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대한 긍정의 힘

2018. 5. 2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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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몸 긍정주의’는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니다. 많은 여성이 이제 깡마른, 완벽한 비율의 몸만 추구의 대상이 아님을 안다. 우리는 그 새로운 ‘미’의 기준이 옳은 진화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드러낸 셀룰라이트는 당당해서 아름답지만, 내 몸에 있는 건 보기 싫다고? 이중 잣대를 거두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싶은 이라면 주목하자. 코스모가 당신의 몸에 진짜 자유를 주는 길을 안내한다.

‘완벽한 몸’이라는 허상에 갇히지 말자. 미의 기준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어야 하며 인종, 체형에 상관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돌보고 사랑할 줄 아는 자세에  답이 있다.  

네 몸을 네 원수와 같이 미워하는가?   고백하건대, 살면서 단 한 번도 내 몸을 사랑한 적이 없다. ‘보디 이미지’를 주제로 꽤 많은 기사를 쓰고, 자기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건강한 여성들을 수차례 독대하며 그들의 ‘깨달음’을 들었음에도 말이다. 독자들에게 “다양한 몸의 형태를 인정하고, 자신의 몸을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하라”는 자기 몸 긍정주의를 설파하면서 뒤돌아선 내 허벅지 뒤의 셀룰라이트를 비난하지 않은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170cm에 51kg이었던 시절(머나먼 옛날)에도 나는 찰떡같이 탄탄하게 올라붙지 않은 엉덩이를, 케이트 업톤처럼 탐스러운 자몽 같지 않은 가슴을, 드넓은 얼굴 면적을 원망했었다. 엄격한 자기 관리와 완벽한 외모가 자원인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면서 왜 그리 내 몸에 까다롭고 가혹한 잣대를 들이댔을까? BBC 코리아가 제작한 <빅사이즈 친구들>에서 보디 포지티브 액티비스트로 소개된 박지원(@3xl_joy)도 처음부터 남달랐던 건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저는 ‘보디 포지티브’는커녕, ‘보디 네거티브’ 그 자체였어요. 그때 몸무게가 오히려 지금보다 20kg 정도 덜 나가는 80kg대였는데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저 자신을 혐오했죠. ‘나라는 인간은 기준 이하다,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존재다, 운동과 식단 조절로 지금 상태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박지원을 변화시킨 건 SNS에서 접한 보디 액티비스트의 사진이다. “보디 포지티브를 말할 때마다 등장하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 역시 허리는 가늘고 가슴과 엉덩이는 큰 몸이잖아요. 그건 또 다른 미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 같아 와닿지 않았죠. 그러다가 튼 살의 결을 따라 글리터로 치장해 보디 아트 워크를 보여주는 콜라주 아티스트 사라 샤킬(@sarashakeel)의 사진을 발견했는데, 왠지 마음이 열리더라고요. 이런 사람들은 자기 몸이 건강하거나, 완벽하거나, 예뻐서 올린 게 아니에요. 미디어가 내세우는 44·55 사이즈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그걸 스스로 이해하면서 자연스럽게 ‘지금 이대로 살아도 괜찮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저와 같은 고통을 느끼는 이들에게 내가 경험한 것을 공유하고 싶었고요. SNS 계정을 만들고, 내 몸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주는 보디 액티비스트 활동을 시작한 이유죠.”내 몸을 내 원수와 같이 미워했던 이들이여, 이제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가? 

