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 살린 '서훈-김영철 라인'..수시로 판문점에서 접촉
강태화 2018. 5. 28. 06:01
26일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 비밀리에 열린 회담 테이블에는 남북 정상 외에 서훈 국정원장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만이 배석했다. 이 둘은 결렬 위기에 빠진 북ㆍ미 정상회담의 불씨를 되살린 주역이다.
남북 관계 개선을 천명한 문재인 정부에서 서훈 원장의 약진은 예고됐다. 그는 지난해 5월 9일 당선인이던 문 대통령의 홍은동 자택을 지킨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자택 전화기를 도청이 불가능한 비화기(秘話器)로 바꿨다. 10일 오전 문 대통령은 직접 “국정원장을 맡아달라”고 통보했다.
서 원장은 스스로 “나는 종북(從北) 아닌 지북(知北)”이라고 말한다. 1996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대표로 북한에 2년간 상주했다. 2000년과 2007년 정상회담은 물론, 이제 2018년 열린 두 차례 정상회담을 만든 주역이 됐다.
김영철은 천안함 폭침의 배후로 알려진 인물이다. 폭침 당시 정보수집과 공작을 담당하는 군 정찰총국장을 지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이번에서 남북관계를 총괄하는 통일전선부장이 돼 남북, 북ㆍ미 회담을 조율하고 있다. 이 때문에 CIA 국장 출신의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도 그는 공식 오찬을 주재했다. 그 자리에서 폼페이오 장관은 “파트너”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김영철은 협상 전문가다. 2006년 5월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는 남측 수석대표였던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을 상대했다. 한 전 장관은 ‘염화시중(拈華示衆ㆍ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도를 전함)’이란 말을 꺼내며 “좋은 결과를 내자”고 말했다. 김영철은 그러나 “나는 사람이지 부처는 아니다. 부처님께 열심히 빌어보라”며 기선을 제압했다.
당시 회담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던 노무현 정부 고위인사는 “김영철은 북한이 대남 협상 전문가로 키운 인물”이라며 “협상이 끝난 뒤 우리도 협상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는 보고를 대통령께 올렸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당시 대통령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서훈 원장을 국정원장에 임명해 김영철과 상대하게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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