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 살린 '서훈-김영철 라인'..수시로 판문점에서 접촉

강태화 2018. 5. 2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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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 비밀리에 열린 회담 테이블에는 남북 정상 외에 서훈 국정원장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만이 배석했다. 이 둘은 결렬 위기에 빠진 북ㆍ미 정상회담의 불씨를 되살린 주역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 자리에는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배석했다. 청와대 제공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27일 정상회담 성사 과정을 밝히며 “남북 간 여러 소통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그중 하나가 ‘서훈-김영철 경로’”라고 말했다. 2차 정상회담은 이 채널을 통해 성사됐고, 둘은 회담장에도 나란히 앉았다. 정보기관 간 ‘물밑접촉’ 라인이 수면 위로 떠오른 셈이다.

남북 관계 개선을 천명한 문재인 정부에서 서훈 원장의 약진은 예고됐다. 그는 지난해 5월 9일 당선인이던 문 대통령의 홍은동 자택을 지킨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자택 전화기를 도청이 불가능한 비화기(秘話器)로 바꿨다. 10일 오전 문 대통령은 직접 “국정원장을 맡아달라”고 통보했다.

서 원장은 스스로 “나는 종북(從北) 아닌 지북(知北)”이라고 말한다. 1996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대표로 북한에 2년간 상주했다. 2000년과 2007년 정상회담은 물론, 이제 2018년 열린 두 차례 정상회담을 만든 주역이 됐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조윤제 주미대사가 8일 백악관 웨스트윙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주미대사관]
그는 평창올림픽에 참석했던 북한 대표단 곁에 서 있었다. 미국 특사단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의 방한은 물론 김 위원장이 처음으로 남쪽 지역에 내려와 진행됐던 4ㆍ27 정상회담에도 배석했다. 4ㆍ27회담이 끝나자 홀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서훈 국정원장이 4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 앞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선언이 끝난 뒤 눈물을 훔치고 있다. 판문점=김상선 기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한과의 비공식 접촉에서는 국정원 라인이 가동될 수밖에 없다"며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지위는 국정원장과 유사하다. 서 원장이 김영철의 카운터파트너”라고 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 역시 "서 원장과 김 부장은 전화 통화뿐 아니라, 정확한 시기를 밝힐 수는 없지만, 판문점에서 여러차례 접촉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전용기에서 내린 뒤 자신을 맞이하러 나온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악수하는 폼페이오 장관. [연합뉴스]

김영철은 천안함 폭침의 배후로 알려진 인물이다. 폭침 당시 정보수집과 공작을 담당하는 군 정찰총국장을 지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이번에서 남북관계를 총괄하는 통일전선부장이 돼 남북, 북ㆍ미 회담을 조율하고 있다. 이 때문에 CIA 국장 출신의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도 그는 공식 오찬을 주재했다. 그 자리에서 폼페이오 장관은 “파트너”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김영철은 협상 전문가다. 2006년 5월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는 남측 수석대표였던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을 상대했다. 한 전 장관은 ‘염화시중(拈華示衆ㆍ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도를 전함)’이란 말을 꺼내며 “좋은 결과를 내자”고 말했다. 김영철은 그러나 “나는 사람이지 부처는 아니다. 부처님께 열심히 빌어보라”며 기선을 제압했다.
2006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제4차 남북장성급회담에서 한민구 소장(오른쪽)과 북측 김영철 중장이 회담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당시 회담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던 노무현 정부 고위인사는 “김영철은 북한이 대남 협상 전문가로 키운 인물”이라며 “협상이 끝난 뒤 우리도 협상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는 보고를 대통령께 올렸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당시 대통령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서훈 원장을 국정원장에 임명해 김영철과 상대하게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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