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성폭행 시아버지 공탁으로 감형..공탁제도 사각지대

한승곤 2018. 5. 2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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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를 저버린 인면수심의 범행”
2심 “피해자 합의 없지만…시골에 살면서 5000만원 공탁” 징역 7→5년 감형

법원.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아들이 숨진 뒤 며느리를 1년9개월 동안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70대 남성이 피해자와 합의가 없었음에도 공탁금을 이유로 감형됐다. 과거 데이트폭력 사건 재판에서도 가해자인 남성이 피해자 합의 없이 공탁금을 이유로 감형받아 이른바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공탁금 사각지대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1부(부장판사 이영진)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친족 관계에 의한 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A씨(71)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5년을 선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80시간을 명령했다고 28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 징역 7년에서 5년으로 감형한 이유에 대해 “항소심에서 피해자와 합의를 한다고 해서 기간을 충분히 줬지만 합의가 안 됐다” 면서 “(피고인의 죄는) 법정형이 7년 이상의 죄지만 피고인이 시골에 살면서 5000만원을 공탁했다”며 “피고인이 깊이 반성하고 있고, 손자·손녀를 돌봐야 하는 사정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를 저버린 인면수심의 범행”이라며 징역 7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이어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했고, 피해회복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질병을 앓고 있는 점 등 정상참작 사유에도 불구하고 중한 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A 씨는 아들이 사망한 뒤 며느리인 B 씨를 1년9개월 동안 20차례에 걸쳐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B씨가 임신하자 낙태 수술을 받게 한 것으로도 드러났다. 또 A 씨는 이 같은 자신의 범행을 숨기기 위해 B 씨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야구방망이로 위협하고, “어머니에게 말하지 말라”며 폭행한 혐의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공탁금제도로 인해 감형된 사례는 과거 조선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벌어진 데이트폭력 사건 재판에서도 찾을 수 있다. 2016년 11월 광주지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이헌영)는 18일 상해 혐의로 기소된 C 씨(35)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800만 원을 선고했다. 앞서 1심은 C 씨에 대해 벌금 1200만 원을 선고한 바 있다.

2심 재판부는 감형 이유에 대해 “C씨가 이미 의전원에서 제적됐고, D 씨에게 1000만 원을 추가 공탁하는 등 정상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 사건 피해자는 C 씨에 대해 엄하게 처벌해줄 것을 탄원했다.

C 씨는 2015년 3월28일 오전 3시10분께 당시 여자친구였던 E씨(31)의 집에서 욕설하며 뺨을 수차례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 흔드는 등 2시간 이상 폭행해 전치 3주의 부상을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자신과의 전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같은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연합뉴스

◆ 일방적 공탁, 피해자 두 번 상처…유전무죄 무전유죄

현행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표에 따르면 살인 범죄·성 범죄의 경우 합의에 준할 정도의 상당한 돈을 공탁한 경우형을 낮추는 요소로 고려한다.

이 같은 형사공탁은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한 반성이나 배상 의지를 표현하는 제도다. 피해자는 피고인이 법원에 맡긴 공탁금을 찾아갈 수 있다. 형사사건에서 형을 낮추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 법원은 공탁으로 피해배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공탁금을 양형에 참작하고 있다.

문제는 피해자에게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준 피고인이 피해자와의 합의 노력 없이 자신의 형을 낮추기 위해 일방적으로 공탁을 이용하는 등 악용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실제로 자신의 며느리를 성폭행한 사건과 조선대 데이트폭력 사건 모두 피해자는 가해자와 합의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탁금을 이유로 피고인들은 모두 감형을 받았다. 합의 없이 감형이 이뤄지면서 피해자는 두 번 상처를 받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해자와 합의 없는 공탁이 판결에 감형 요소로 고려될 수 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4월 법률구조공단과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동 주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배수진 변호사는 “피해자의 동의없이 일방적인 공탁이 이뤄지고, 법원은 피해자의 의사확인 없이 이를 양형사유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판사 출신인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선대 데이트폭력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법 처벌을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공탁’이 가해자에 대한 양형 요소로 고려되어 논란이 있었다” 며 “법원이 피해자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공탁을 냈다는 이유만으로 양형기준이 달라진다면 이것이야 말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될 것” 이라고 지적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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