당신과 연대하는 선구자들미국에서 시작된 ‘자기 몸 긍정주의’는 우리나라에도 출간된 <시사 상식 사전>에도 등장할 정도로 큰 파급력을 발휘했다. 요는 이렇다. ‘몸무게, 체형과 관계없이 자신의 몸 자체를 사랑하는 것.’ 몸과 아름다움을 새롭게 정의하는 이 운동이 관념뿐인 신조어에 그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패션업계에 그 공이 있다. 미국의 속옷 브랜드 에어리는 어떤 보정도 거치지 않은 모델의 사진을 그대로 쓰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CEO 제니퍼 포일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보정을 거친 왜곡된 이미지가 아닌 진짜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싶었다”라고 그 의도를 전했다. 군살과 셀룰라이트, 울퉁불퉁한 보디라인을 가진 모델들의 ‘생몸’을 그대로 접하면서 사람들은 충격 대신 ‘이런 형태를 가진 몸이 숨겨야 할 대상이거나, 죄악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해 에어리의 매출은 20% 이상 증가했다. 2016년 9월, 나이키가 플러스 사이즈 모델 팔로마 엘세서, 요가 강사 클레어 파운틴을 모델로 발탁해 큰 호응을 얻은 후 다른 패션 기업에서도 이 흐름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패션 브랜드 아소스는 더 이상 모델의 튼 살을 포토샵으로 지우지 않는다. 미국의 란제리 브랜드 레인 브라이언트는 ‘I am not angel’ 캠페인(#Imnoangel)을 통해 빅토리아 시크릿 ‘에인절’(우리 모두를 죄의식에 빠뜨린, 지구에서 가장 예쁘다고 여겨지는 몸)을 정면으로 비튼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비롯해 우리가 수영장과 대중목욕탕에서 흔히 보는 ‘일반인의 몸’을 가진 레인 브라이언트 모델들의 사진은 SNS에서 130억 이상의 뷰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에도 지난해부터 ‘자기 몸 긍정주의’를 주창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여성환경연대는 지난해 ‘문제는 마네킹이야’ 프로젝트를 통해 표준 체형과 차이를 보이는 획일적인 마네킹이 문제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다양한 사이즈를 갖추지 않은 의류 브랜드의 실태를 조사·발표했다. 국내 속옷 브랜드 비비안은 ‘헬로 마이 핏(Hello, My Fit)’ 캠페인에 자사의 속옷을 착용한 다양한 몸매의 모델들을 등장시켜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에게서 당당하게 아름다움을 찾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실질적인 변화로 연결되기도 한다. 비비안이 2017년 말에 ‘속옷을 고르는 조건’이라는 주제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50%의 여성이 ‘착용감’, 37%의 여성이 ‘자유롭고 편한 활동감’이라는 응답을 내놓았다. 그간 중요하게 여겼던 ‘볼륨감’은 더 이상 첫번째 기준이 아니다. 자기 몸 긍정주의 확산의 본거지는 SNS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 최초로 미국의 스포츠 격주간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수영복 특집호 표지 모델로 등장한 애슐리 그레이엄은 두꺼운 허벅지가 생명을 구한다는 뜻의 #thickthighsaveslives 캠페인을 펼치며 ‘보디 포지티브’의 첫 물꼬를 텄다. 그녀는 “사이즈와 형태가 어떻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라 권리다”라는 말로 ‘자기 몸 부정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몸의 40%가 3도 화상을 입는 사고를 당한 보디 액티비스트 줄리(@douzefevrier)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사람들의 격려와 연대 속에서 콤플렉스를 극복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자 여성 건강 리얼리티 프로그램 <보디 액츄얼리>에 출연한 김지양 역시 “나와 관련한 기사가 뜨거나 이름이 조금씩 더 알려질 때마다 SNS 계정과 기사 아래 달리는 극렬한 악플에 시달렸어요. 그때마다 질세라, 억울할세라 댓글로 함께 싸워준 자매와 형제들의 연대가 큰 힘이 됐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라는 말을 절감할 수 있었죠”라고 말한다. 더 많은, 더 용감한 몸의 혁명가들이 궁금한가? 인스타그램에 #bodypositive를 검색해보자. 타임라인에서 발견되는 셀룰라이트, 흉터, 흰머리, 튼 살, 털 같은 이미지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미의 기준’을 유쾌하게 흔들어놓는다. 

자기 몸을 긍정하는 다양한 방법  몸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은 ‘뚱뚱한 몸’에 한정되지 않는다. 인종과 나이, 신체 능력, 다양한 몸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보정 속옷에 구속된 몸을 자유롭게 하는 ‘탈코르셋’, 노 메이크업은 예의가 아니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자신의 민낯을 그대로 공개하는 ‘파운데이션 프리’, 겨드랑이와 다리의 털을 제모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도 자신의 몸을 긍정하는 또 다른 방법. 실제로 SNS에서는 자신의 화장품을 깨뜨리는 영상을 올리거나, 민소매와 짧은 바지를 입고 털이 듬성듬성한 몸을 드러낸 여성들의 당당한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내 몸이 아름다워 보이진 않는다고? 미국의 보디 포지티브 캠페인 브랜드를 론칭한 디자이너 멜로리 던의 말에 귀 기울이자. “일 년 365일 자기 자신을 아름답고 대단한 존재라고 느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불가능한 미적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는다는 거지, 자신의 외모에 대해 무조건 경탄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죠. 소파에 앉아 하루 종일 정크 푸드를 먹으며 자기를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아니고요.” 김지양은 자신을 부정하거나 혐오하게 만드는 환경과 주변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귀띔한다. “사람들이 외모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데 실패하는 이유는 나약하거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거나, 마음을 변화시키는 기술 같은 걸 몰라서가 아니에요. 주변에서 자신을 혐오하게 하는 말을 많이 듣거나 그런 시선을 느끼기 때문이죠. 집에서는 엄마가 ‘살 안 빼니?’라고 묻고, 애인은 ‘자기는 조금만 빼면 완벽해’라고 구슬리고, 직장에서는 ‘왜 화장을 안 해요?’ 묻는데 어떻게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겠어요? 나를 혐오하는 시선을 인지하고, 여기에서 멀어지는 것이 먼저입니다.”박지원은 ‘기준’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꾸라고 조언한다. “10~11세기 전 예술 작품 속엔 100kg은 족히 넘어 보이는 ‘통통한’ 비너스, 배에 최소한 3줄 정도의 ‘지방층’이 접힌 여인들이 등장해요. 당시엔 그런 몸이 ‘미의 기준’이었기 때문이죠. 세기마다 바뀌는 미의 기준에 내 몸을 구겨 넣고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에요.” 그녀의 말처럼 2018년 ‘미’의 기준은 이성의 시선을 끄는 몸을 가진 사람, 미디어가 제시한 기준에 부합하는 몸의 형태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긍정할 줄 아는 능력 아닐까?

프리랜스 에디터 유진 사진 Allie Hollo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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