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文·金, '공격적 협상가·타협적 중재자·현실적 전략가'

백종민 2018. 5. 2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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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권 뺏은 美, 특급 조력자 南, 실리 챙긴 北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헤어지며 손을 잡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백종민 외교안보담당 선임기자] 지난 주말 두 건의 이벤트가 전 세계인을 들썩이게 했다. 유럽프로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맞붙은 영국 리버풀과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의 단판 승부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격적인 만남이다.

전자는 예견됐던 승부였지만 후자는 당사자들을 제외하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효과는 만점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남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었다. 북ㆍ미 회담 전격 취소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역습으로 궁지에 몰린 김 위원장이 내민 손을 문 대통령이 잡아 휴지통에 들어갈 뻔한 계약을 되살린 전략적 승부였다.

두 사람의 만남은 추한 반칙이 소문난 잔치판을 망쳐 놓은 축구에 비할 수 없는 정정당당한 승부였다. 그렇기에 누가 승자고 패자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상대가 생각지 못하는 '트럼프식' 전략으로 승부를 건 트럼프 대통령이나 수세에 몰렸음을 인정하고 당당하게 도움을 청한 김 위원장, 운전자이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연 자리를 넘기고 조연으로 남기를 원하는 문 대통령 각자가 던진 패가 교묘히 엮이며 승부의 전반전이 마무리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전반전 승부의 막판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지난 22일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에 한ㆍ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회담을 앞뒤로 김 위원장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통해 미국의 압박에 대항하려 했다. 미국의 의도를 떠보려는 이 패는 결정적인 패착이 됐다.

벼랑 끝 전술로는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성과를 내왔던 북한에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취소라는 판을 엎는 '오버헤드킥'으로 응수했다. 마치 레알 마드리드의 최전방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처럼.

미국의 '선 비핵화'라는 골을 막아내려고 서 있다 수세에 몰린 김 위원장은 현실을 바로 인식했다. 지난 25일 김계관 제1부상의 담화를 통해 '신호'를 보낸 데 이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서훈 국정원장과 만나 문 대통령에게 구조신호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승부의 추가 트럼프 대통령으로 결정적으로 기운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미드필더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26일 회담을 통해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가까스로 막아낸 공을 미국 진영으로 넘기는 데 성공했다. 하루 뒤인 27일 미국 측 북ㆍ미 정상회담 실무 대표가 북측 판문점 통일각으로 넘어갔다. 이렇게 역사적인 북ㆍ미 정상회담을 위한 판이 깔아졌다.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 대사는 "정상 회담 전에 다양한 협상과 전술이 진행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 발표 후) 북한과 미국은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서로 가까워지고 있었다"고 평했다.
북ㆍ미 정상회담을 위한 후반전은 이제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 문 대통령 김 위원장의 마지막 승부도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문 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김 위원장의 북ㆍ미 정상회담 의지는 확인됐지만 그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CVID)를 받아들일지 여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도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는 분명하다고 했지만 CVID를 약속했는지는 답하지 않았다. 리퍼트 전 대사도 "풍계리 핵 실험장 폭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명확하지 않다"고 우려했다.

'거래 기술자'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의 마지노 선을 알고 있다. 이미 신속한 단계적 비핵화라는 트럼프식 모델도 제시한 상태다. 북한도 이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을 통해 체제보장이 자신들의 핵심 의제임을 내비쳤다.

27일(현지시간) "북한이 뛰어난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게임을 즐기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성향을 경계했다. WP는 승부를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은 현대 역사에서 가장 최악의 대통령 계약 체결자(presidential deal maker)라고 표현했다. 북ㆍ미 정상회담이 끝나고 두 사림이 악수를 하기 전까지는 안심하기 이르다는 뜻이다.

백종민 외교안보담당 선임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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