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스마트폰 '넘사벽' 애플..한국만 中 추격에 '비틀'

강승태 입력 2018. 5. 2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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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미국 기업이 아니라 한국 기업이었으면 좋겠나.”

애플이 2010년 안테나게이트(아이폰4 수신 불량 문제를 둘러싼 스캔들)로 시끌벅적할 무렵, 故 스티브 잡스 애플 CEO가 기자들에게 했던 말이다. 이 말은 여러 의미로 해석됐다. 당시만 해도 휴대폰 시장 1위는 핀란드 노키아였다. 하지만 잡스는 이례적으로 한국을 언급했다. 삼성, LG를 필두로 한 한국 기업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떠오르는 신흥 강자였다. 잡스가 한국 기업을 스마트폰 시장에서 최대 경쟁 국가(혹은 경쟁 기업)로 인식했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잡스가 신경 썼을 만큼 한국 스마트폰 기업은 강했다.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을 개척했지만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시장을 확대한 것은 한국 기업이었다.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무너져도 한국 스마트폰 기업은 오히려 승승장구했다. 요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한국 스마트폰이 위기에 달했다는 분석이 잇따라 제기된다. 전체 스마트폰 시장 규모는 줄어드는 데다 중국 스마트폰은 세계 시장 곳곳을 장악하고 있다.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갤럭시S9 출시행사.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처음으로 인도 시장에서 1위 자리를 내줬다. <연합뉴스>
▶스마트폰 시장 성장세 둔화

▷2016년 정점 찍고 수요 감소

14억7300만대.

2016년 세계 스마트폰 시장 규모다. 이때가 정점이었다. 지난해 스마트폰 시장은 사상 처음으로 감소했다(14억7200만대).

2008년 이후 스마트폰 시장 규모는 매년 증가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2009년 이후 2015년까지 스마트폰 시장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했다. 2010년에는 전년 대비 약 80% 가까이 증가했으며 2013년 처음으로 연간 10억대를 돌파했다. 매년 성장할 것 같던 스마트폰 시장은 2016년 한풀 꺾인다. 급기야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하더니 올해는 마이너스 폭이 더욱 확대될 조짐이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해 1분기까지 2분기 연속 감소했다. 지난해 4분기에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8.7% 감소하며 분기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 하락 폭을 기록했다. 올 1분기도 시장 규모가 3억4540만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4% 감소했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이 감소세로 전환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가장 큰 시장인 중국에서 스마트폰 시장이 쪼그라들고 있다. 지난해 중국 스마트폰 시장은 약 4억5900만대로 전년과 비교해 4% 줄어들었다. 올해는 그 폭이 훨씬 크다. 중국정보통신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 스마트폰 출하대수는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무려 27% 감소한 8187만대다.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시장이 정체되다 보니 한국 기업도 직격탄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당장 중국에서 고전하던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더욱 설 자리를 잃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이 불과 0.8%에 불과했다. 현재 중국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을 제외하면 모두 중국 제조업체가 독식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길어지면서 세계적으로 시장 규모가 작아지고 있다. 신흥 시장도 이미 보급률이 거의 포화 상태로 접어들었고 하드웨어(HW)나 디자인 측면에서 혁신적인 모습이 사라지면서 스마트폰 시장은 예전의 활기를 잃었다”고 분석했다.

▶중국 기업의 맹추격

▷텃밭이었던 지역도 위태로워

시장이 침체된 것 하나만으로 한국 스마트폰 산업이 위기에 놓여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마이너스 성장세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스마트폰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모바일 기기다.

진짜 문제는 한국 기업 텃밭이었던 일부 지역에서도 시장 주도권을 내주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어차피 애플을 제외하면 대부분 중국 기업이 휩쓸고 있다. 하지만 인도나 아프리카, 중남미 등 한국 기업이 전통적으로 강했던 지역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지난해 4분기 인도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이변이 일어났다. 수년간 1위를 지켰던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1위 자리를 중국 샤오미에 내줬다. 샤오미는 올해 1분기도 인도 스마트폰 1위 자리를 지켰다. 인도뿐 아니다. 중국 업체들의 전방위적 공세는 아프리카에서도 이어진다. 중국 전자업체 트랜션(Transsion)은 지난해 아프리카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꺾고 첫 1위를 차지했다.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도 한국 기업은 주춤하는 분위기다.

유럽에서는 중국 바람이 거세다. 유럽 시장에서 삼성전자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지난 5년간 약 10%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유럽 스마트폰 1위 기업은 삼성전자지만 화웨이와 샤오미가 2~3위로 올라서면서 삼성전자를 위협한다. 노키아의 본거지였던 핀란드에서는 지난해 3분기 화웨이가 1위에 올랐다.

북미는 미국이 중국 기업 진출을 원천 차단하면서 상대적으로 한국 기업이 수혜를 입는 지역이다. 그럼에도 애플에 막혀 고전을 면치 못한다. 올해 1분기 북미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은 34.9% 점유율로 1위를 기록했다. 삼성전자(28.6%)와 LG전자(15.8%)는 2~3위를 차지했다. LG전자는 거의 유일하게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중 북미에서만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북미 시장점유율도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3.8%포인트 감소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은 10억대에서 15억대 규모로 늘었지만 삼성전자 스마트폰 판매량은 약 3억2000만대 수준에서 매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세계 스마트폰 1위 기업은 삼성전자다. 점유율 22.6%를 차지하며 애플(15.1%)과 화웨이(11.4%)를 제쳤다. 하지만 점유율은 매년 하락 추세다. 2013년만 해도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32.3%였다. 5년이 지난 올해 1분기 삼성전자 점유율은 22.6%에 불과하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의 합산 점유율은 벌써 30%를 넘어섰다. 중국이 한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스마트폰 제조 국가가 됐다. SA는 “올해 삼성전자 스마트폰 점유율은 20%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잡스가 인정할 만큼 경쟁력이 충분했던 한국 스마트폰 스토리는 이제는 옛말이 됐나? 중국 기업은 기술적으로 사실상 한국 기업을 거의 다 따라잡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아이폰은 확고한 명품(名品)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삼성과 LG는 이제 중국보다 기술과 브랜드에서 더 낫다고 말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중국 업체들은 미국에서 제품 출시를 못 하는 상황에서도 엄청난 성장 속도를 자랑한다”고 말했다.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애플은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 중이다. 아이폰X(텐)을 필두로 올해 1분기 애플의 영업이익은 17조원을 기록했다. 시장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반면 삼성전자 스마트폰 영업이익은 3조7700억원. 한때 분기당 5조~6조원 이익을 기록했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줄었다. LG전자는 12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지난 3년간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으로 버린 돈만 2조원에 달한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부족한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획기적인 HW 혁신 등이 필요할 때다. 플렉서블이나 폴더블 OLED 등 새로운 기술 개발을 통해 스마트폰 시장 기본 판도를 바꾸지 않는 한 점유율 회복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진단한다. 정옥현 서강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중국 스마트폰과 성능·기능·디자인이 모두 비슷한 상황에서는 결국 가격 싸움”이라면서 “삼성·LG도 중국의 값싸고 질 좋은 부품을 과감하게 도입하고 모델 수를 줄여 제조 원가를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59호 (2018.05.23~05.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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