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애 낳으면 원래 그래" 방치되는 산후우울증

최용준 2018. 5. 2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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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우울증 대다수 산모 겪지만 인식 부족
-정신병으로 발전해 영아살해, 자살로 이어지기도
-흔한 질환이지만 정부 복지서비스 포괄적이지 않아 
/사진=연합뉴스

“왜 아이를 낳았을까.”
둘째 아들을 낳고 휴직한 직장인 김모씨(35·여)는 활달한 성격이었지만 출산 3개월부터 갑자기 손발이 덜덜 떨렸다. ‘아들이 둘 있어서 힘들다’고 꾹 참았지만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날이 늘었다. 하루 종일 아이와 지내면서 몸과 마음이 지치면 퇴근한 남편에게 짜증냈다. 참다못한 남편이 “예민하다”고 타박하면 김씨는 “정신병자 취급하냐”면서 부부관계도 멀어졌다.

우울증이 심해질수록 김씨는 아이들 칭얼거림에 '꽥' 소리를 질렀다. 그때마다 죄책감이 들어 모든 상황을 자신 잘못으로 돌렸다. 그는 “창문을 보면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나는 (엄마)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아이가 곁에서 울어도 김씨는 누워만 있었다. 결국 그는 산후우울증 진단을 받고 1개월 동안 입원치료를 받았다.

■‘독박육아’ 산후우울증 요인…자살 등 극단적 선택까지
수많은 여성들이 산후우울증을 겪지만 사회적 인식과 복지 서비스 미비로 사실상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영아살해, 자살 등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까지 생기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28일 인구보건복지협회 ‘2015 저출산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혼 여성 3명 중 1명은 산후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충동을 느꼈다. 이들 중 2%는 실제로 자살 시도를 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응답자 절반인 50.3%는 산후우울증으로 '아이를 거칠게 다루거나 때린 적이 있다'고 답했다. 지난 3월에는 산후우울증을 겪던 30대 여성이 생후 7개월 딸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치료 없이 방치될 경우 극단적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산후우울증 원인 중 하나는 출산 후 호르몬 변화 때문이지만 사회적 요인도 크다. 핵가족이 증가하고 성역할이 바뀌며 여성 혼자 육아를 책임지는 가정이 늘면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 대가족제에서 육아가 가족 전체 일이었다면, 현재 핵가족은 혼자 육아를 전담하고 있다”며 “그간 학교, 직장에 다니던 여성에게 엄마라는 성역할이 갑자기 주어진다. 홀로 육아까지 전담하다보니 부담감이 우울증을 유발한다”고 진단했다.

산모가 산후우울증을 깨달아도 치료 대신 홀로 참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엄마 역할을 못한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7 산후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전체 산모 중 산후우울증으로 의료서비스를 이용한 산모는 1.4%에 불과하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장은 “대게 산모 10~15%가 산후우울증을 겪지만 엄마들이 자신 우울증을 인식하는 경우가 적은 데다 증상이 의심돼도 병원을 찾지 않는다”며 “아이를 기르는 건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통념 탓에 치료를 꺼린다. 남편을 비롯한 가족이 산후우울증을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는 점도 이유다”고 말했다. 이어 “외출이 어려운 현실적 육아 문제, 수유로 인한 약물 복용 거부감, 무엇보다 정신질환이라는 인식 부족이 문제다”고 지적했다.

■접근성 낮은 산후우울증 복지 서비스
산후우울증은 수많은 산모들이 겪는 흔한 질환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해결을 위해 중앙난임우울증센터 등을 건립 중이지만 여전히 산후우울증 관련 복지 서비스는 수혜 범위가 좁다.

복지부는 '산모신생아건강관리지원사업'을 운영하면서 산모 관리사가 가정방문한다. 그러나 대상자는 기준중위소득 80% 이하에 한정된다. 서울시도 '서울아기건강첫걸음사업'을 진행 중이다. 간호사가 직접 집을 방문해 산후우울증 검진 등을 실시하지만 서울시 보건소를 이용한 임산부만 관리되고 서비스 이용률은 전체 임산부 대비 약 24%에 그친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서울시 25개 구 중 강남, 송파, 중구는 서비스 지역이 아니다”며 “올해까지 임산부 절반이 이용할 수 있도록 목표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소영 연구위원은 “(산후우울증 지원은) 산모 정신건강 수준에 따라 개별 대응이 가능할 정도로 촘촘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은 “산후 정신건강 문제는 산모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산모가 돌보는 신생아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회문제"이라며 “혼인신고시 무료 상담안내 책자를 제공하는 등 임신 전부터 출산 후까지 생애주기 관점에서 정책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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