원까지 올랐을 겁니다. 그런데 최저임금법이 바뀐 탓에 ㄱ씨의 내년 월급은 194만원에 그칠 가능성이 큽니다. 식비와 교통비, 곧 ㄱ씨의 전체 복리후생비 20만원 가운데 7만원이 내년부터 ‘최저임금의 일부’에 포함된 결과입니다.

올해까지만 해도 식비와 교통비, 숙박비는 얼마를 받든 ‘최저임금과 별도’였습니다. 최저임금 제도가 바뀌면서, 앞으로는 월급으로 환산한 최저임금의 7%가 넘는 복리후생비는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들어갑니다. ㄱ씨의 내년 월급에서는 그렇게 7만원이 ‘증발’합니다. 정부가 밝힌 것처럼 산입범위 확대로 기대이익이 줄어드는 21만6천명 가운데 한명이 ㄱ씨입니다.

연소득 2400만원 찔끔 넘는 사무노동자 국회는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둘 다 받는 저임금 노동자를 상정하고 법안을 설계했습니다. 그렇다면 최저임금에 꼭 맞춘 기본급 138만원과 직무수당 20만원, 그리고 상여금 40만2500원, 복리후생비 15만원을 받고 있는 사무노동자 ㄴ씨는 어떨까요? 월평균 213만원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 ㄴ씨의 내년 임금 인상 전망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입니다.

ㄴ씨는 원래대로라면 최저임금 15%가 올라 월급이 243만원까지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새로운 최저임금법은 ㄴ씨가 기대한 임금인상분 가운데 4만원 정도를 가져갈지도 모릅니다. 인상된 상여금 47만원 가운데 2만원, 복리후생비 15만원 가운데 2만원이 최저임금에 산입되기 때문입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ㄴ씨의 임금이 조금씩 늘어나겠지만, 바뀐 최저임금법이 그 인상 효과를 줄이는 거지요.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체계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상여금은 명절에 받는 50만원이 고작이지만 복리후생비가 상대적으로 높아 월급 200만원을 겨우 채우는 사람도 있고요. 노동조합이 교섭을 통해 상여금을 연 400%까지 끌어올렸지만 회사에서 식사와 통근버스를 제공해서 복리후생비가 따로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상공인 살림살이 나아질까? 국회와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법 개정 이유 가운데 하나를 “소상공인 부담 완화”에서 찾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가 이들 영세자영업자의 삶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운영하는 ㅇ씨는 아르바이트 노동자 3명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ㅇ씨는 이들에게 딱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기본급 157만원)을 줍니다. 여기에 한달 식비 명목으로 10만원을 보태주고요. 4대 보험에 드는 비용을 빼면, ㅇ씨가 아르바이트 노동자 한명에게 쓰는 인건비는 연 2004만원(월 167만원)입니다.

정부와 여야가 ‘소상공인 부담’을 덜겠다며 많은 논란을 딛고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넓혔는데요, 정작 ㅇ씨한테는 이득이 거의 없습니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15% 남짓 오른다고 가정했을 때, ㅇ씨는 ‘알바’ 노동자한테 지금보다 24만원 정도 오른 약 191만원의 월급을 줘야 합니다. 최저임금의 7%가 넘지 않는 복리후생비는 여전히 산입범위에서 빠지기 때문입니다.

소상공인 쪽에서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에 불만을 갖는 이유는 이겁니다. 앞으로 5년 뒤면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모두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되겠지만, 그 전까지는 ㅇ씨의 어려운 사정이 달라지기 어렵죠.

소상공인이 직면한 ‘손익구조’ 악화 문제는 꼭 인건비 탓만은 아닙니다. ‘동네 치킨집 사장님’ 등 소상공인의 손익계산서를 살펴보면, 매년 가파르게 치솟는 상가 임대료나 높은 신용카드 수수료가 이들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프랜차이즈 본사에 내야 하는 로열티도 부담스럽지요. 프랜차이즈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넓혀 이들의 부담을 던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대기업 노동자도 최저임금 대상이라던데? 물론 최저임금 산입범위는 정리가 필요했던 문제이기는 합니다. 기본급이나 다름없는 정기 상여금마저 산입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불합리한 일’이 생기곤 했기 때문입니다.

대기업 사무직 노동자 ㄷ씨의 월급명세서를 보세요. 대기업 신입사원인 ㄷ씨는 연봉이 4155만원에 이르지만 기본급은 170만원밖에 안 됩니다. 상여금 연 750%에 지금의 임금 구성을 그대로 둔 채 내년 최저임금이 15% 오른다면 ㄷ씨는 ‘최저임금 미달’이 됩니다. 최저임금에 맞춰 기본급을 올리면 연봉은 무려 4370만원으로 오릅니다. 개정된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ㄷ씨의 회사는 별다른 조처 없이도 복리후생비가 산입범위에 들어가서 최저임금 월급보다 46만원이나 더 주는 것이 됩니다. 연 4천만원을 주고도 최저임금법을 위반할 걱정은 더이상 안 해도 됩니다.

기본급에 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덧붙여 완성되는 한국 특유 임금체계가 오랜 시간 곪아 지금의 사태를 만들었습니다. 어떤 문제든 개혁할 때는 피해자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피해자가 저소득층에 몰려 있다면 이 역시 큰 문제가 될 겁니다. 정치권과 노사가 힘을 모아 위기에 내몰린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지원 대책을 마련할 때입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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